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original!/박유니스

    

 

  차가 길 한가운데 서버렸다.

  계기판에 ‘배터리’ 사인이 며칠째 떴지만 그대로 몰고 다녔다.

  '차일피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가까스로 딜러에 끌고 갔다. 제복을 단정히 입은 직원이 늦은 오후의 손님이 달갑지 않은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로고까지 수 놓인 제복이 무색하다. 그런데 차의 후드를 열고 배터리를 점검하던 그가 깜짝 놀랐다.

  “This battery is original one!"

  차가 처음 출시될 때 장착된 배터리라는 것이다. 배터리를 다루는 그의 손길이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졌다. 말투도 공손해졌다. 오리지널이란 이토록 귀한 것인가.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일 때, 프랑스의 어느 지하 레지스탕스 단체에 이탈리아인 한 명이 새로 입회했다. 그에게는 나치에 대한 적개심도, 무솔리니를 향한 증오의 감정도 전혀 없었다. 호기심으로 저항조직에 발을 들여 놓은 거리의 건달이었다. 기묘하게도 그는 이탈리아 레지스탕스의 총 책임자인 장군과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조직에서는 그의 생김새를 활용했다. 이탈리아 레지스탕스의 책임자가 본국과 프랑스 국경을 넘나들며 신출귀몰한 활약을 벌이는 속임수 작전에 그를 이용했다. 당연히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나치는 이들의 은신처를 알아내고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벌인다. 모두 체포되어 처형을 앞두고 있을 때, 동료들은 그 이탈리아인이 자신은 가짜라고 밝히고 살 길을 도모하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굳게 입을 봉한 채 이탈리아 만세를 부르며 레지스탕스의 총 책임자로서 장렬하게 총살당한다.

  오래전에 본 프랑스 영화의 내용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감동에 쌓여 한동안 의자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나 또한 프랑스 레지스탕스들과 한가지로 그 이탈리아인이 배신할 거로 생각했다. 그의 가벼운 언동 속에 감추어진 신념의 변화를 눈치 차리지 못했다.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싹 트고 뿌리내린 것은 동지애요, 나치에 대한 적개심이었다. 조국 이탈리아에 대한 애정과 자랑스러움이었다.

  감동은 거의 충격이었다. 그 이탈리아인은 참으로 가짜인가? 진정한 진짜란 무엇일까?

  학벌위조와 표절 시비가 지구촌 곳곳에서 연일 끊이지 않는다. 글 쓰는 이들의 표절 소식이 본국에서도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이곳 한인 사회에는 유달리 가짜 시비가 잦다. 오리지널과 이미테이션, 진짜와 위조 시비 가운데도 고국과 멀리 떨어져 있어 확인이 어려운 최종 출신 학교나 학위문제가 자주 불거진다. 한국에서의 결혼 경력을 감추거나 한국에서 평신도이었던 이가 곧장 장로로 이곳 교회에서 행세하는 예도 있다.

  이런 일들이 밝혀져서 가정이 깨어지거나 평생 쌓아온 신망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를 보고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약점이 있고 때론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과거도 있다. 그러나 위조된 과거를 이용해 부와 명예를 쌓거나 지위를 얻게 되면 세상은 용서하지 않는다. 예전 교수 시절의 학위 논문이 남의 글을 표절한 것이 밝혀져서 최근에 대통령직을 사임한 헝가리 대통령도, 학문이 나라를 통치하기에 부족해서 헝가리 국민이 그를 용서하지 못한 것이 아닐 것이다.

  내 둘째 발가락은 양쪽 모두 다른 발가락에 비해 유난히 길다. 전에 미국에 다니러 오셔서 한 달 동안 함께 지낸 시어머님은 삼복더위에도 항상 양말을 신고 있는 나를 좋은 집안의 규수라고 두고두고 칭찬하셨다.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미간에 세로 일 센티 정도로 움푹 파인 주름살이 눈에 거슬린다. 최근 대세인 보톡스를 맞아 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실행에 옮길지 말지는 아직 모른다. 과감히 결행한다면 훗날 나를 지으신 조물주 앞에 섰을 때 그분이 무어라고 할까 궁금하다.

  “This is original one!” 하며 반기실까, 흔한 보톡스 한 번 맞지 못하고 세월의 흔적만 얼굴에 잔뜩 묻혀 왔다고 주변머리 없다며 혀를 차실까.

  손에 잡히는 내 미간의 주름살이 아직은 오리지널이다. 나는 이미테이션이 아닌 순수 오리지널로 살고 싶다. 그러나 세월이 만드는 변형은 어쩔 수 없다. 그 변형은 순수한  오리지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