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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이태영 작품 5-9-2020

 

21 아들나무 

 

PV* 공원과 이 동네 가로수 길은 나의 오랜 산책코스다. 9주에 걸친 목발 사고, 왼발 부러지기 전 즐겨 들락이던 길이다지난해 하이킹 행로를 바꾸어 바닷가 산등성 이 트레일을 택했다. 아들을 잃은 친구가 마음에 켕겨 되도록 이 산책로를 피해왔다. 가슴 답답함은 나를 더 먼 밖으로 끌어냈다. 운동 부족으로 식욕이 없어지자 체중이 따라 줄고 내 안의 방들이 환기가 필요했다. 통풍도 할 겸 나 자신을 느슨하게 놓아주기로 마음먹었다.

 

바람 부는 날 그날, PV 언덕 계곡을 찾아 해변까지 내리락 오르락 했다. 그리고 그 공원에 닿아 하이킹을 끝냈다나무 수풀 사이 벤치는 숨 가쁜 나를 끌어당겨 눕혔다. 눈을 감았다여기까지 오고 보니 가슴이 문드러진 친구의 고뇌가 떠올랐다.  그리고 절절한 그 노래 ‘내가 있잖아. 날 바라보아라그 짠한 지난 날들이 스친다. 문드러진 저 천길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데로 친구는 받아서 시를 쓰고 곡을 붙였다. 내 귀에다 대고 직접 노래 불러주기도 했다. 슬픔을 딛고 친구는 날아올랐다. 선물이었다. 지금은 복음 성가가 되어 세상을 흔들고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를 찾아 위로의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산동네 언덕 길을 내려오던 초속 스케이트보드에 치어 정말 어이없게 외아들을 잃었다. 사망 소식은 온 동네를 비통함으로 몰고 갔다. 놀람과 애통, 가슴 에이는 불면의 날들은 칠흑의 어둠이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사계절을 버텨준 시간이 그 PV()에 헌수, 그 동네 공원에 아들나무 한 그루 심겨졌다. 매일 찾아가 마주 보고 울기도 얘기도 했다. 엄마의 그 아픈 세월 속에서도 나무는 잘 자랐다. 슬하의 딸도 장성하여 결혼을 하게 됐다. 아기가 태어났다. 할머니 눈가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지금 벤치 위에 길게 누워 아들나무 아래서 호흡을 가눈다. 해마다 그 나무는 잘 자라 이젠 큰 그늘도 거느린다. 저 나무는 친구의 눈물을 먹고 무럭무럭이가 되었을 꺼다나의 숨 가쁨은 그 아픔 앞에 조용해졌다. 친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까! 마음이 애인다. 친구의 피 토하는 눈물과 한숨이 아들나무를 나무 되게 했을꺼다.

바람이 빰을 적신다. 눈을 감는다귀가 열린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 자연의 소리보다 더 좋은 음악이 또 있을까! 고르게 퍼지는 호흡 따라 찡한 기류가 폐부를 완전 환기시킨다정오로 가는 아침 햇살이 쫙 퍼진다푸른 긴 가지 끝에 하늘이 매달려있다. 어느덧 몸에 베어드는 바닷냄새, 풀냄새, 가파른 언덕을 급하게 내려온 아침 햇살이 안개를 밀어내고 넘실대기 시작한다. 이때 쯤 마음에는 바람 소리가 잦아든다. 바다 내음이 언덕을 타고 올라와 등골 깊이 자리 잡는다눈은 바다 빛깔에 물들고 머리에는 물새 소리 쌓인다. 이 아침나절 만나는 유난히 아름다운 소리 비타민이다. 나를 키 크게 한다. 온몸과 가슴이 환기된 포만감에 휩싸인다. 입술을 내민다상쾌하다자연스럽게 편안함에 안기어 나는 그 속에 묻힌다. 친구의 아픔을 고뇌하며 나를 위해 짬을 낸 이런 시간이 좋다계곡 사이 소리농장에 나를 내려놓는다. 의식은 능선을 타고 자유롭게 아래 위 이동하며 자연의 소리와 부유 상생한다. 웰 리빙 공존의식을 몰고 와 철조망 없는 내 안의 고도에 나를 방목한다.

 

친구는 이런 힐링을 미리 예견한 걸까친구를 살려낸 그 노래가 생각난다. 모든 여의움( Bereavement) 의 엄마들을 위해 또 스스로를 위해...

'내가 있잖아, 날 바라보아라' 이 순간도 있는 '내가 있잖아'가 나를 클릭한다.

 

 

*PV : Palos Verdes 바닷가 산동네

5-28-20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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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나무 - 김영교

 

PV* 공원과 이 동네 가로수 길은 나의 오랜 친구다. 다행히 9개월이 아닌 고작 9주에 걸친 목발 신세, 왼발 부러짐, 그 불편함 전 이야기다. 

 

지난 해 하이킹 행로를 바꾸어 바닷가 산등성 트레일을 택했다. 아들을 잃은 친구가 마음에 캥겨 되도록 이 산책로를 피해왔다. 가슴 답답함은 나를 더 먼 밖으로 끌어냈다. 운동 부족으로 식욕이 없다. 체중이 따라 줄고 내 안의 방들이 환기가 필요했다. 통풍도 할겸 나 스스로를 느슨하게 놓아주기로 마음먹었다. 

 

바람 부는 날 그날, PV 언덕 계곡을 찾아 해변까지 내리락 오르락 했다. 그리고 그 공원에 닿아 하이킹을 끝냈다. 수풀 사이 벤치는 나를 끌어당겨 눕혔다.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 오고보니 가슴이 문들어진 친구의 고뇌가 떠올랐다.  그리고 절절한 그 노래 "내가 있잖아. 날 바라보아라" 그 짠한 지난 날들이 스친다. 문들어저 내린 저 천길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데로 친구는 받아서 시를 쓰고 곡을 붙였다. 내 귀에다 직접 불러주기도 했다. 슬픔을 딛고 친구는 날아올랐다. 선믈이 었다. 지금은 복음 성가가 되어 세상을 흔들고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를 찾아간다.

 

산동네 언덕 길을 내려오던 초속 스케이트 보드에 치어 정말 어이 없게 외아들을 잃었다. 놀람과 애통, 가슴 에이는 불면의 날들은 칠흑의 어둠이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사계절을 버뎌준 시간이 그 PV시(市)에 헌수, 그 동네 공원에 아들나무 한 그루 심었다. 매일 찾아가 마주보고 울기도 얘기도 했다. 엄마의 그 아픈 세월 속에서도 딸은 장성하여 결혼을 했다. 아기가 태여났다. 할머니 눈가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지금 벤치 위에 길게 누워 아들나무 아래서 호흡을 가눈다. 해마다 나무는 자라 이젠 큰 그늘도 거느린다. 저 나무는 친구의 눈물을 먹고 무럭무럭이가 됬었을 꺼다. 나의 숨 가쁨은 그 아픔 앞에 조용해졌다. 친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지세웠을까! 마음이 애인다. 친구의  피 토하는 눈물과 한숨이 아들나무를 나무되게 했을꺼다. 바람이 빰을 적신다. 눈을 감는다.  귀가 열린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 자연의 소리보다 더 좋은 음악이 또 있을까! 고르게 퍼지는 호흡 따라 찡한  진기가 폐부를 완전 환기시킨다. 

 

 정오로 가는 아침 햇살이 쫙 퍼진다. 푸른 긴 가지 끝에 하늘이 달려있다. 어느 듯 몸에 베어드는 바다냄새 풀냄새, 가파른 언덕을 급하게 내려온 아침 햇살이 안개를 밀어내고 넘실대기 시작한다. 이때 쯤 마음에는 바람소리가 잦아든다. 바닷 내음이 언덕을 타고 올라와 등골 깊이 자리 잡는다. 눈은 바다 빛깔에 물 들고 머리에는 물새소리 쌓인다. 이 아침나절 만나는 유난히 아름다운 소리비타민이다. 나를 키 크게 한다. 온 몸과 가슴이 환기된 포만감에 휩싸인다. 

 

뻗어 손으로 햇살을 찔러본다. 바람에 삐죽 입술을 내 민다. 상쾌하다. 자연스럽게 아주 알맞는 편안함에  안기어 나는 그 속에 묻힌다. 나를 위해 짬을 낸 이런 시간이 좋다.  계곡 사이 소리농장에 나를 사뿐히 내려 놓는다. 의식은 능선을 타고 자유롭게 아래 위 이동하며 자연의 소리와 부유 상생한다. 웰 리빙 공존 의식을 몰고와 철조망 없는 내안의 고도에 나를 방목한다.

 

친구는 이런 힐링을 미리 대비한걸까?  친구를 살려낸 그 노래가 생각난다. 모든 여의움( Bereavement) 의 엄마들을 위해 또 스스로를 위해 예견한듯 절절하게 울려퍼진다.

'내가 있잖아, 날 바라보아라' 이 순간도 있는 '내가 있잖아'가 나를 클릭한다.

*PV : Palos Verdes 바닷가 산동네

 

퇴:11-2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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