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일보 [미주통신]

 

“트럼프 ‘반이민 행정명령’ 반대 목소리이민자 뿐 아니라 법원·주류사회 동참 사회 구석구석에 휴머니티 살아있어 ”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

성민희

 

 어둠이 내리는 거리에 폭우가 마구 쏟아진다. 빗물을 가르며 달리는 차도 길가의 가로수도 비에 흠뻑 젖었다. 남의 나라에 생업을 기대고 사는 이민자들의 설움을 하늘도 같이 울어주는 것일까. 올해 들어 부쩍 비가 많이 온다.

오늘은 이민자 없는 날(Day without Immigrants)이다. 트럼프의 반 이민 행정명령에 반감을 품은 이민자들이 시위를 한다고 한다. 직장인들은 결근을 하고 자영업자들은 휴업을 하고 학생들은 결석을 한다.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일체의 쇼핑도 삼가라고 한다. 그들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줌으로써 이민자 없는 미국을 한번 느껴보라는 저항이다. LA를 비롯하여 워싱턴 DC.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보스턴 등 미전역의 주요도시에서 히스패닉계 이민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루 동안 동맹파업과 등교 거부를 하고 있다.

 

 햄버거와 도넛으로 유명한 LA의 니켈 다이너(Nickel Diner)는 문 앞에 ‘우리는 모두 이민자입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휴업을 한다. 히스패닉계 레스토랑 겔라게차(Guelaguetza)는 트위터를 통해 ‘침묵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강해져라’라며 이민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일어서라고 부추긴다. 미동부에만 40여 개의 체인점을 가진 건강식 페스트푸드점으로 유명한 스윗그린(SweetGreen)은 총 열 여덟 개 식당의 휴업을 결정하며 ‘다문화는 훌륭한 가족 구성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이민자 직원들이 자신의 소리를 표출할 권리를 존중한다’며 고객들에게 휴업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한인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하지가 않다. 의류제조 및 봉제업체, 의류도매상이 몰려있는 자바시장은 물론 식당, 마켓 등 히스패닉 의존도가 높은 한인 경영 사업체는 지장이 많다. 이웃에 사는 내 친구는 자신의 악세사리 도매상에 종업원들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이 행사에 동참하지 않으면 가게를 부수겠다는 협박까지 받아 아예 문을 닫았다. 이런 사태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 앞으로의 경제 상황에 대한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다른 국가들을 위한 쓰레기장이 되고 있다”며 이민자를 배척하는 트럼프의 가족이야말로 이민자의 가정이다. 트럼프의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독일에서 이민을 왔으며 그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그의 첫부인도 체코 출신이고 현재의 셋째 부인도 슬로베니아인이다. 그런 그가 이민자 배척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온 나라가 시대에 역행하는 이민자 문제로 어수선한 요즈음 오히려 나는 미국이 세계 강대국이 된 이유를 피부로 느낀다. 트럼프의 반 이민 행정명령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민자들만 내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나 주류사회에서도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투철한 법치 아래에서 진정으로 인권을 존중하며 평등을 실천하는 사회구조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피부색깔이 어떻든, 영어 한마디 못해 버벅거리는 사람이든 전혀 상관없이 저희들과 똑 같은 부모고 자식이고 존엄성을 가진 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존중해 준다는 것이다.

 

 지난 주 보스턴에 다녀왔다. 동부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조카의 초청이었다. 올 5월이면 졸업이니 심심한 캘리포니아 기후에서는 만나보지 못하는 동부의 눈을 구경하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인지 일주일 예정의 여행 동안 눈이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실망하는 우리를 본 조카가 눈이 내리는 지역을 인터넷으로 찾았다. 세 시간을 북쪽으로 달려서 버몬트주의 작은 산장에 묵게 되었다. 그곳은 몇 명의 손님들만 선별하여 받는 아주 조용한 모텔이었다. 눈 쌓인 산골짜기에 그림처럼 앉아있는 산장의 문을 밀고 들어서니 발간 화롯불을 중심으로 백인 노부부가 앉아서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주인도 종업원도 투숙객도 모두 전형적인 백인들 속에서 동양 여자 세 사람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 산장 손님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 역시 낮에 본 노부부 세 쌍이 앉아서 도란도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실내 장식이 이 집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는 듯 고풍스럽고 안락했다. 내가 사진을 찍을 양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니 곁에 앉은 부인이 다가와 우리 세 사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생전 동양 사람을 처음 보는 듯이 물었다. 엘에이에서 왔다는 말에 더욱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궁금한 모양이었다. 내가 자랑스레 말했다. 이 애가 내 조카인데 지금 하버드 법대에 다니고 있다고. 순간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여자의 얼굴도 활짝 밝아지며 장하다며 조카를 안아주었다. 대화를 듣던 옆자리의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더니 다가와 조카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바드 법대. 허허허, 훌륭한 법조인이 되어서 트럼프 같은 정치가를 혼내주세요.” 그의 큰 목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박수를 쳤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마지막 시간과 여유를 즐기는 그들조차도 이민자를 핍박하는 트럼프를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건만 조그만 동양 여자아이의 미래에 미국의 장래를 맡기는 그들의 넉넉한 마음이 경이로웠다. 그처럼 사회 구석구석에 배여 있는 훌륭한 휴머니티가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은 스테이크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대구일보 2017. 2. 24>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

 

성민희

 

 어둠이 내리는 거리에 폭우가 마구 쏟아진다. 길가의 가로수도 빗물을 가르며 달리는 차도 비에 흠뻑 젖었다. 남의 나라에 생업을 기대고 사는 이민자의 설움을 하늘도 같이 울어주는 것일까. 올해 들어 부쩍 비가 많이 온다.

 

 오늘은 이민자 없는 날(Day without Immigrants)이다. 트럼프의 반 이민 행정명령에 반감을 품은 이민자들이 시위를 한다고 한다. 자영업자는 휴업을 하고 직장인은 결근을 하고 학생은 결석을 한다.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일체의 쇼핑도 삼가라고 한다. 그들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줌으로써 이민자 없는 미국을 한번 느껴보라는 자발적인 민중 저항 운동이다. LA를 비롯하여 워싱턴 DC.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보스턴 등 미국 전역의 주요도시에서 히스패닉계 이민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동맹 파업과 등교 거부를 하고 있다.

미국 동부에만 마흔 여 개의 체인점을 가진 스윗그린(SweetGreen) 건강식 패스트푸드 식당은 ‘다문화는 훌륭한 가족 구성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이민자 직원이 자신의 소리를 표출할 권리를 존중 한다’고 천명하며 각 도시에 있는 열 여덟 개의 식당을 휴업했다. 햄버거와 도넛으로 유명한 LA의 니켈 다이너(Nickel Diner)는 ‘우리는 모두 이민자입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휴업을 한다. 신문에서만 보던 모습이 우리 동네에도 보인다. 대형 슈퍼마켓 파킹장 코너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는 ‘우리는 인간 권리를 위해 일어섰다’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중년의 백인 사장은 시위 참여를 위해 결근하는 종업원에게 일당을 지불할 것이라고 한다. 요식업소의 모든 주인이 이민자가 아닌데도 시위에 동참하고 격려해 주니 고맙다. 자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과 풍습의 사람일지라도 인간이라는 존재감은 똑 같다는 열린 의식이 존경스럽다.

잡화 도매상을 운영하는 내 친구는 오늘 아예 문을 닫았다. 종업원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이 행사에 동참하지 않으면 가게를 부수겠다는 협박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해진 이민 단속에 겁을 먹은 몇 명의 불법체류자 종업원이 아예 자기 나라로 가버려서 가게 운영에 지장이 많은데 이런 일까지 일어났다. 혼란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몇 년 전 퇴근한 남편이 난데없는 선물을 들고 왔다. 회사 직원 부인이 보낸 감사 선물이라고 했다. 내 이름이 예쁘게 새겨져있는 핑크빛 볼펜이었다.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회사가 스폰서를 서 준 직원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나온 모양이었다. 나랑은 상관도 없지만 너무 기뻐서 손뼉을 쳤다. “그 식구들 이제 살게 되었어.” 그때는 남편의 말이 별로 심각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그 말의 무게가 새삼 느껴진다. ‘이제는 살게 되었다’는 말은 불법체류자로 사는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지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었다. 이웃의 미장원에서 미용사 보조를 하는 마리아는 미국에 들어온 지 8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불법체류자라고 했다. 그녀는 신분을 미끼로 정상 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온갖 궂은일을 다 시키는 주인의 횡포를 고스란히 견디며 산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삶마저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다른 국가들을 위한 쓰레기장이 되고 있다”며 이민자를 배척하는 트럼프의 가족이야말로 이민자의 가정이다. 트럼프의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독일에서 이민을 왔고 그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그의 첫부인도 체코 출신이고 현재의 셋째 부인도 슬로베니아인 이다. 그런 그가 이민자 배척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는 이 행정명령이 정상적인 이민자 대상이 아니라 불법이민자를 지칭한다며 변명을 한다. 그러나 불법이민자 역시 미국땅에 생존권을 뿌리내리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인권을 가진 존재다.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트럼프의 반 이민 행정명령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요즈음 나는 오히려 미국이 세계 강대국이 된 이유를 피부로 느낀다. 그 행정명령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민자만이 아니라 엄정한 법원이나 그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주류사회에서도 함께 내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어 한마디 못해 버벅거리든 피부 색깔이 어떻든 상관이 없다. 저희들과 똑 같은 부모고 자식이고 존엄성을 가진 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존중해 준다. 미국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 없이 보살피는 따뜻한 배려와 휴머니티는 감동이다. 투철한 준법정신을 바탕으로 한, 진정으로 인권을 존중하며 평등을 실천하는 미국인들의 의식이 너무나 멋있다.

 

 지난 주 보스턴에 다녀왔다. 대학원에 다니는 조카의 초청이었다. 심심한 캘리포니아 기후에서는 만나보지 못할 함박눈을 구경하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인지 일주일의 여정 동안 눈이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조카는 실망하는 동생과 나를 위해 눈이 내리는 인근 지역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우리는 북쪽으로 세 시간을 달려 매사추세츠, 뉴햄프셔를 지나 버몬트 주의 작은 산장을 찾아갔다. 몇 명의 선별된 손님만 받는 눈 쌓인 산골짜기에 그림처럼 앉아있는 모텔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얹힌 눈꽃 숲을 지나 산장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로비 옆의 작은 공간에는 발간 화롯불을 중심으로 백인 노부부가 앉아서 퍼즐 맞추기를 하고 저 너머 안쪽에는 또 다른 노부부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세상을 평화롭고 안락하게 살아온 듯한 모습에 우리들의 옷깃에 묻어온 눈바람이 따뜻하게 녹아내렸다. 주인도 종업원도 투숙객도 모두 전형적인 백인들 속에서 동양 여자 셋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 산장 손님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 역시 낮에 보았던 노부부들이 쌍쌍이 앉아서 와인과 함께 도란도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화롯불 위 베이지색 벽면 에 걸린 커다란 퀼트와 그림은 이 집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는 듯 고풍스럽고 안온했다. 내가 사진을 찍을 양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니 곁에 앉은 부인이 다가와 우리 세 사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생전 동양 사람을 처음 보는 듯이 물었다. LA에서 왔다는 말에 더욱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여기를 알고 찾아 왔을까 궁금한 모양이었다. 내가 자랑스레 말했다. 이 애가 내 조카인데 지금 하버드 법대에 다니고 있다고. 순간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 시선이 우리에게로 향했다. 여자의 눈이 반짝 커지더니 두 손을 뻗어 토닥토닥 조카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대화를 듣던 옆자리의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조용히 일어나 다가왔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는 머리가 그의 어깨에도 닿지 않는 여자아이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버드 법대. 허허허, 다음에 훌륭한 법조인이 되어서 트럼프 같은 정치가를 혼 좀 내주세요.” 그의 큰 목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박수를 쳤다. 조카의 손을 붙잡고 농담처럼 하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마치 가엾은 손자를 거두는 할아버지의 심정을 보는 기분이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마지막 시간과 여유를 즐기는 그들조차도 이민자를 핍박하는 트럼프를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건만 조그만 동양 여자아이의 미래에 미국의 장래를 부탁하는 그들의 넉넉한 도량이 경이로웠다. 그처럼 사회 구석구석에 배여 있는 훌륭한 휴머니티가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이 아닐까 싶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와인을 세 잔 보내주었다.

 

그날은 스테이크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수필폭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