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
이 현 숙(LA 거주, 수필가)
페루에서 손님이 왔다. 남편은 히스패닉인데, 그 조카의 처갓집 가족이 휴가를 왔다.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됐는데 초면이기도 하지만 언어가 달라 서먹서먹했다. 마주 앉았던 조카의 처형인 마리아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반가워한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자 핸드폰을 꺼내서 자신이 보는 드라마를 보여준다. 스페니쉬로 밑에 번역이 되어 나온다. 10살 난 그의 딸 힐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만났다며 자꾸 곁눈질을 한다. 마리아가 미안한 기색을 하며 페루로 돌아가기 전에 코리아타운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아, 코리아타운.
미국으로 이민 온 80년대 초, 남미계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터를 잡았다. 말과 문화 모두 낯 선 환경에서 긴장하며 살다가 일주일에 한번 장보러 한 시간 거리의 코리아타운에 나갔다. 그 나들이는 마치 친정집에 가듯이 기다려지고 설렜다. 한국 식료품을 취급하던 유일한 올림픽마켓 안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은 단지 같은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반갑고 정겨웠다. 덥석 손을 잡고 한동네 살던 언니를 만난 것처럼 잘 지냈느냐고 안부를 묻고 싶을 정도였다.
2016년 지금의 코리아타운은 단지 한인의 주거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 거대한 상권을 이루어 한국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가 있다. 영어 한마디 사용하지 않아도 별로 힘들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나 또한 변했다. 중년의 나이에 생활과 의식이 미국화가 되어서인지 코리아타운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마음을 찡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중심거리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과 놀만디 길은 지나기 싫어 일부러 돌아가기도 한다,
올드 타이머들의 사랑방이라고 할 수 있는 영빈관(VIP Palace)의 달라진 모습은 명치끝을 아프게 한다. 이 건물은 주인이 한국 사람이 별로 없던 1975년에 직접 청기와 1만장을 공수해 오고 단청 장인까지 초빙해서 한국적 문화와 정서를 담아 한국식당을 개업했던 곳이다. 당시에는 아파트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면 이웃에서 무슨 냄새냐고 소동이 나고, 강한 마늘 냄새에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눈치 볼 것 없이 된장찌개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그곳이 우리들에게는 고향집이었다. 후에 뷔페로 바뀌었을 때는 돌잔치 회갑잔치 등으로 자주 드나들었다.
몇 년 전 남미 레스토랑인 겔라게차(Guelaguetza)로 바뀌어 내 눈을 의심했다. 된장의 구수한 냄새가 배였던 기와가 이제는 남미의 진한 향인 몰레칠리 소스의 냄새에 묻혀버렸다. 주말이면 그들의 민속춤 공연이 펼쳐지고 식당 안의 코너에는 민속공예품도 판다. 청기와 밑의 진한 오렌지색으로 칠해진 벽, 그 위에 그려진 남미계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철거되고야 말 저 청기와를 곱게 걷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얼룩진 단청이 아깝다. 우리의 고유문화를 지켜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가끔 외국인들을 대접할 일이 생기면 고민이 된다. 한국문화와 전통을 알리고 싶은데 딱히 내세울 것이 없어 아쉽다. 코리아타운에는 한국에 대해 알릴 건물이나 문화를 나타내 보여줄 그 무엇도 없다. 한국을 느끼기 위해 찾은 외국인들의 눈에 이해하기 힘든 한글 간판만이 늘어서 있는 코리아타운에 실망을 할 것이다.
우리 2세들에게 부끄럽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그 뿌리는 한국에 있다는 정체성을 심어줄 상징적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화 되어가는 그들에게 한국인으로 떳떳하게 내세울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가 이루어질 때 그 의미가 빛을 발한다고 했다. 지금 내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먹고 사는데 바빠서’라는 핑계를 내려놓고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알려야 할 의무를 해야 할 때이다. Koreatown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의 문화적 매력을 발산시켜야 한다. 느끼게 해야 한다. 저절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월드컵 게임이나 올림픽 게임 때 뭉치던 그 힘을, 그 애국심을 문화 발전과 전통 살리기에도 발휘해야 한다. 이번 페루에서 온 손님을 코리아 타운의 식당으로 데려가 갈비와 잡채로 입이라도 즐겁게 해주어야겠다.
대구일보
2016년 10월 23일(금) 게재, 「미주통신」란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