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미주통신]

 

정직한 거울, 성찰하는 사관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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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희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땅아 흔들려라. 나는 내 영혼을 흔들어 너를 다스리리라.” 김홍신 작가가 마이크를 잡자마자 우렁차게 날린 첫 멘트다.
곧 이어 ‘문인들이여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 역사와 대화하고 역사를 깨워주십시오.’ 경북도지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축사로 ‘세계한글작가대회’의 막이 올랐다. 국내외 한글학자 및 유명작가와 문인, 세계 18개국에서 발표자로 초청 받아 온 해외문인 등 600여 명이 ‘한글문학 세계로 가다’라는 주제로 모였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주관한 3박 4일 동안의 행사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특별 강연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온 아나톨리 김 작가는 호랑이를 만난 나나이족 사냥꾼이 “암바! 암바! 너도 좋은 사람이고 나도 좋은 사람이다. 물러가거라. 암바.” 하고 외쳤더니 호랑이가 떠나가더라는 예를 들며 비록 서로 소통이 되지 않을 지라도 언어에는 혼이 담겨 자연의 힘, 동물의 야성적 힘, 위대한 황제의 권력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라고 했다.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예자오옌 소설가는 말했다. 사람들은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하지 정작 그의 작품을 읽지는 않는다고. 외면 당하는 문학의 현실 속에서도 중국문학, 한국문학, 나아가 동양문학은 자기의 위치를 찾아갈 거라는 낙관적인 강의를 했다.

 

이튿날부터 시작된 주제발표 시간에 내게는 ‘한글 문단이 나아갈 길’이란 주제가 주어졌다. 이것은 해외작가들이 한국문단을 위해 어떤 역할을 감당해 줄 것인지를 기대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 원고를 작성하는 중에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국 사회에는 ‘위대한 세대’이라고 불리는 존경 받는 세대가 있다. 1911년부터 1924년 사이에 태어나 1929년의 대공황 속에서 성장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전후 복구와 경제건설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그리하여 마침내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세대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저절로 생겨 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 방송인 탐 브로커(Tom Brokaw)가 그들의 삶이 어떻게 미국을 최강국으로 이끌었나를 저술한 책 <The Greatest Generation>에서 따 온 말이다. 역사의 한 가운데에 이런 위대한 삶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미국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책을 통하여 재인식한 것이었다.

평범한 작가의 글이 사라진 시대를 역사의 한가운데로 이끌어 내어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닌가 싶다. 크게는 역사의 획을 긋기도 하고, 작게는 개인에게 행복과 위로도 줄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며 동시에 보람이다.

 

우리 이민 1세들은 조국의 흙을 뿌리에 묻힌 채 미국으로 이주해 와 낯 선 땅에 새로이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다. 척박한 땅이든 비옥한 땅이든 뿌리를 새로 내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드는 일일진대, 현재 미주교포들은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어 어느 민족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미주 이민 역사를 돌아볼 때 이들 또한 위대한 세대다. 이 위대한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우리들은 글로 풀어내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한다.

미주 문인들은 이 위대한 이민 1세의 삶이 뼛속에 각인되고 핏속에 녹아있는 사람들이다. 삶으로 체득하지 않고는 결코 기술할 수 없는 주제와 소재로 독특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본국의 문인들은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글쓰기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다. 육체로 체험한 이민 정서와 영혼 속에 흐르고 있는 한국정서를 아울러서 글로 옮길 수 있는 작가가 바로 현재의 해외 문인들인 것이다. 이들이 써내려가는 작품 한 편 한 편은 미주 이민의 생생한 역사를 엮는 일이며 또한 우리 2세들의 미래를 여는 작업이기도 하다.

 

발표를 맺으며 나는 희망을 말했다. 앞으로 해외 문인들은 교포사회를 글로써 그리는 정직한 거울이 되고 성찰하는 사관(史官)이 되면 좋겠다고, 그리하여 한국 문학의 또 다른 영역을 멀리 이국땅에서 가꾸며 넓히는 역할을 감히 감당하면 좋겠다고. 발표를 마치고 내려오는 마음이 뭔지 모를 느낌으로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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