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엄마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곳에 취직이 되었다며 기뻐하던 아들이었다. 리먼브라더스로 인한 금융 대란 탓에 출근하기로 한 투자회사에서 내년 7월까지 기다려달라는 소식이 왔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며칠을 들락거리더니 삼촌 회사에 출근하기로 했단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며 출근하는 아들을 배웅한 지 겨우 3개월. 거기서 보내는 시간이 낭비 같다며 그만 둬버린다. 자기가 무슨 큰 일 할 게 있다고 돈 버는 시간을 낭비로 생각하는지 마음 같아서는 그냥 머리통이라도 콱 쥐어박고 싶지만 그래도 관계 유지는 잘 해야지 싶어서 꾹꾹 참고 있었다.
밤새도록 놀고 한 낮까지 자고. 밤낮이 확실히 바뀌어 백일 갓 지난 아기들이 하는 짓을 해도 모른 척 아무 말 않고 있었더니 어제는 웬일인지 저녁을 같이 먹자며 일찍 들어왔다. 마침 남편은 모임 갔다 늦게 들어온다기에 둘이서 한국식당을 찾았다.
"엄마. 나 멕시코에 캠핑 갔다 올 께."
순간 스무 살도 넘은 나이에 이 무슨 철없는 소리인가 싶어 숨이 턱 막힌다.
"뭐? 캠핑? 누구하고?"
"친구들 몇 명이 같이 간다."
거지 떼처럼 몰려다닐 꾀죄죄한 아이들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어떤 친구들?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교 친구들 몇 명."
대학친구들이라니 조금 안심이 된다. 요즘 인베스트먼트 뱅크 다니는 아이들이 많이 실직되었다고 하던데. 난데없이 백수가 된 친구들이 뭉쳤구나 생각하니 조금 측은하기도 하다. 이 시대 탓인 걸 어떡하리. 그래도 그렇지 겨울이 오는 이때에 뭔 캠핑? 그것도 멕시코로.
"멕시코는 위험하다고 하던데."
대놓고 뭐라 할 수는 없고 위해주는 척하는 말에 녀석 눈이 둥그레진다.
"왜?"
"멕시칸들이 미국서 오는 사람들한테 해코지 한다고 하던데. 사기도 치고. 갱들도 많고."
"멕시칸이 왜? 거긴 멕시칸 없어. 엄마."
"아니, 멕시코에 와 멕시칸이 없노?"
"엄마아, 멕시코가 아니고 뉴멕시코. 아리조나 옆에 있는..."
이런 이런! 이런 무식이 있나. 그러고 보니 뉴멕시코란 주 이름을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미국 지도에 웬 뉴멕시코? 갑자기 지명을 지은 사람이 원망스럽다.
"그래?" 아들은 킥킥 웃는데 퍼뜩 또 다른 생각이 든다.
"거기도 바다가 있나? 호수가 있나? 사막일낀데. 거기서 무슨 캠핑을 하노? 요새 너희들은 사막에서도 캠핑하나?"
푸하하 아들이 드디어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캠핑이 아니고 캠페인~~~"
뉴멕시코로 오바마 선거 캠페인 도우러 간다는 말을 멕시코로 캠핑 간다는 말로 들었으니
이 대책 없는 에미를 우짜몬 좋을꼬. <사람이 고향이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