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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집  스케취 

내 주변에 탱탱하게 서있던 사람 나무들, 암세포의 집단 공격을 받은 후 먼저 떨어져 간 문우들이 그리움으로 가슴을 헤집고 들어온다. 젊은 그대, 참 잘 버텼는데....

 

지난 해 출국하던 날 비행장이었다. 옥천시인이 훈 시인의 사망소식을 전해왔다. 얼얼하게 가슴이 아파왔다. 몇 년 전 폐암진단이 내려지고 파사디나 병원에서 폐암수술 받던 날, 아침부터 몇몇 문우들이 대기실에서 마음을 모았던, 그리고 오랜 시간 초조함으로 기다렸던 기억이 어제만 같다.

 

66회 키모를 받고 암보다 폐가 너무 쪼그라들어서 딱딱해졌다고. 호흡도 힘들고 산소가 지극히 부족해서 심장에도 무리가 있었다는 그간 상황이 파악되었다. 가깝게 지내던 문우부부의 지속적인 우정으로 ‘종소리 저편으로’ 첫 시집 출판이 가능했다. 서울서 만난 박덕규 교수의 전언이었다. 서울행으로 고별식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던 나의 아쉬움은 컸다. 훈 시인은 거듭남의 체험이 있었던 믿음이 돈독한 형제다. 천국입성을 의심치 않는다. 안식을 빈다. 그 때 병원 방문 시 찬송가를 같이 부르고 고교생 아들과 부인이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 때 함께한 담임목사의 병상설교와 찬송가를 경청하던  시인의 평화스런 표정을 잊을 길이 없다.

 

땅 위에서 뻗어가던 온갖 인연을 잠간 멈추고 그 젊은 시인은 본향으로 돌아갔다. 시작과 끝이 동시에 주어진 우리 인간의 수명, 누구나 다 가는 그 길을  아주 많이 앞섰다는 게 속상했다.  전과자인 내가 항암제 t-green을  전했을 때 조속한 쾌유를 빌며 힘내라는 누나같은 내 말을 미소로 화답해준 그 병상에서의 얼굴,  그 기억도 생생하다.

 

죽음은 엄청난 가시적인 상실이다. 죽음은 소중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사랑의 손 뻗음을 일단 멈춤의 사건이다. 격리의 사건이다. 흙 위를 걷는 움직임과 흙 아래 눕는 정지 상태로 말이다. ‘진토임을 알지니...’ 흙으로 돌아가는 귀의, 창조주와의 연합을 믿기 때문에 손 놓음이 가능하고 두려움이 없다. 슬픔이 일렁이는 사람 숲에서 끝까지 그 젊은 시인이 믿고 바쳤던 시와 사랑, 배품과 나눔의 계단, 하나하나 순종을 밟은 시인이다. 치과는 사역지였다. 문우들을 봉사치료한 의사인 그의 발길을 엄숙한 눈길로 바라본다. 체온 있는 자들이 배웅하는 가운데 하늘의 그 큰 손이 그 아들을 덥석 받아 안았을 확신은 슬픔 너머의 위로이다. 뒤 따라 가고 있는 남은 자들의 끝없는 긴 행렬을 그는 지금 내려다보고 있겠지. 종소리 이편으로 시집을 남겨주어 고맙다. 보고 싶을 때 들춰보면서 맑은 목소리에 젖어들 것이다.

편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