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약하니 내가 끌려갔지”

“청춘을 짓밟힌 일본군 위안부나라가 우리를 너무 외면했다던할머니 증언이 귓가에 맴돈다”

2017.01.20

 

이현숙
재미 수필가


신문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상반된 기사 때문이다.
본국 지면에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일본과 충돌 우려가 있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을 대폭 삭제하거나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미주판 기사에는 미국의 제9 연방 항소법원이 일본계 극우단체 회원들이 글렌데일시를 상대로 제기한 평화의 소녀상 철거 항소심에서 소녀상은 연방 정부의 외교권 침해가 아닌 표현의 자유라는 점을 들어 원심유지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글렌데일 시정부는 매년 7월 30일을 ‘일본군 위안부의 날’로 지정해 그 의미를 새기고 있는데 본국에서는 축소를 하다니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닌가. 8년 전에 남편은 USC(남가주)대학에서 열린 환경문제 세미나에 참석했다.
일본인 연사는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무수한 인명이 죽음을 당하고, 그 피해가 지금까지 이어진다며 미국은 일본에 사과하고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단다. 
그런데 객석에서 한국여성이 손을 들고 일어나자 그녀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당신들은 한국 국민들에게 핵폭탄보다 더한 피해를 줬다.
귀한 문화재를 훔쳐가고 파괴했으며 성을 바꾸고 글을 말살했다.
특히 제2차 대전 당시 순진한 여성들을 취직시켜 준다거나 납치를 해서 강제로 일본 군인들의 성 욕구를 채우는 위안부로 만들지 않았는가. 당신들은 그 문제에 대해 사과를 했는가. 부끄럽지도 않으냐.”
그녀의 말이 끝나자 강단 안에는 박수가 쏟아지고 일본인 연사는 얼버무리며 급히 자리를 떠났단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인 남편은 가끔 그날의 감동을 되새기며 시간이 흐르면 잊히게 마련이니 위안부(Comfort Women)에 대해 글을 써서 알리라고 한다. 
나는 참담한 그 아픔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슬그머니 뒷걸음을 치고는 했다.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인근 글렌데일에 소재한 시립 중앙도서관 앞 공원에 동상이 있다. 
<평화의 소녀상>이다. 
단발머리의 소녀가 한복 저고리의 옷고름을 단정히 매고 주먹을 꼭 쥔 채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그 뒤로 바닥에는 검은색 타일로 조각조각 이어진 허리가 굽은 할머니 모양의 그림자 형상이 신발도 신지 않은 소녀의 맨발에 달려 길게 새겨져 있다.
꿈 많던 소녀에서 짓밟혀진 몸으로 인해 여인의 삶은 강제로 빼앗겨 어둠 속에 사는 위안부 할머니를 상징한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이 해외에 세워지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며, 위안부를 기리는 상징물이 미국 서부지역에 들어서는 것도 처음이란다.
살아서도 타국까지 끌려가 말로 표현 못 할 고통과 치욕을 당했는데 이제 또 다른 나라에서 울분을 터트리지도 못한 채 먼 하늘만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은 가슴을 시리게 한다. 
“나라가 약하니 내가 끌려갔지, 또 나라가 그동안 우리를 너무 외면했다”던 할머니의 증언이 귓가에 맴돈다. 

공장에 취직을 시켜준다거나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서 혹은 강제로 납치되어 끌려간 소녀들이다. 
정상적인 여인의 길을 걷지 못한 한이 깊은 상처로 남아 그분들을 아직도 괴롭히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가 필요악이었다는 발언 등으로 전쟁 기간의 성 노예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곱디고운 청춘을 강제로 짓밟히고 해방 이후 조국에 살아서 돌아왔다는 안도감보다 더럽혀진 여자라는 굴레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다.
이제 연세가 89.1세로, 생존자가 줄어드는데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으셔야 하지 않겠는가. 본국도 역사교과서에 왜곡되거나 축소되지 않은 사실 그대로를 기록해 후손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지금이야 전쟁을 겪은 세대들이 살아 있어 그때의 일들을 기억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또 그다음 세대는 남기지 않으면 어찌 알겠는가. “나라가 힘이 약해서 끌려갔다”는 증언을 새기자. 삭혀지지 않는 한 위에 잊히는 서러움까지 얹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나도 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려 한다. 
소녀에서 할머니가 된 분들의 삶을 글로 써야겠다.
일본군 ‘위안부’(Comfort Women)을 주위에 알려야겠다.
자주 소녀상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이번 주말에 두 아들을 데리고 가봐야지.
이현숙
재미 수필가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