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시합을 보다

 

 

  남편 친구 부부와 함께 샌디에고 칼스베드의 파크 하얏트 아비애라(Park Hyatt Aviara) 리조트로 향했다. 오늘은 LPGA 기아 클래식(Kia Classic) 마지막 결승전이 있는 날이다. 스폰서 기업이 우리나라의 기아자동차라는 것도 반가웠지만 총 일흔 다섯 명의 선수 중 한국에서 날아온 선수가 열 여섯 명, 미국 등 다른 국적으로 출전한 한국 선수가 7명, 무려 스무 세 명이나 되는 조국의 딸들이 출전하는 시합이라 더욱 마음이 쏠렸다.

 

오전 열 시 삼십 삼분부터 3명이 한 조가 되어서 열 세 개의 조는 1번 홀부터, 열 두 개의 조는 10번 홀부터 경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거의 열 두 시라 마지막에서 세 번째 조가 티샷을 하고 있었다. 가방 검사를 끝내고 부리나케 1번 홀 티박스로 갔다. 마침 폴라 크레이머가 티샷을 할 차례다. 남편 친구는 그녀의 광팬이라 환호성까지 지르며 달려간다.

  티박스를 중심으로 갤러리들이 죽 둘러선 가운데 티셔츠에 바지, 신발, 머리 리본까지 핑크빛으로 멋을 낸 크레이머가 핑크볼을 핀 위에 올려놓는다. 어나운서가 그녀의 소개를 하니 갤러리들이 박수로 맞이한다. 무엇보다 조용히 집중해야하는 티샷을 이렇게 왁자지껄해도 괜찮은가 하는 나의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참으로 침착하게 볼을 날린다.

  다음 차례는 리디아 고다. 자그마한 체구에 다부진 입. 현재 세계 랭킹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녀 소개에 사람들은 힘찬 박수를 보낸다. 자랑스럽다. 그녀의 가뿐한 티샷 뒤로 작년 우승자인 렉시 탐슨도 티샷을 날린다.

  리디아고 팀이 떠나고 다음 팀이 올라서는데 보니 박세리와 제니퍼 송, 크리스티 커다. 검정 티셔츠에 하얀 바지 차림의 박세리는 옛날보다 많이 날씬하고 세련되었다. 짧은 커트머리에 눌러쓴 모자 아래로 보이는 작은 눈이 반가워 뛰어가 안아주고 싶다.

  그녀들도 갤러리를 몰고 페어웨이로 떠나가고 마지막 팀이 올라온다. 이미림과 앨리슨 리, 일본선수 사쿠라 요코마인이다. 요코마인은 한국 선수들에 비해 키도 덩치도 형편없이 작다. 이유도 없이 마음이 뿌듯하다. 나의 조국은 이제 더 이상 동방의 이름 없는 작은 나라가 아니다.

 

  김효주도 보고 싶고 미셸 위도 보고 싶고, 박인비, 유소연 등, 보고 싶은 선수들이 많아 우리는 앞 홀로 급히 걸어갔다. 네 번째 홀에 들어서니 낯익은 뒷모습이 보인다. 장하나와 박인비가 캐티 버넷과 한 조가 되어 치고 있다. 그 조의 선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따라가는 사람, 카메라맨과 보조 장비를 들고 가는 사람, 긴 수세미처럼 스폰지로 감싼 마이크를 들고 가는 사람 등. 세 명의 선수 뒤로 세 명의 캐디들 외에 너 댓 명이 더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간다. 이 진행요원들은 모두 골프장 멤버들 중에서 차출된 자원봉사자들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중년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땡볕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며 따라 다닌다. 선수들은 매 샷마다 신중하게 거리와 방향을 연구한다. 아무리 늑장을 부려도 갤러리들은 양손을 치켜든 진행요원의 손이 내려올 때 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린다.

 

  한참을 따라 다니다 보니 배가 고프다. 9번 홀이 끝난 자리의 클럽하우스 앞에 야외 식당이 마련되어 핫도그와 햄버거를 판다. 그리고 한 켠에는 간이 화장실이 열 개 쯤 서 있다. 실내 화장실은 선수용으로 차단시켜 놓았고 프로샵은 아예 문을 닫았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양산을 세워 그늘이 진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다. 맛이 어떤지도 느낄 틈도 없이 핫도그를 뚝딱 먹어치우고 일어나려는데 한국 할머니와 젊은 남자 서 너 명, 남자 초등학생이 다가왔다. J선수의 식구들이라며 응원을 부탁한다. 야구시합이나 축구 시합처럼 우우 응원가를 부르는 것도 아닌데 응원을 부탁하는 그들의 마음이 짠하게 다가온다. 열심히 응원을 해 주리라 다짐을 했다.

 

  홀11은 홀17과 가까이 붙어있다. 우리는 나무 그늘이 넓은 둔덕에 자리를 잡고 앉아 두 홀을 왔다 갔다 하며 선수들의 티샷을 구경하기로 했다. 11번 홀 옆은 선수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다. 우리는 부리나케 그 곳으로 가서 티샷을 날리고 이동하는 선수들을 보기로 했다. 김효주, 박인비, 장하나, 리디아 고, 박세리, 이미림 등이 차례로 지나간다. 우리는 그녀들의 이름을 부르며 ‘예쁘다’ ‘자랑스러워’ 란 말을 연발했다. 남편은 리디아 고에게 하이파이브를 요구 한다. 내가 바쁜 아이에게 무슨 짓이냐며 눈을 홀겼다. 우리의 딸들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감사의 눈웃음을 웃어 주었다.

 

  미셸 위를 꼭 봐야한다는 친구 부인의 성화에 우리는 본부석으로 달려갔다. 10번 홀부터 시작한 미셸 위 팀은 마침 시합을 끝내고 스코어 카드를 본부석에 전달하고 있었다. 안경을 쓴 모습이 티비에서 볼 때 보다 작아 보인다. 사람들의 사인 요구에 일일이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가까이서 조국의 딸들을 보니 한 명 한 명이 참으로 멋지고 자랑스럽다. 마이크를 갖다 대어도 거리낌 없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상습적인 일탈 행위는 묵과 할 수 없다’던 10년 전의 신문 기사 타이틀이 떠오른다. 그때는 한국 선수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때였건만, 여자 프로 골프 협회(LPGA)가 한인 선수와 부모를 향하여 던진 포고문이었다.

  경고를 받은 이유는, 관계자 외에 출입이 금지된 페어웨이 구분 밧줄 안으로 무단침입해서 딸을 코치하는 행위, 캐디인 아버지가 딸에게 고함을 질러 옆 선수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행위, 라운딩 후 딸을 때리거나 책망하는 행위(아버지의 심한 꾸중에 다른 나라 선수가 신고를 하여 출입 금지 조처까지 내려졌다고 한다.), 프로앰 (프로와 스폰서 회사의 아마추어 VIP가 함께 본 대회 하루 전에 하는 대회) 에서 동반플레이를 하는 VIP와 말 한마디 교환하지 않아 스폰서 회사가 한인 선수 배정을 기피하는 행위, 선수 전용 파티에 출입이 금지된 부모와 친척, 친구까지 입장 시키는 행위, 선수 라커룸에서 음식물을 가져다가 가족에게 나눠주는 등,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위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을 포함한 외국 선수들과 협회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내린 결정이라는 설명을 읽으며 많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걱정은 아예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세련되고 젠틀하다. 오히려 백인 선수들 보다 더 당당하다. 가족들도 어디에 있는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경기가 거의 끝나간다. 우리는 마지막 경기를 볼 양으로 18번 그린으로 쫒아갔다. 사람들은 이미 그린 주위에 포진하고 선수들의 퍼팅을 구경한다. 진행요원은 날아오는 볼이 그린에 안착하면 손뼉을 쳐서 멀리 있는 선수들에게 그린 안착을 알려준다. 전광판의 스코어를 보니 현재 스코어는 크리스티 커가 (–21)이고 그 뒤로 이미림이 (–20)으로 바짝 따라오고 있다. 남편은 마지막 홀에서 크리스티 커가 보기를 하면, 이미림은 파만 유지하고 따라와도 스던데스로 갈지도 모르겠고, 만약 서던데스로 간다면 이미림이 이길 것이라며 흥분한다. 남편 말대로 크리스티 커가 보기를 해서 (-20)이 되었다. 와! 하는 우리의 환호성이 그치기도 전에 전광판의 이미림 이름 뒤에 (-20)이 (-18)로 내려가 버렸다. 17번 홀에서 이미림의 볼이 물에 빠져 버렸단다. 덕분에 2점이 올라가 버렸다. 주위의 갤러리들이 아깝다며 발을 구른다.

 

  우리는 또 본부석으로 달려갔다. 선수들이 스코어 카드를 본부석에 제출하고 돌아서 나와 갤러리들에게 사인을 해주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욕심으로 사람들 틈에 끼여서 목을 빼고 쳐다보았다. 마침 박세리가 나온다. 사인을 해 주는 그녀에게 남편도 모자를 벗어 들이밀었다. 박세리는 겸손하게 웃으며 모든 사람들의 사인 요구와 사진 촬영에 응해 주었다. 든든하고 차분한 모습이 참 예뻤다. 선수들은 이틀 뒤에 있을 ANA Insperation LPGA를 위해 팜스프링으로 이동한다. 남편 친구는 ‘폴라 크레이머는 내가 데려다 줘도 좋은데.’ 하며 싱거운 소리를 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계속 선수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대한민국. 자랑스럽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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