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아랫목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3행에 불과한 이 짧은 시 안에 엄청난 사랑의 질책이 고함치고 있다. 우리 인간은 폭언으로 많은 말의 연탄재를 앞 발길로 차고 그것도 모자라 또 뒷발길로 차며 매일 살아간다. 그 뿐인가. 술 취한 무책임한 발걸음은 어떡하고? 자기가 사는 동네 골목을 꼴불견으로 만들어놓고 얼마나 태연한 척 했나 돌아보게 하는 12월이다. 압축된 말로 32 글자밖에 안 되는 위의 시는 짧지만 주는 감동과 여운은 우주 크기로 울린다.

 

삶의 겨울을 누구나 지나간다. 계절적으로 연령적으로 겨울을 만나고 보내고 지나간다. 12월이다. 가까운 이웃을 위해 자신이 한 번이라도 뜨거운 적이 있었나 짚어보는 시점이다. 인생의 따스한 아랫목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사랑의 불씨를 지피는 누군가의 수고 끝에 아랫목은 있어왔고 그래서 아랫목은 늘 덥혀져 왔다. 아름다운 세상 그림이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춥다. 아주 많이 춥다. 셀리의 말처럼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않다고 했던가. 미래의 시간이 화창한 봄날,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화사한 베일이 아닐지라도 겨울을 쉬 날 수 있기를 우리는 꿈꾼다. 아랫목은 내가 먼저 솔선해서 만드는데 그 의미가 있다. 비 온 후 더 내려간 이곳 기온은 누구에게나 외투 깃을 세우는 겨울을 공평하게 안겨준다. 오늘 주어진 일기예보, 서걱대는 찬 공기, 불어 닥치는 바람 그것마저도 불평하지 않고 잘 견뎌내고 있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추울수록 기다리는 아랫목 가족곁으로 가는 더 빨라진 발길이 눈에 쉬 뜨인다. 이 아랫목은 안정감 있어 보인다.

 

저무는 12월의 거리에 무딘 가슴을 두드리는 자선냄비의 딸랑 딸랑 종소리가 찬바람 앞에 서있다. 누군가의 아랫목이 되고자 기다리고 있다. 분주한 연말 마켓이나 쇼핑 몰 앞에 겨울바람 맞으며 서 있으려면 손이 시리고 목이 시릴 것이다. 더욱 마음이 시릴까 저어된다. 훈훈한 아랫목 운동에 참여하는 작은 손길의 뜨거운 사람이 되어줄 때 우리 모두의 세모는 따스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서로에게 따뜻한 이웃이 되는 길이 이렇듯 열려있는 게 고맙지 않는가.

 

나누다 보면 내가 춥지 않게 되는 게 마치 신기한 옷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눔의 옷을 입으면 세모의 길목은 아랫목이 될 것이라고 내 가슴이 먼저 말하고 있다. 나눔 그 작은 참여 자체가 더 없는 행복이고 기쁨이 되고 의미가 될 것임을 스스로에게 확인케 하는 한 해의 끝이다.

 

'연탄 한 장' 또 '반쯤 깨진 연탄'등 연탄 시리즈로 우리를 따뜻한 세계로 안내하는 시인이 있어 여간 고맙지 않다. 그것도 의미 함축한 짧은 언어로 말이다.

 

중앙일보 12/22/20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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