그만의 비법
그곳에 가면 입은 행복하고 눈도 즐겁다. 몸은 포식으로 무겁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는 식당이다. L. A. 다운타운에서 동쪽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에버그린 길에 있다. 전에는 홀랜백 갱들의 중심지역이라 위험했다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이름은 매뉴엘의 엘 타피엑-Manuel's El Tepeyac. 다른 이름의 엘 타피엑도 있지만 이 식당 원조라고 강조한다. 미국도 서로가 원조라 타투나 보다.
Manuel's El Tepeyac의 제일 손꼽히는 메뉴는 홀렌백 부리토 Hollenbeck Burrito다. 양념된 밥에 토마토, 으깬 콩, 아보카도, 양파, 실란트로를 얄팍하지만 쫀득쫀득한 밀가루 빈대떡처럼 생긴 또띠야 안에 넣는다. 돌돌 말은 후 토마토양념을 입은 깍두기 모양의 고기들이 그 위에 듬뿍 얹힌다. 크기는 김밥 네 줄 정도 뭉쳐 놓은 것만 할까. 가격도 저렴해 8불 정도이다. 어린아이 둘과 부부가 음식 만들기 귀찮은 저녁이나 주말에 홀렌백 부리토, 아보카도로 만든 과까몰레 소스를 곁들인 토티야 칩, 그리고 음료수 두 개(계속 채워준다)를 20불에 즐길 수 있다. 스페셜 부리토는 두 배의 크기인데 혼자서 다 먹으면 그 테이블은 음식 값을 받지 않을 뿐더러 사진을 찍어 벽에 붙여준다. 그 크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헉’ 소리가 날 정도라 일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다.
작은 개인 집을 식당으로 개조해 시작을 했다. 네 명을 기본으로 테이블이 8개, 카운터 앞의 긴 테이블에 8명이 앉을 수 있다. 자리가 비좁아 옆자리의 외간 남자와 어깨가 닿기도 한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웨이트레스 엉덩이가 수시로 등을 스치기도 한다. 그런들 어떠리. 넉넉한 몸매에 맘씨 좋은 시골 국밥집 아주머니 같은 인상이라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주인은 작달막한 키에 비쩍 말라 멸치처럼 생긴 히스패닉 아저씨 ‘매니’다. 걸걸한 목소리의 그가 있으면 식당 안이 항상 시끄럽다.
이슬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였다. 우리 일행 뒤에는 열 명이나 길가에 줄을 서 있었다. 20분 정도 기다리고 있는데 하얀 주방장 모자를 쓰고 그가 황야의 무법자처럼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한 시간 넘게 기다린다고 불평 아닌 투정을 했다. “정말? 그럼 방법이 있지.” 매니는 나에게 슬쩍 윙크를 하더니 식당 문을 열고 “불~이~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놀랐을 것이다. 매니가 그런 것인 줄 알고는 상황판단이 되었는지 웃음보를 터트렸다. 밖에 있던 사람들은 “와”하는 함성으로 응원했다. 그의 임기응변으로 기다리는 지루함과 짜증까지 한방에 날렸다.
오하이오에서 온 친척과 함께 네 명이 갔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줄이 길었다. 매니가 고개를 문밖으로 쭈욱 내밀더니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긴 바에 띄엄띄엄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는 혼자 식사 중인 여자 손님의 음식접시를 맨 끝으로 밀었다. “여기 네 명의 자리가 필요해.”라고 통보를 했다. 빨리 앉으라는 바람에 우리는 그 여인에게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녀는 괜찮단다. 음식을 주문하고 조금 있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식당의 매니저인 로라가 매니를 야단 치고 있었다. “손님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다. 어떻게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의 음식접시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냐.” “다음에는 안 그럴게. 밖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기에 그랬지.” 어깨를 움츠리고 불쌍한 얼굴 표정으로 손님들에게 큰소리로 하소연을 한다.
“어머니가 43년 주인이었는데, 돌아가시자 내 딸이 주인이야. 나는 종일뿐이지-My mom was the boss for 43years but she died and now my daughter is boss. I'm a slave.”
“오, 불쌍한 매니!―'Oh No! Poor Manny.”
동정표가 쏟아지며 그가 한 행동은 면죄부를 받았다.
“사과주스에 라임 그리고 소금-Apple juice with a slice of lime and salt.”
가끔 그는 사과주스 병을 열며 손님들을 향해 속삭인다. 그 안에는 데킬라가 채워져 있다. 소주잔만한 크기의 샷 잔에 데킬라를 따르며 손님 테이블을 돌아다닌다. 라임주스를 손 등에 바르고 그 위에 소금을 솔솔 뿌린다. 그가 내민 데킬라를 한 번에 들이키고는 손등을 핥는다. 캬아! 코를 톡 쏘며 목구멍이 화끈거리는 맛이란. 딱 한 잔만 준다. 원래 그 식당 안에서는 술을 팔지도 마시지도 못하는데, 공공연히 알려진 비밀이다. 공짜이기 때문에 당기는지 더 달라고 했다가는 매니에게 야단을 맞는다. 근처에 경찰서가 있어서 손님 중에 경찰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40년 넘게 무탈한 것을 보면 그들도 즐기는 것은 아닐지.
감칠맛 나는 음식에 푸짐한 양. 그리고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도 만점이니 이정도면 어떤 식도락가나 미식가도 만족할 만하지 않을까. 요즘 세대 표현을 빌리자면 먹Go 보Go 놀Go 쉬Go 할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다 가끔 펼쳐지는 그의 원맨쇼가 특별한 ‘그만의 비법’으로 보태어져 손님을 끌어당긴다. 툭툭 던지는 그의 말 한마디와 무심한 듯 행하는 행동이 특별한 레서피로 음식 맛을 더욱 정겹게 만들기에 그곳을 찾을 때는 이번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은근히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