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25년 전의 그 불길을 기억하자

25년 전의 그 불길을 기억하자

2017.04.27

이현숙
재미수필가


25년 전, 그날. LA 한인타운은 불길로 휩싸였다. 
LA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무장폭동 ‘LA 폭동’은 1992년 4월 29일에 시작되어 5월 4일까지 이어졌다. 
발단은 백인 경찰관이 과속으로 질주하는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했는데 법원에서 그들이 무죄 판결을 받자 흑인들은 흥분했다. 
며칠 뒤, 한국계 미국인 두순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음료수를 훔친 흑인 소녀 나타샤 할린스와 실랑이 끝에 안면을 주먹으로 수차례 강타당하자 권총을 발사하여 나타샤가 사망한 것이 흑인 사회의 분노를 촉발했다. 
흑인 밀집 지역인 사우스센트럴에서 시작된 시위는 한인타운까지 급격하게 번져 57명이 숨지고 2천500여 명이 부상하는 등 5천 건이 넘는 피해를 줬다. 
약탈과 방화로 한인타운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라디오 코리아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는 리포터들의 울음을 억누른 소식에 함께 몸서리를 치며 가슴을 쳤다. 
지금 폭도들은 한인 소유의 전자 상점 유리를 부수고 들어가 물건을 들고 나옵니다.
한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불이 나서 다 타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경찰은 어디에 있는지요. 왜 우리가 당해야합니까.
우리 가족도 폭동피해자다. 
작은 오빠는 LA의 다운타운에서 여성용 액세서리 수입상을, 넷째 언니는 슬라우슨 스와밑에서 여성 의류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주일 뒤에 있을 어머니날 대목을 기대하며 가게를 물품으로 가득 채워놓은 상태였다.
스와밑 건물은 기둥도 안 남고 불에 타 버렸다. 
오빠네 창고는 빈 상자도 안 남고 모두 약탈을 당했다. 
당시 서울에서 다니러 온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고 무너진 아들과 딸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서 못 일어나셨다. 
폭동의 검은 연기에 아메리칸 드림은 재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아버지는 낯선 땅에 묻히셨고 오빠와 언니는 여러 길을 돌고 돌아 이제 직장생활을 하며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정신적인 혼란과 경제적 고통을 이겨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폭동의 시발점은 인종차별이었다. 
흑인들이 북쪽을 향해 올라오자 공권력은 그 저지선을 백인 지역으로 정했기에 중간지역에 상권을 펼치고 있는 한인이 피해를 본 것이다.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억눌리고 있다는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자격지심보다 이민 역사가 짧지만,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한인들에게 차별을 받는 것에 더 자존심이 상했는지도 모른다.
한인들이 자신들의 지역에서 돈만 챙기면서 정작 그 부를 갖게 해 준 자신들을 무시하고 의심을 하며 종업원으로 고용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품고 있었기에 그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LA는 많은 인종이 모여 살아 샐러드볼(salad Bowl)이라고 불리며 ‘함께 또 따로’분리되기에 그 안에서의 인종차별은 보편화한 문제다. 
한인들은 흑인을 검둥이라고, 히스패닉을 멕작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깔본다.
우리도 다른 인종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면 한국인이기에 무시를 당했다며 인종차별로 문제를 몰아가 울분 터트리기도 한다. 
폭동 당시에는 흑인들과의 문제라면, 현재는 많은 히스패닉이 한인이 운영하는 비즈니스에 고용된 점에 유의해야 한다. 

LA 한인들은 당시의 아픔을 뒤로한 채 정치적, 사회적으로 다시 일어섰다.
먹고사는 문제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던 이민 1세대들과 달리 1.5세대와 2세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며 공직, 관리직 등 주류사회에 입성한 숫자가 135명에 달한다.
연방 하원의원 435명 중 한인은 한 명도 없는데 LA 중심가 지역구인 34지구 연방하원 보궐선거에 40대 한인 2세 로버트 안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다행히 예선을 2등으로 통과해 결선에 올랐는데 상대인 고메스 후보가 하원의원 출신의 거물급 정치인이라 라틴계 표심이 그에게로 집중될 전망이라고 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비유를 하지만 부디 당선되어, 의회에 가서 우리 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25년이 지나 그날의 기억들은 희미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 폭동의 일어났고, 왜 한인들이 피해자가 되어야 했는지, 또다시 그런 폭동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날의 불길을, 재로 남은 꿈을 돌이켜보며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현숙
재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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