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일단 부사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단 하나의 문장. 그 문장에 도달하려는 노력. 이 노력에서 문학이 시작된다.” – 신형철, 팟캐스트 <문학이야기>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와의 대담
1. 문학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문학이라는 것을 해보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는 그 이상한 일은 어떻게 벌어지는 것일까?
“‘우리의 말은 늘 넘치거나 모자란다.’ 이런 느낌들 자주 받게 되죠. 그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그러려니 하면서 사용하게 되고 이제는 말이 넘치는 건지 모자라는 건지 인식하지 못한 채로 그냥 말을 내뱉게 되는 그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 하는 욕망을 가질 수 있겠죠.
정확하게 말하는 것. 이게 문학이 출발하는 지점, 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 문학이라는 것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말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2. 정확하게 말한다는 것: 음악가와 방송인의 술자리에서의 사례
“다이나믹 듀오가 최근 7집을 내서 인터뷰를 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 다이나믹 듀오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개그맨 신동엽씨랑 같이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그 때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신동엽씨에게 ‘형 저 형이 너무 좋아요. 우리 자주 봐요.’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신동엽씨가 이렇게 답을 했대요 ‘자주 보자고? 야 뭐 다 바빠가지고 그러기 힘들잖아. 그렇다는 거 너희들도 알잖아. 우리 그냥 가끔씩 오래 보자,’ 이렇게 말을 했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게 정확한 말이라는 거죠. 다이나믹 듀오도 이게 참 인상깊다고 느껴서 이번 앨범에 ‘가끔씩 오래 보자’라는 제목의 곡을 수록하기도 했습니다.”
3. 정확하게 말한다는 것: 음악의 사례
“음악에 대해서 잠깐 해보자면, 저는 윤상씨를 무척 좋아합니다. 한 20년동안 팬인데요, 흔히 그 무인도에 갈 때 무슨 CD를 가져갈 거냐고 물으면, 저는 책에 대해서는 아주 긴 고민을 하게 될겁니다. 그래서 아직 답을 정하지 못 했는데요, 저는 음악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윤상씨의 앨범 중 인센서블 이라는 앨범이 있습니다. 이 앨범이 나온 직후부터 수도 없이 듣고 있습니다. 윤상씨를 좋아하는 분들 중에는 특히 이 앨범을 아끼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게 왜 그러냐면 이 앨범이 윤상씨가 초기부터 관심을 가졌던 소위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에 대한 관심을 아주 결정적인 방식으로 폭발적으로 보여준 앨범인데, 그 앨범의 처음 세 트랙이 죽음의 트리오죠. 윤상씨를 좋아하는 분들은 가장 뛰어난 트랙이라고 생각들을 하실 텐데요, 멜로디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를 듣게 되는 체험, 그 체험을 처음 한 것이 이 앨범이었어요. 그래서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기타는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베이스는, 드럼은. 어떤 소리를 선택해서, 그 소리들을 결합해서 음악을 만드는가. 이거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습니다. 각 분야별로 하나의 소리로 결정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 기능 안에서도 여러 가지 소리의 스펙트럼들이 있을 텐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죠. 어쩌면 이렇게 다른 소리로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나 이렇게 이 곡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리들로 곡을 만들까 깜짝 놀라게 되는 체험을, 아직도 이 음악을 들으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뒤에도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인공적인 소리들에 실증을 내게 되는데 이 앨범의 소리들은 실제 연주자들이 연주한 그런 소리들보다도 정서적인 울림이랄까요 그 울림은 더 큰 거죠. 인공적인 악기들이. 이 얼마나 섬세한 소리에 대한 결과인가.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 음악에서는 정확함 의 한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마디로 정확함이란 것은 ‘대체불가능한 상태’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소리 하나만이라도 다른 소리로 바꾸면 전체가 무너지는, 그러니까 가장 정확한 소리들로 결합이 되어 있는 상태인 것이죠.”
4. 정확하게 쓴다는 것: 선택과 결합에 의한 대체불가능성
“대체불가능성, 선택과 결합이라고 하는 이 두 매커니즘이 딱 결합되고 선택된 그 상태가 음악으로 치자면 편곡을 다시 할 수 없는 상태. 재편곡을 하면 원곡보다 반드시 더 나빠지는 그런 상태인데요, 문학이라는 것도 문장을 통해서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죠. 특정한 단어들을 선택하고 그 단어들을 결합해서 만든 상태가 대체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 그러니깐 같은 대상을 다른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문장에 도달했다고 느껴지는 그런 문장의 상태입니다.”
5. 대체불가능성: 부사에 관한 단상
한국어 품사 중 부사가 글을 쓰는 사람들한테는 가장 골치 아픈 품사입니다. 부사를 잘못 썼다가는 글의 정확성이 결정적으로 훼손당하게 되는 그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너무’, ‘굉장히’ 이런 부사들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이 부사들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지칭하지 못 합니다. ‘너무’라는 말과 ‘굉장히’라는 말은 그야말로 너무나 굉장히 많은 곳에 습관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 말로는 내가 지금 느끼는 정도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문학은 ‘너무’라든가 ‘굉장히’ 같은 부사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너무’와 ‘굉장히’라는 부사에서 떠나오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느끼는 그 정도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가 비로소 문장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죠. ‘너무’나 ‘굉장히’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되고 마는 것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문장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6. 부사에서 묘사로, 묘사에서 비유로
묘사를 시작하게 되고 ‘너무 아름답다’는 것은 어떻게 아름다운 것이냐. 내가 느끼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문장이 필요하고 세 번째 문장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묘사를 하는 와중에 비유라는 것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비유라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장식적인 말, 없어도 되는 말 이런 느낌을 줍니다만 문학에서는 비유라는 것은 장식이나 꾸밈이 아니고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동원되어야 하는 그런 도구에 가깝죠. 비유를 쓴다는 것은 곧 그 비유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라는 걸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정확한 방식으로 표현하게 됐다고 느껴질 때는, 아포리즘(경구라고 번역)을 또 사용하게 되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안이하고 관습적인 부사의 세계로부터 탈출하고 싶다고 느껴질 때, 바로 그 때 문학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7. 정확한 아포리즘은 무엇인가
움베르토 에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아포리즘이 정확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그 아포리즘을 뒤집어보는 것이라는 겁니다. 뒤집어도 말이 되면 그 아포리즘은 그냥 재치일 뿐이다. 뒤집을 수 없을 때 정확한 아포리즘이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뒤집어보라는 얘기는 이 문장을 바꿀 수 잇느냐. 편곡을 또 해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할 수 없다는 게 궁극적인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세계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일 것이 바로 톨스토이 안나까레니나의 첫 문장입니다. 이런 거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이런 것이 아포리즘일 수 있는데요, 움베르토 에코의 실험을 해보면 이렇게 되겠죠. 행복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엇비슷하게 불행하다. 이렇게 뒤집을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이런 것도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행한 가정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톨스토이는 썼습니다만, 어떤 경우에 우리는 불행이라는 것이 상당히 많이 닮아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톨스토이 말마따나 행복한 가정이 빤한 모습을 갖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깊이 들어 가보면 각각 가정들이 제 나름대로 행복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다른 집과는 다른 개별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잖아요. 즉, 이 문장을 뒤집어도 일말의 진실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이건 제 기준으로는, 제가 감이 톨스토이의 문장에 시비를 걸어서 좀 두렵긴 합니다만, 이 문장은 뒤집을 수 있다. 그렇다면 100% 정확한 문장은 아닐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죠.
8. 훌륭한 작가는 어떤 글을 쓰는가
벤야민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훌륭한 작가는 결코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쓰는 것은 자신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하고자 하는 그것에만 도움을 준다. <사유의 이미지>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저는 이 문장이 정확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좀 다른 각도에서 설명해준 문장이라고 읽었습니다. 예컨대 사랑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했을 때, 그걸 써서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의 대상인 사랑이 돋보이는 것. 나에 대해서 뭔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 뭔가를 알려주는 것. 그래서 이 글이 도움을 주는 대상이 있다면 그 대상인 그것에 도움을 주는 그런 글쓰기. 벤야민이 이 문장 앞부분에 ‘잘 훈련된 운동선수’를 예로 들면서, ‘프로페셔널한 글쟁이는 바로 이런 글쓰기를 한다’고 합니다. 글쓰기의 대상을 위한 글쓰기. 그 대상을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문장. 이게 바로 모든 글쓰기의 모범이기도 하면서, 묘사와 비유와 아포리즘을 동원해서라도 정확한 그 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런 문학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망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