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 024.JPG
동창 이태영 작품 4-5-2020

여자들은 어디다 두지요? - 김영교

 

나는 서울을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 집을 비웠다바깥세상은 초록이 살찌는 찬란한 4월이었다힘겨웠던 친구의 투병 여덟 달이었다슬하에 자녀 하나 없는 친구는 아름다운 PV 언덕바다를 눈 아래 내려다보는 거만한 저택에 살고 있었다.

 

돌아온 그 주말이었다아직도 가슴이 식지 않았을 때 연락받고 용수철은 달려갔다숨 한 가닥 푹 꺼지면서 친구는 그렇게 육신을 벗었다헐렁한 한 겹 가운마저 무거웠을까왼쪽으로 기운 눈에 눈물 한 방울이 고여있었다몹시 답답했을까헤벌어진 가슴이었다옷깃을 여미어주며 눈을 감겨주고 턱을 올려 벌린 입다물어주었다체온은 없었지만 얼음짱처럼 차디차거나 굳어있지는 않았다나의 귀가를 몹시 기다렸다는 친구때맞게 날 불러준 친구 남편이 고마웠다.

 

친구의 소원은 한 눈에 바다를 내려다보며 집에서 그렇게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었다그래서 

퇴원자택 가료 중이었다먼 작별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어이없어 허무에 취한 한 달을 안됬다참 안됬다 되뇌이며 서울 방문을 안타까워하며 함께 못한 시간을 나는 미안해했다안주인의 신발을 물어뜯는 애완견 티코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지만 그 남편에게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

 

부인이 하던 사업체서류며 집안 정리유품 정리등 친구 남편은 기진했다 했다고맙기도 했다며 그런대로 잘 견디고 있다 했다안심하라며 어느 날 먼저 걸려온 문안 전화였다혼자서 와인 잔을 더 자주 비운다 했다투병 기간 중 왜 못 물어보았을까묻기를 그만두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끝도 한도 없다는 친구 남편의 넉두리혼란스러운 남편은 추리고 정리해도 끝이 없노라 했다함부로 냅다 버리지도 못 했을꺼다자식이 없는 친구는 여행과 사진와인과 신발이 전부였다작품 사진은 많았으나 영정사진 준비는 없었다사진마다 있는 썬 글라스와 챙달린 모자 벗기는 포토 샵하는데만 사흘이 걸렸다그때만 해도 포샵은 초창기였다.

 

힘들었던 남편은 바람 따라 철 따라 지구를 몇 바퀴 돌았다마침 여행사 하는 동창의 배려가 있었다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을까한때 가치를 두었던 크고 작은 흔적들개인 차원의 수집품 박물관이 비대해지고 있었다신발만도 침실 하나큰 PV 저택 큰 방 하나가 좁아지고 있었다집 안팍에서 기억 안팍에서와인 잔 가득 마신 것은 눈물이었고 혼자라는 고독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친구 생각이 저만치 밀려나고 있을 즈음 어느 날 밤이 이슥해서 걸려온 전화 한 통깊고 조심성이 담긴 머뭇거림이 전화 저편에서 떨고 있었다.

 

"있는데 없어요있는 걸 아는데 못 찾겠어요."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에 매달리던 친구 남편의 목소리지금도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지치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여자들은 어디에 두지요현찰을요?" 

 

그날 밤 그의 건재를 확인한 나는 반가웠다그다음 먼저 간 내 친구를 보고 싶어 그 그리움의 낭떨어지에서 나는 끝없는 추락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찾느라 잠 못 들어 하는 친구 남편그 집을 떠나지 못해 이사도 못 가고 있었다오죽 답답했으면 이토록 시간이 경과 한 후 이슥한 밤 나한테까지 전화했을까?

'여자들은 어디에다 두지요?' 기억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친구 남편의 그 목소리-

궁궐 같은 그 저택에 머물고 있으며 지금도 밤이면 밤마다 찾고 있을까힘에 겨운 그 큰집을 못 떠나고 있는 친구의 남편,지상에서의 이 삶은 누구의 것인가누구를 위한 것인가?

 

생명이 팽창하는 5월이다, 이제는 언덕을 내려가려나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말이다고국에서의 총선도 끝났다.  

영원한 것은 없다시작이 있으면 끝 또한 꼭 있지 않는가. 때가 때인지라 찾았다거나 아님 포기했다는 친구 남편의 연락이 있을 법도 한 '거리두기' 칩거 기간이다. 가족인 애완견 티코가 궁금하다. 안주인의 신방 곁에서 안주인을 지금도 기다리며 잠들까?

4-28-2020

DSC08022.JPG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