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안에서
병원 응급실이다. 벌써 들어온 지 세 시간이 지났다. 의사는 안 오고 간호사만 가끔 커튼을 밀며 들여다본다. 퉁퉁 부은 얼굴에 두 눈을 꼬옥 감은 엄마는 고통을 못 이겨 끄응 끄응 신음 소리를 낸다. 가는 줄에 연결된 기계들은 규칙적인 소리로 오르락내리락 건강 상태를 그려 내고 있다.
어제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엄마는 새벽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다가 빗길에 넘어지셨다. 다행히 교우가 언니에게 연락을 해 주어 한의원에 모시고 갔었다. 침과 부항치료를 받았는데 근육이 울려 아플 것이나 며칠 지나면 가라앉으리라 생각했었다. 오늘 아침 다급한 호출을 받고 엄마에게 가보니 상태가 심각했다. 침대에 일자로 누워 있는데, 밀려드는 통증에 온 밤을 울며 지새웠단다. 그 자세 그대로. 화장실에 가야하는데 손가락하나 움직일 수 없이 아파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고래고래 외치며 고통을 호소하셨단다. 땀과 눈물로 얼룩진 이불이 무겁게 엄마를 누르고 있는 듯 했다. 참을성이 많은 분이 그 정도였다니, 편하게 잠을 잔 내가 죄스러웠다. 얼마나 외롭고 암담했을까.
노인 전용 아파트는 방에 설치된 응급 줄을 당기면 앰뷸런스가 오게 되어 있다. 30분이 지나도록 감감 소식이다. 사무실에 물어 보니 아파트를 수리 중이라 응급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무책임한 답변이다. 결국 911에 신고를 했다. 앰뷸런스가 오고 그들의 이동식 침대로 옮기는데, 아픔에 젖은 비명을 질러대는 엄마를 차마 볼 수 없어 언니와 나는 고개를 외면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응급실에서도 서류를 접수하는데 한참, 대기실 방 안에서 무한정, 기다림의 연속이다. 내려진 푸른색 커튼 아래로 오고가는 발자국에 혹시나 기대를 하며 마음을 졸인다. 같은 질문과 답변을 몇 번씩 반복하며 엄마의 상태를 설명했다. 뼈에 이상 없기를, 큰 부상이 아니길 언니와 기도했다. 여자들은 골다공증 때문에 넘어지면 뼈에 이상이 생기기에 걱정이 된다.
침대에 누워 고통과 씨름하는 엄마를 내려다보며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하교 후 집에 오자마자 마루에 푹 쓰러졌단다. 의사는 ‘뇌막염’이라며 이미 손댈 수 없는 상태니 집에 데려가 기다리라면서 응급조치도 안 해 주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뻣뻣해진 나를 들쳐 업고 길가로 나와 택시를 잡는데, 차들이 멈추질 않고 피해 가더란다. 시체를 태울 차가 어디 있겠는가. 대로를 막은 채 눈물범벅으로 사정을 하는데 어떤 남자가 택시에서 내려 양보를 해주어 겨우 다른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단다. 그렇게 해서 살려 낸 딸이 바로 나다.
이제 입장이 바뀌어 내가 엄마의 병상을 지키고 있다.
엄마의 아파트 현관에서 응급상황이니 주차할 자리를 허락해 달라고 부탁 했는데 거절당했다. 방문자는 주차할 수 없으니 차를 비키지 않으면 견인하겠다는 사무실 직원 앞에서 발 동동 굴렸다. 노인 아파트인데도 시스템이 작동 안 된다며 위급상태를 몰라라 하는 무심한 그들과 다투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아픈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책임질 거냐며 그들에게 언성을 높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응급차를 부르고, 엄마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마음은 급한데 의사는 나타나질 않고 기다리라고만 하지, 혹시나 하는 온갖 불길한 생각에 머리를 내저으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오늘 오전 내내 겪은 일들이 한 장면씩 떠오르며 부모님이 막내딸을 살리려고 길로 뛰시던 모습과 겹쳐진다. 더 힘드셨겠지. 절박하셨으리라.
엄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던 큰언니가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인 게 다행이야. 밤새 늙으신 것 같지? 이제는 우리가 돌봐 드려야 할 차례다.”
혼자만의 생각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고 엄마를 본다. 병원 가운 사이로 나온 앙상한 어깨가 이제는 그 위에 더는 짐을 얹을 수 없음을 알려준다. 까칠하게 마른 발등은 지나온 세월의 희로애락이 깃든 그림자를 끌고 가기에는 너무나 지쳐 보였다. 혼자 일어설 수나 있으려나.
“딸은 나이가 들면 엄마를 닮는다고 하지 않니. 언뜻 거울이나 사진을 보면 내 안에서 엄마를 만난다니까.”
헝클어진 엄마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다정히 빗어 넘기는 언니의 모습에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며 눈가가 젖는다. 슬쩍 돌아서서 커튼을 반쯤 젖히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지난달에도 넘어져 손을 다치셨잖아. 퍼렇게 멍든 손이 흉하다며 마이클 잭슨도 아니면서 한손에 장갑을 끼고 다니시더니, 이제는 E.T처럼 손가락에 빨간불을 달고 계시네. 그러게 자존심 그만 세우고 지팡이를 짚으시라니까. 그나저나 의사선생님은 왜 안 오는데…….’
애꿎은 커튼자락을 구겨 잡으며 화풀이를 한다.
'뼈에 금이 간 것을 의사가 판독을 못했다. 그 의사는 아들의 친구다. 나 역시 침과 부황, 치자와 밀떡 지압등 맛사지 민간요법., 한방에 의존했었을 때 고통을 참으셨던 어머니 얼굴이 겹친다. 내 어머니를 보는듯, 그 병실인듯 너무도 똑 같은 상황...
엉덩뼈에 테타니움 싱을 박는 대 수술로 악화. 내 경험과 겹치면서 눈물이 났다. 그게 추수감사절 전날이었다.
수술후(Hip Hemiarthro Plasty) 우리 가족은 '수술감사절'을 병원에서 보낸 게 어젯 일만 같다.'
지금은 회복되셨지요? 효심많은 딸을 둔 그 엄마는 행복하십니다.
더욱 더 행복하신 분이란 결론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딸이시니....
심리묘사를 정서적으로 표현한 기법이 부럽습니다. 축약되고 간략하게 그 다급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흘르게 해 더불어 비주얼 효과까지...좋은 글 감사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