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에 푹 빠지다.
이현숙
벼룩시장(Flea Market)에 왔다. 새크라멘토 근교에 있는 곳이다. 시누네 오면 꼭 들린다. 대학교의 운동장인데 주말에는 중고물품을 사고파는 장이 선다. 오전 10시인데도 이미 차들이 주차장의 반을 채웠다. 벼룩이 들끓을 정도의 고물을 판다는 이름에 걸맞게 텐트도 색이 바라고 찢어진 것까지 들쑥날쑥하며 빈틈없이 없다.
물건이 흔해지고 새록새록 신상품이 눈을 자극하는 세대이기에 집집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쌓이게 마련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쌓아두자니 자리를 차지하는 물건들을 직접 가지고 나와 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 일이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으나 다른 누군가에게 소용이 된다면 헐값에 내어주고 더불어 적으나마 수익도 챙길 수 있으니까. 요즘에는 새 상품을 가져와서 파는 텐트도 많다. 점포를 임대하는데 비용이 덜 들어서인지 일반 상점보다 싼 가격에 판다. 딱히 무언가를 산다기보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는 재미도 있다.
장난감 가게가 눈에 띈다. 손바닥에 들어올 만한 작은 캐릭터 인형들이 상자 속 가득 들어 있다. 하나에 1불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부러진 크레용이 작은 통들에 담겨져 일렬로 줄을 서 있다. 그 옆에는 어린이용 자전거가 앞바퀴에 바람이 빠진 채 비스듬히 누워있다. 장난감 칼을 들고 두 명의 아이들이 텐트 안을 뛰어 다니며 논다. 말리는 사람도 없다. 이미 낡았고 부러진 것이니 무슨 상관일까. 편한 곳이다.
그 옆에는 철물점이다. 철사와 못, 온갖 연장들이 진열대 위에 놓여 있다. 남자 손님들이 많은데 물건을 고르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유리 제품을 파는 곳에 들려 한 바퀴 돌아본다. 발레하는 여인의 옷은 반쯤 떨어져 나갔고 얼룩이 짙은 향수병들과 잔들이 뒤섞였다. 유리로 된 뚜껑 여럿이 포개져 있다. 그렇잖아도 며칠 전, 편하게 사용하던 냄비뚜껑을 떨어뜨려 깨어지는 바람에 속상해 하던 참이라 이것저것 들추다가 눈짐작으로 맞을만한 것을 찾았다. 2불이란다. 얼른 집어 들고 먼지를 쓸어낸다. 이런 재미가 있다. 횡재한 느낌이다.
가구를 파는 텐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나무로 된 의자에 바퀴 세 개가 달려 있는데 손잡이가 까맣게 때에 절었다. 누런 종이에 매직으로 흘겨 쓴 'Please Do Not Sit In Wheelchair'라는 목걸이를 걸고 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 중년의 남자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주인과 가격을 흥정하는 중이다. 50불이요. 25불만 하죠? 그럼 40불이요. 페인트칠도 해야 하고 바퀴도 새로 만들어 넣어야하니 25불이면 사죠. 서로 가격을 흥정하는 여유도 있다.
가끔 전문가들은 벼룩시장이나 거라지 세일을 돌면서 진품이나 명품을 사냥 다닌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 먼지 속에서 홀대를 받다가 임자를 만나면 그 값어치를 인정받는 물건도 많다. 혹시 다른 뭔가가 있나하고 들여다봐도 내 눈에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낡은 의자일 뿐이다. 그 남자가 포기를 하고 돌아서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흥미를 잃었는지 하나 둘씩 흩어진다. 주인이 혼잣말로 뭔가를 중얼거린다. 아쉬운가 보다.
남편이 한 텐트에 머문다. 여든 살은 넘어보이는 노인이 한국전 참전용사Korean War Veteran라고 새겨진 모자를 쓰고 앉아있다. 총알을 보관 할 수 있는 국방색의 깡통 여러개와 태양의 모양을 본 뜬 오래된 일장기와 훈장들이 허름한 유리 상자 안에 담겨져 있다. 주인장인 팀Tim은 남편이 베트남 전에 참전했다는 말을 건네자 오랜 동지를 만난 듯 의자에서 일어나며 악수를 청한다. 동서를 불문하고 군대 이야기는 남자들을 금방 친하게 만드나보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더욱 반가와 한다. 부산, 이태원하며 생각나는 도시 이름을 끄집어낸다. 그는 물건을 팔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화 상대를 만나기 위해 장을 펼친단다. 잊혀진 세월을 나누며 알리고 싶다는 말에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마음이 뭉클했다. 끊이지 않는 역사의 숨결을 느낀다.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옆 텐트로 눈길을 돌린다. 상위에 구겨진 채 놓인 테이블보가 궁금했다. 다가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찬찬히 살펴본다. 꽃모양을 떠서 조각조각 이어 붙인 디자인이 특이했다. 코바늘을 이용해 일일이 뜬 솜씨도 좋지만 시간과 정성이 꽤 들었을 정도의 넓은 크기다. 주인이 다가오며 오래전에 일본인 친구가 만들어준 선물이란다. 이사할 때마다 상자에 넣을까, 버릴까 망설였던 물건인데 색도 바라고 해서 5불에 판단다. 내가 짙은 색으로 염색을 하면 꽃 디자인이 더 살아날 것 같다며 지갑에서 돈을 꺼내자 주인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다. 옆에 놓인 상자를 뒤적이더니 손뜨개질로 만든 컵받침 세 개를 꺼내준다. 함께 잘 사용하란다. 자신에게는 필요치 않지만 다른 사람이 요긴하게 이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서로 통하면 덤으로 더 얹어 주기도 한다. 정이 오고간다.
나는 벼룩시장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고만고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아도 가볍게 나설 수 있기 때문일까. ‘그까짓 1불’ 이 아니라 ‘1불이 어디야’라는 긍정의 에너지를 배운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이지만 나눈다는 공동체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움직이며 살아가는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한 곳에 계속 다니기보다는 무심코 나선 길에 벼룩시장 텐트들이 보이면 무작정 그곳으로 찾아간다. 동네마다 팔려고 내어 놓은 물건이 다르고 인종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낯선 삶을 만나고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덤으로 듣는 횡재를 얻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내 글쓰기의 소재가 되어준다. 앞으로도 나는 벼룩시장에서 만나는 삶의 이야기들을 글로 옮길 것이다.
요즘 나는 벼룩시장의 매력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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