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jpg동창 박일선 작품 3-1-2020

그해 겨울 표정 / 김영교

겨울은 삶의 템포가 늦다. 내 인생의 겨울 또한 그러하다.

서두름 없이 고요히 정체된 기분이다. 무릇 숨쉬는 것들이 동면하는가, 벌레들도 땅속으로 씨앗들도 숨죽인채 웅크린 채 지난다.

지난 가을은 엄청 큰 상실을 안겨주었다. 식탁의자는 주인의 체온 부재를 울어댔다. 하늘은 추석달이 완벽하게 너무 둥글어 슬퍼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또 다른 상실, 엔젤의 사고사.... 상실은 예리한 통증으로 찔러댔다. 무너지는 줄 알았다. 겨울에 정면 돌입했다.

 빅베어 (Big Bear), 나의 좋은 친구 빅 베어는 설경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너그러운 가까이 있는 산장이 다. 짬을 내 올라가기만 하면 눈도 바람도 맞다드려 한참을 겨울 한복판을 딩굴다 하산한다. 시리고 시린 하얀 산하가 가슴을 온통 찔러댄다. 시원한 하이얀 아픔이여! 눈물도 하얗다. 뒤덮는 그 단조로움 속에 깊숙이 녹아드는 게 싫지 않는 게 되려 이상하다. 무섭게 등골 차갑게 '찡' 전해오는 침묵의 의미가 퍼득 정신나게 한다. 슬픔이랄까, 아픔이랄까 얼싸안고 뒹굴다보니 얼얼한 뺨의 촉감일량 실내에 들어와서야 체감, 바로 내 것이 된다.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온도변화가 고맙다. 기세 당당한 벽난로, 나무를 태우는 실내 벽난로는 겨울의 다른 호흡이다. 그때서야 얼얼하게 녹아드는 뺨의 화끈함이 피를 돌린다. 살아있음은 신기하다. 호흡을 확인시켜주는게 고맙다. 앙금도 털어낸다. 속진을 털고 목욕 하는 이 눈물이 바로 씻어내림 아닐까싶다. 옆에 김오르는 감잎차가 나를 다스린다. 

산에서 만나는 바람의 맵고 거친 숨결, 휘몰아 치는 눈보라는 생명을 향해 흔드는 강한 손짓이다. 가슴이 먼저 알고 대비하라 일러준다내가 선택했다. 쉽지 않은 전환과 적응이었다. 독한 겨울이 있어 눈을 바로 뜨게 된다.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겨울은 침체를 넘어 도전이다. 내밀한 작업에의 잉태를 향한 거대한 태반이며 생명의 모체이다. 봄을 해산하는 신음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듯 하다. 이른 새벽 식탁 창문에서 바라보는 여명의 저 앞산 줄기는 들숨 날숨으로 검푸르게 깨어난다.

식음을 멀리한 나에게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누룽 끓여 굴비 한쪽 곁드려 먹는 밥상이면 내 몸 먼 마을에도 봄이  싹 틀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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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영GPG2T2YEPNIDDC7TYCC5WI6ZFA.jpg 작품 2-2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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