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물
요즘 신문을 보면 한국은 물론, 미국도 중국산 제품들 땜에 골치를 앓는다는 기사가 많다. 먹거리뿐 아니라 일상용품들, 심지어는 가장 정직하게 만들어야 할 아이들 장난감이나 갓난쟁이 턱받이까지도 문제가 되어 리콜 한다는 소식은 세상살이에 위기감마저 느끼게 한다.
미국의 어떤 여성이 일 년 동안 실험을 해 보았는데 무엇보다 일상용품에서 중국산을 피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어느새 온 세계를 장악한 중국 제품을 피해갈 수는 없고, 사용하자니 불안하고... 참으로 심각하다. 신문이나 TV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탓에 나도 언제부터인가 먹거리를 살 때는 꼭 생산지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눈에 띄게 Made in China라는 표시가 있으면 슬그머니 제 자리에 도로 놓지만, 어떤 제품은 아무리 돌려봐도 제품의 생산지가 보이지 않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며칠 전 한국마켓에서 검정깨를 한 봉지 샀다. 봉지를 손에 들고 요리조리 아무리 살펴봐도 어느 나라 제품이라는 표식이 없었다. 그렇지만 ‘xx장터’ 라는 구수한 시골 마을 이름이 있어 마음이 조금 끌렸다.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는 시골 시장이름이기에 한국산이 틀림없다는 믿음으로 그것을 사 왔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중에 찬물에 훌훌 씻으니 물이 새까맣게 변했다. 예전에도 검정깨는 씻을 때 마다 검은 물이 나오더라 싶어서 (옛날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씻었다.) 이번에도 두어 번만 헹구고 그만두려 했는데 갑자기 중국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히 넘어갈 수가 없어 또 씻어보았다. 그랬더니 씻을 때마다 똑 같은 농도의 검은 물이 나온다. 염색한 중국깨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설마 ‘xx장터’인데 싶기도 하고. 마음이 갈팡질팡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검정깨를 씻으니까 자꾸만 검은 물이 나오는데 본래 검은 물이 나오는 거냐고. 엄마는 그렇지 않은데... 미심쩍어 하셨다. " 엄마, 검은깨니까 검은 물이 나오는 거 아니야?" " 야~가. 뭐라카노. 그라몬 흰둥이가 목욕하몬 흰물 나오고, 노란둥이 목욕하몬 노란물 나오고, 껌둥이가 목욕하몬 꺼어먼 물 나오더나?"내가 그만 뒤집어졌다.
엄마는 이렇게 단칼에 상대방을 제압해버리는 영리한 할머니다. 올해 여든 두 살이시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