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마을의 황혼녘
이현숙
금광마을에 왔다. 골드러시 때 캘리포니아의 3대 도시로 군림을 하던 플레서빌(placerville)이다. 엘도라도 카운티에 자리한 이곳은 엘에이에서 레잌타호를 갈 때 미국주도 50번 도로를 지나며 초입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제임스마셜이 인근에서 금광을 발견한 후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다. 1850년 곡괭이로 파내는 방법으로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지 못해 소방호수의 수압을 이용해 산을 허물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방서의 망대인 벨 타워가 타운의 가운데 높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의 상징이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1800년대 후반에 지어졌다. 어떤 건물 앞에 발을 멈추었다. <Hangman's Tree>라는 사인이 세워져 있다. 위를 올려다보니 건물 2층 난간에 둥근 나무막대기가 어른의 팔 길이만큼 삐쭉 나와 있고 <강도>라는 표를 단 인형이 목매단 채 걸려 있다.
이곳은 범죄자를 매달던 교수대로 유명하다. 금이 나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모여드니 자연스레 범죄가 만연하였다. 강도에다 살인, 또 술주정뱅이 등. 그때마다 범죄자를 수백 년 된 참나무에 매달았는데 지금 그 뿌리는 건물 밑에 있고, 굵은 가지만 상징으로 남아있다. 철도공사를 하거나 금광에서 막일을 하던 많은 중국인들이 억울하게 처형을 당했단다. 그래서 Hang Town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래전에 본 영화 집행자(Hang' um High)가 떠오른다. 크린스 이스트우드가 나온 서부영화인데 교수형을 하는 장면이 충격이었다. 별다른 엔터테이먼트가 없던 시절이라 주민들이 멋지게 차려 입고 광장으로 모여든다. 콘서트 구경이라도 나온 듯 지붕위에까지 빼곡히 올라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려 아우성이다. 간식거리를 파는 잡상인들도 한몫 끼여 돈벌이에 여념이 없다. 교수대에서 죄인들의 몸이 축 늘어지는 순간 탄식인지 탄성인지 분간 할 수 없는 단음이 구경꾼들 사이에서 메아리친다. 타인의 죽음을 즐기는 모습에 영화의 한 장면인 것을 잊고 울분했었다. 지금, 어딘가에서 그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듯해 주위를 둘러본다. 머릿속에 들어차는 영화의 장면들을 지우려 Hang Tree 앞을 잰 걸음으로 벗어난다.
북쪽 길을 따라 올라가니 1859년에 존 피어슨씨가 지은 '피오슨스 청량음료' 건물은 식당으로 변했다. 굴뚝을 타고 들어가려는 듯, 두 다리가 하늘을 향해 꼽혀 있는 여자 인형을 설치해 놓아 웃음을 자아낸다. 얼음이 귀하던 시절에 얼음과 음료를 같아 보관했던 곳이라 저 여인은 얼음을 훔치려 한 것일까. 그 옆의 앤틱 상점에는 그 시절의 음료수 병이 먼지를 겹겹이 끌어안은 채 35불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다. 사는 사람이 있을까, 들었다가 도로 내려 놓는다.
리바이스 청바지의 마을이기도 하다. 1853년 리바이스가 광부들의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는데 남성용 의류 상점 안에는 비싼 가격표를 붙인 채 원조임을 의시대고 있다. 한 옆에는 색이 바래고 구멍이 난 청바지가 후줄근하게 누워있다. 설마 그 시절 광부가 입었던 것은 아니겠지. 빈티지라는 멋진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만지면 후르르 올이 풀어질 것 같다.
천년가는 영화 없다고 이제는 옛 명성만 간직한 쓸쓸한 마을이다. 상점들의 대부분이 앤틱이라는 상호를 내 걸며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그 안에는 광부들이 금을 캐낼 때 쓰던 도구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곡괭이 접시뿐 아니라 나무로 만든 아기의 흔들이 침대까지 다양하다.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선뜻 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사용하기에는 투박하고, 투자하는 의미로 사기에는 그리 가치가 없는 물건들로 보인다.
powell.s steamer co& pub 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요즘은 보통 바 bar라고 부르는데 영국식인 퍼브pub라는 표현에 이끌려 들어갔다. 입구에 샌프란시스코의 풋볼 팀인 49ers의 셔츠가 걸려 있다. 1849년에 금광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포티나이너스라고 부른데서 팀의 이름이 정해졌단다. 아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그 영광을 상술로 연결 지으려는 주인의 의도이리라.
바 안에는 밴드가 라이브 음악을 연주한다. 종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맥주와 와인이 한 쪽 벽에 진열되어 있다. 아이리시 계통의 음악이 식당을 신나게 흔들고 손님들이 흥에 겨워 복도로 나와서 춤을 춘다. 거의가 백인 노인들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인가. 왜 이 쓸쓸한 고장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할아버지에 그 위 할아버지들의 땀을 기억하고픈 마음인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니 상점들을 돌며 입안에 가득 들이 마신 먼지들이 씻겨 내려간다. 번쩍이는 황금대신 곳곳에 먼지만 쌓인 곳.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이 아니라 유리 진열장 안의 구제품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관찰하는 정체된 마을이다. 옆 테이블의 노부부에게 웨이츠레스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눈다. 건너편의 옷가게에 새로운 점원이 왔는데 봤느냐고. 천천히 돌아도 한 시간이면 충분한 동네이니 손바닥처럼 모두가 훤히 꿰뚫고 사나보다. 느긋하고 멈춘 듯해도 그 안에서도 삶은 바삐 오고가나보다.
밖으로 나오니 황금빛 노을이 마을 한복판에 있는 벨 타워 꼭대기에 있는 종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 옛날의 이 마을을 들썩이게 했던 추억들을 서로 나누는가. 떠오르면 지게 마련인 게야. 그게 인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