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꽃 하나 – 김영교 

 

 

 끝년아! 친구들이 큰 소리로 불러재 낄 때면 어색하게 달아오르던 어릴 적 한 친구가 떠오른다. 바로 <끝년>이 그 친구의 이름이었다. 아들을 원한 부모 마음에서 악의 없이 작명해 주었는데 본인은 이름 컴플랙스로 많이 속상해했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부르기 좋고 쓰기 좋고 기억하기 좋고 듣기에 좋은 호칭이 아닌가. 이름 붙이기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며 생명과 동일한 의미 부여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널려있는 모든 사물은 명명 받지 못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대상이나 물체에 새삼스럽게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충동이나 의무감은 그것을 지금부터 사랑하면서 살아가겠다는 자기 확인이기도 하다.

 눈만 뜨면 책만 읽어대는 오빠 언니를 위로하고 나는 막내로 태어났다. 애교있는 여식아가 되기를 바라셨는지 애교 '교'자가 이름 끝에 붙어있다.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좋아해서 함께 뒹굴며 자란 터에 애교와는 거리가 먼 애견가로 성장했다. 후천적 내 성격 중에 고등학교도 남녀 공학을 다녀 여성적 요소가 더욱 희박해 졌다. 이름을 지키면서 이런 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자대학으로의 진학은 필수였다. 큰 키에 이름에 맞게 정신 차려 애교스럽게 굴라치면 꼭 남의 옷을 빌려 입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연스런 교풍에 젖어들면서 그 후부터 나는 사람의 이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김춘수시인의 꽃은 꽃이라 부르기 전에는 사물에 불과했으나 드디어 꽃이라 명명하고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자기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 , 얼굴 등 평생 자신에게 소속될 지체를 가지고 인간은 태어나지만 이름만은 예외이다. 이름을 이마에 써 붙이고 세상에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위의 사랑하는 윗분이 극진한 애정을 가지고 작명해 주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사는 전혀 개입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이름은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되기 바라는 주위의 꿈이요, 소망인 것이다. 제한되어있는 삶의 테두리 안에서 오래오래 풍성하게, 튼튼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꿈 아닌가. 또 이름에 걸맞게 건강하게 자라고 커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성취하는 훌륭한 사람 되기를 바라는 게 작명가의 소원이라고 여겨진다.

 이름 때문에 고민한 사람이 한 둘일까 마는 딸 여럿 가정에 아들을 원한 부모의 간절한 마음은 악의없이 내 친구 이름을 '끝년'으로 했다. 손아래 남자 동생을 봐서 망정이지 친구는 이름때문에 속상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가 아는 닥터 리 치과의사댁은 딸 셋을 두었다. 기다리던 중 태어난 맏딸은 기쁨’, 둘째는 조산을 해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바랬기에 희망’, 섭섭이 셋째 딸은 주위 사람에게 사랑 많이 받도록 사랑이다. 부모님의 사려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어 호감이 간다. 주위에 멋있는 이름 중에 이런 이름들이 생각난다. 은퇴약사이며 시인 강언덕, 배우 송일국씨는 쌍둥이 삼형제를 '대한 민국 만세'라 이름 붙혀 인기를 모았다. 더 기막힌 이름은 대한민국그리고필승이란 두 살 터울의 세 아들을 차례로 둔 조카 경진목사네가 있다. 분담해서 청소, 빨래, 쓰레기 수거등 가사를 돕고 있다. 단연코 쌍둥이 이름 보다 더 자연스러운 두 살씩 터울 내기가 적중한 섭리 아닌가! 또 지인 중에 (Feeling Good)이란 회사를 가진 백사장 댁은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는데 호랑이 띠의 아들은 두산’, 용띠 딸은 녹담이다. 북으로 백두산, 남으로는 백녹담, 통일되면 좁다하고 오고 갈 단연코 희망적 이름들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이름 하나 알고 있다. ‘Jesus Christ’. ‘Jesus’란 역사적 의미의 고유명이다. ‘Savior’(구원자)로 인성을 상징한다. ‘Christ’란 기름 부움을 받은 자, ‘Messiah’로 신성을 동시에 지닌, 이 이름이야말로 시시각각 나를 압도하는 큰 이름이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 부르는 은밀한 이름이 있듯이 대상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그것을 비로소 자기 관계에 투입 시켜 자기 것으로 존재시키는 일은 살아가는 큰 즐거움으로 삼을 일이다. 나는 오늘도 내 삶에 멋진 이름과 만나는 꿈을 키운다.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이름을 기대할 때 가슴이 따뜻 해 진다.

 

 이름이 가는 곳에 인연의 꽃은 핀다. 향기 좋은 꽃이 핀다. 의미있는 꽃을 보고 반응을 한다. 교감이다. 소통과정이 이름 안테나를 통해 교신이 오간다. 이름이 가슴을 열고  발성을 행동할 때 독창도 살아나고 합창은 더 살아난다. 곁눈질로 부를 때는 신호일 뿐이지만 이름 호명은 닫혀있던 책을 여는 일이다. 반응은 대상과 대화, 표정을 통해 그 도서관에 입문하여 내용을 열람, 읽는 소통과정이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과연 나는 남길만한 이름 꽃 하나 지닌 존재인가 돌아보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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