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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이태영 작품 4/3/2020


왜 눈물이 날까 / 김영교

 

 

흐르는 게 강물뿐이겠는가. 역사도 목숨도 사랑도 노래도 흐른다. 시간 자체는 늘 없는듯 늘 있다. 밑도 끝도 없지만 시간에 발을 담근 것들은 잘도 흐른다. 아이가 흘러 나도 어른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주위에 음악이 있었다. 큰 오라버니가 작동 해놓은 유성기에서 흘러나온 LP판 음악이 있었다. 바이올린 선율인데 뭘 모르면서도 너무 아름답고 애절해 어린 가슴이 울고싶도록 슬프면서 좋아했다. 메말랐을 법한 눈물은 여전해 바이올린 소리에 젖는 반응을 지금도 보인다.

 

나는 노래를 잘하거나 악기를 다룰 줄 모른다. 선풍기에 손가락 세개가 다치는 통에 피아노를 초기에 중단했다. 손가락은 다쳐도 마음가락은 다치지 않아 귀에 담고 마음에 담았던 바이올린 곡이 있었다. 늘 가까이 듣던 그 연주 소리가 바이올린의 대가 사라사테의 ‘집시의 노래’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19세기 유럽에서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가이자 바로 치고이너바이젠의 작곡자라는 것도 세월이 흐른 다음에 알았다.

 

자신 이외는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곡이었다. 바이올린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교와 현악기의 특징을 가장 효과 있게 작곡 연주한 대가였다고 세상은 평한다. 내게는 그지없이 아름다운 선율이어서 매번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과 함께 LP판 뒷 곡은 아직도 기억 속에 살아있는, 내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였다. 전 유럽 음악애호가들의 마음을 거머쥔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묘하게 생긴 외모와 화려한 연주 기교로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멎게 만들었다고 한다. 항상 매진되는 연주회였다고 하니 짐작이 간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경이적인 바이올린 주법을 선보인 파가니니도 흘러흘러서 지금은 사라 장(Sarah Chang)의 세상이 되었다.

 

도밍고의 지휘로 정신이 번쩍 나는 듯 강열하게 이어가는 사라 장 연주를 듣노라면 애절하게 흐르다 격렬한 탬포로 급전환하는 경쾌한 마무리에 흠뻑 빨려들곤 한다. 높이 올랐다 수직강하 그리고 굽이굽이 빠르게 또는 잔잔하게 이어주는 바이올린의 다양한 매력에  빠져든다. 황홀해진다. 세상이 발전하여 유투브를 통해서 이제는 편안히 감상하게 되었다. 유명한 연주자들의 탁월한 연주기교를 쉽게 즐기게 되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그 옛날 내 꿈과 함께 자란 바이올린 이 두 곡은 늘 가슴을 서늘하게 울린다. 한없이 애잔한 바이올린 선율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며 큰오빠에 대한 그리움이다.

 

3월을 넘어 4월이다.  코로나 19가 언덕을 내려가려나? '거리두기' '6 feet' 격리거리가 부활절 이 절기에 왠 말인가! 창궐 언덕을 내려가겠거니...이제 곧 장미도 피고 과꽃도 필 것이다. 이 절기에 절대 방콕은 음악을 타고 코로나 준령을 넘어간다. 우리에겐 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고, 사랑할 사람도 많지 않다. 그저 이런 절망스런 때에 음악이 위로가 돼줘서 그져 좋고 고맙다. 어떤 음악의 어떤 부분이 눈물 나게 하는지 꼭 집어서 말 할 만큼 나는 알지 못한다. 가슴이 미어지듯 행복해지기도 한다. 그냥 마음이 저려온다. 왜 그럴까. 울림통이 큰 북이 내안에 들어있기라도 한 건가? 외부의 아름다움이 파장으로 건너오면 그냥 눈물이 난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다. 꼭 아름다워서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내 안에 있는 깊은 울림통에 그 소리가 닿아서 긴 파장으로 진동 이엄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생을 통하여 무엇이 나 같은 한 사람을 그렇게 감동시켜왔을까. 어떤 기억이나 연상 작용이 있었을까. 지금은 사라 장의 무대이다. 활짝 열려있다. 세계적인 사라 장이다. 자랑스럽다. 청색 드레스를 입고 치고이너바이젠을 연주하는 사라 장을 유튜브에서 보노라면 눈물이 글썽여진다. 전율이 온몸을 감싼다. 언제 들어도 감흥 울림효과는 늘 하늘에 치솟는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음악은 특히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은 내 마음을 울린다. 절절하게 영혼까지 움직이게 하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다. 좋은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 늘 어딘가 다른 곳, 내 안에 있지만 평소에는 닿을 수 없는 아주 좋은 곳으로의 문이 열리곤 한다. 밝고 맑은, 높고 편안한 그 문은 신과의 교감이 아닐까? 그리고 그 때가 바로 눈물이 나는 때라 여겨진다. 꼭 이유가 따로 있을까 마는 그냥 너무 너무 아름다우니까 그런 거라고.

 

4-12-2020 부활절 아침 퇴고 

 

*Pablo de Sarasate 의 Zigeunerweisen

*Camille Saint-Saëns 의 Introduction & Rondo Capriccioso

*Niccolò Pagan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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