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손님/김민정
“타다다다!” 열 살인 막내가 이층에서 뛰어 내려오는 소리다. 나머지 식구들이 자고 있든 말든 전력 질주하며 제일 먼저 내려온다.
“쿵다다닥!” 남편이 두 계단씩 성큼성큼 내려와서 컴퓨터 앞에 앉는다.
“토토토톡!” 경쾌한 큰딸의 발걸음이 뒤를 잇고, “쿠웅쿠웅!”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잠자리에 들었던 둘째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된장찌개를 후다닥 가스 불에 올려놓고 계란을 꺼내려 냉장고 문을 열 때쯤, 언제 오셨는지 “다들 일어났냐?” 하며 친정엄마가 조용히 등 뒤에 서 있다. 엄마는 다른 가족들처럼 소리를 내지 않고 살며시 층계를 내려온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미국으로 와서 함께 살 게 된 엄마. 거의 두 해가 되어가는데 엄마의 존재는 소리가 작다.
어릴 적 우리 집의 아침도 비슷했다. 엄마는 우리 네 가족뿐 아니라 노총각 삼촌의 식사 준비로 바쁘셨기 때문에 등 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침 인사를 했었다. 자연스럽게 앉아서 밥을 먹고 학교를 향하면서 맛있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하였던가? 엄마는 당연히 우리를 먹여주고 치워주고 준비해주는 사람. 그 일에 가슴 깊이 감사하다는 생각은 못 했다. 집을 떠난 후, 혼자 식사 준비를 하면서 내 손이 움직이기 전에는 반찬 하나 탄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비로소 엄마의 수고가 그리웠다.
이십 년 이상 상차림을 해준 엄마. 이제는 내가 보답을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데, 가만히 삼시 세끼를 대접받는 엄마가 야속하다. 처음 몇 달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동안 못 해 드린 것을 해드리고자 할 줄 아는 음식은 전부 만들어 드렸다. 같은 계절이 두 번씩 바뀌어도 사과 하나 손수 드시지 않는 엄마께 농담 반, 진담 반의 항의를 했다. “엄마, 애들 세 명 모두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집에 있고, 나도 재택 근무하며 밥 차리느라 바쁜 거 아시죠? 가끔은 엄마가 해주는 거 먹고 싶네용.” 모처럼 용기 내 말했는데, “아빠 돌아가신 후부터는 냉장고 문도 열기 싫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라고 울상을 하며 웃으신다.
엄마는 이렇게 손님 같은 가족이 되었다. 손님이 오면 집주인은 방을 치우고 잠자리를 마련한다. 손님은 음식과 후식을 대접받고 절대로 냉장고와 팬트리를 열어보지 않는다. 그저 주인이
제공하는 것만 받을 뿐이다. 손님의 미덕은 무엇인가? 아무리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할지라도 일정한 때가 지나면 떠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집주인은 정리하고 쉴 수가 있다. 엄마도 과거에 미국에 방문하셨을 때는 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짐을 싸서 한국으로 떠나셨다. 그때는 아쉬운 마음에 엄마가 머물던 방에 들어가서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했었다. 이제는 잠깐 다녀가는 손님이 아닌 데도 계속 손님처럼 대접해 주길 바라시니 남편 보기에도 미안하다. ‘이것 좀 먹어보게.’ 하며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여주는 장모님을 한 번쯤은 기대했을 텐데…
아이들도 많이 자란 후에 할머니를 만나서 그런지 엄마와의 자리를 어색해한다. 함께 식사하면서도 먹는 일에만 열중할 뿐, 할머니의 존재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없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미국 생활이 심심하진 않은지……나에게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었지만 어쩌면 이들에게 엄마는 오래 머무는 손님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보거나 주무시는 엄마. 내가 잔소리하지 않으면 즐기는 뜨개질과 성경 필사에 진전이 없다. 방문을 열면 새벽부터 연탄불을 갈고 따뜻한 밥을 짓던 젊은 엄마가 낯선 모습의 할머니가 되어 누워있다. 손님은 언젠가는 떠난다. 엄마의 부재를 상상해본다. 내 곁을 떠나 다시 올 수 없을 때가 오겠지. 그때의 나는 지금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떤 후회를 하게 될까? 당당하게 존재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아침마다 숨죽이며 층계를 내려오는 나의 어머니.
뒤늦은 후회를 줄이도록 잘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할 정도의 여유가 아직은 없다. 아침에 혈당을 체크하고 밤에 인슐린 주사를 놓아드리며 조용히 기도할 뿐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시 만난, 오래된 나의 가족. 손님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잃지 않고 보살펴 드릴 수 있기를. 이제는 대접을 받아도 마땅할 젊었던 엄마의 수고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