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북쪽 끄트머리 땅이자 미국으로 연결이 되는 국경도시 멕시칼리(Mexicali)다.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길고 높은 강철 패치워크(쪽매붙임) 벽이 오른쪽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미국과 멕시코 간의 국경선은 휴전선의 10배 이상 규모라는데 그 중의 일부분이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 펼쳐져 있다. 
적외선 카메라와 센서, 무인 항공기가 도처에 설치되어 있다. 
반면 미국에서 멕시코로 들어가는 국경은 별다른 장치가 없다.
그냥 통과다. 
반대로 미국으로 돌아오는 관문은 절차가 까다롭다.
탐지견이 차를 한 바퀴 돌고나면 경비대원은 거울이 달린 기다란 막대기로 차 밑을 본다. 
1차로 통과되면 여권 심사와 차안의 물건들을 검사한다.
달리면 10분도 안 걸릴 4마일 정도 길을 통과하는데 보통 2시간 반 넘게 걸린다. 

나는 이 도로에 들어서면 티시 히노호사가 부른 노래 ‘돈데 보이(Donde voy)’가 떠오른다. 
‘돈데 보이 돈데 보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가난을 벗어나려 멕시코 국경을 넘는 라티노(Latino, 라틴계 이주민)의 비애를 노래했다.

불법 월경을 해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멕시칸이 한 해에도 50만 명 이상이나 된다. 
무서운 열사의 사막과 험한 강, 위험한 밀림을 넘다가 잡혀 강제 추방이 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도 많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그런 사연들이 애절하고 호소력 깊은 음색에 담겨서인지 언제 들어도 슬프다.
그 노래를 이 거리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부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3차로의 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버렸다.
멕시칸들이 길게 이어진 차들의 행렬 사이사이를 다닌다.
때에 절은 수건을 흔들며 유리창을 닦으려 덤벼든다.
신문팔이가 층층이 잡지와 신문을 꽂은 가방을 목에 건채 차안을 기웃거린다.
도로의 중앙선인 나지막한 시멘트로 만들어진 울타리 위에는 장난감들과 인형들을 세워 놓고 파는 잡상인들이 줄줄이 서 있다.
손바닥만 한 틈이 있으면 그 자리에 잡상인의 좌판이 펼쳐진다.
팔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거의 공짜’라는 외침 속에 팔려 나가길 목 빠지게 기다린다.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할머니, 목발을 짚은 중년의 남자, 붕대를 칭칭 감은 여자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서서 구걸을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돈이 될 것 같은 행위를 길 위에서 펼치는데도 아무런 통제가 없다. 

철책 반대편 미국 땅인 칼레시코를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주택들은 여유롭게 보였고, 상점들은 한가로운 오후 햇살 속에서 꾸벅꾸벅 낮잠을 즐겼다. 
맥도날드 안의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며 놀고 엄마인듯한 여인들은 스마트 폰에 빠져 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공기로 숨을 쉬고 한 태양 아래, 한쪽은 살기 위해, 한 푼의 돈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길을 헤매고 다른 쪽은 느긋하기까지 하다.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동안 내내 그 핵심에 자리 잡고 있었던 국경의 장벽. 지금도 장벽이 높은데 더 막을 치자고 한다.
불법이민이나 위법약물의 유입 대책으로 국경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히스패닉 커뮤니티가 요즘 들썩이고 있다.
터지기 일보직전의 활화산이다. 
얼마 전에는 곳곳에서 데모 행렬이 거리를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으로 내정된 트럼프에게 그들의 힘을 보려 주려는 의도다.

캘리포니아 주의 히스패닉 인구 비중은 약 39％이고, 15세 미만 인구를 보면 히스패닉의 비중이 무려 72％를 차지한다.
이들이 자라서 정치, 경제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될 때쯤이면 히스패닉의 영향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한다.
경제나 정치계의 밑바닥부터 골고루 자리를 잡고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어 잠재력이 무한대다. 
그들은 지금 트럼프가 어떤 정책을 내밀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많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하나.  
달리는 것을 잊었던 차가 미국 국경수비대 구역으로 들어섰다.
뒤를 돌아다본다. 
휘어진 등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국경 경비대원에게 이상 없음을 확인 받고 금빛 독수리가 그려진 미국시민권자용 여권을 돌려받았다. 
평상시에는 서랍의 구석진 곳에서 잠을 자고 있던 것이 이제야 제 역할을 수행했다. 
이것이 있기에 나는 저들을 그냥 바라보았는지도 모른다.
가진 자의 여유다. 
국경 경비초소를 벗어나니 넓고 훤한 길이 우리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