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지 게임 

 

                                                                                       박유니스

 

   출근길에 클럽에 들렀다. 커피 한 잔을 내려 들고 나오는데 국기 게양대에 조기가 보였다. 클럽의 누군가가 세상을 뜬 모양이다. 누구지? 지나던 직원에게 눈짓으로 물었더니 Mrs. Magaro 라고 한다.

 

   그녀는 나의 오랜 브리지클럽의 회원이다. 최근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 자주 모임에 결석하더니 기어코 세상을 떴다. 그녀는 우리 브리지 회원 중에서 드물게 공정하고 인종적인 편견이 없었다. 그녀의 죽음은 내게, 게임이 한창인데 스탠드를 떠나는 응원단을 지켜보는 선수의 심정이 이럴까 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

 

   20년 전, 이곳 컨트리클럽의 회원으로 가입할 때, 골프를 즐기는 남편과 달리 나는 클럽의 브리지 모임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회원이 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브리지 클럽에선 회원 중에서 누가 결석하는 경우에 임시 멤버로 자주 나를 초청했다. 그러나 정식 멤버의 자격은 좀체 제의하지 않았다.

 

   함께 골프는 치지만, 친교 모임인 소그룹에 타 인종을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그들은 주저 했다. 브리지 회원 가운데 누가 이사하거나 사망해서 결원이 생기면 회의실 문을 닫아걸고 충원할 멤버를 결정하는데 그 비밀스럽기가 거의 로마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수준이다.

 

   결원은 가끔 생겼고, 드디어 나는 미세스 마가로의 추천으로 정식회원이 될 수 있었다. 브리지는 그 이름처럼 파트너와 룰로써 소통하는 까다로운 게임이다. 따라서 비딩에서 게임까지 자주 의견 대립이 있다. 브리지 레슨도 받고 열심히 교본을 공부하며 그들과의 갭을 좁혀 나갔다. 마침내 브리지 실력으로는 그들의 우위에 설 수 있었고, 인종을 초월해 브리지를 통한 진정한 소통의 다리를 놓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멤버들과의 간격은 생각만큼 좁혀지지 않았다. 거기엔 메인 브리지 외에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건너야 할 수많은 가교들이 놓여 져 있었다.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길이도 어쩌지 못하는, 브리지 게임의 규칙보다도 많은 부교들이 있었다.

 

   게임이 있는 날, 점심때가 되면 클럽의 직원 한 사람이 우리 게임 룸에 와서 점심을 주문 받아 간다. 직원들은 클럽의 회원인 우리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켰다. 그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Lynn은 노련하고 공손했다. 점심이 준비 되었다고 인터폰이 오면 우리는 게임을 중단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 오후 게임을 다시 계속한다.

 

   언제부터인가 린이 헬퍼로 내려오는 날은 여느 날과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식당에선 6인용 식탁 둘을 나란히 잇대어 놓고 식탁보를 덮은 위에 우리 열두 명이 주문한 점심을 미리 준비해 놓는다. 그런데 린이 당번인 날은 내 점심이 두 식탁이 연결된, 중앙의 불편한 자리에 항상 놓여 있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적일까?

 

   그러던 어느 날, 인터폰이 다른 날에 비해 조금 일찍 울렸다. 식당으로 올라가 보니 음식이 미처 식탁에 올려 져 있지 않았다. 누군가가 실수로 음식이 준비되기 전에 인터폰을 울린 것이다. 자기 오더가 놓인 자리에 찾아가 앉을 필요가 없기에 무심히 가까운 의자 하나를  당겨 앉으려는데 린이 황급히 나를 제지했다. 식탁 두 개가 잇대어져 있는 가운데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거기에 앉으라는 것이다. 린이 당번인 날에 내가 오더한 점심이 항상 놓여있던 자리다.

 

   비로소 그간의 의문이 풀렸다. 오랫동안 린은 가장 불편한 자리를 골라 내 점심을 준비해 놓았던 것이다. 우리 클럽은 인종 문제에는 엄격하다. 한국인들만의 골프모임에도 ‘코리안 클럽’ 같은 국가의 이름이 들어간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아리랑 클럽’ 정도가 허용 된다. 같은 회원들 간에도 인종적인 문제는 이토록 미묘한 프라이빗 클럽에서 린은, 결석한 회원 대신 sub.(충원 멤버)로 그 날 하루만 초청되어 온 백인 게스트들에게 조차 멤버인 나를 제치고 편한 자리를 배정한 인종차별 주의자였다.

 

   클럽은 우리부부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여가와 취미생활의 중심이었다. 집안의 손님 접대와 아이들의 모든 행사에도 늘 곁을 지키며 도움을 주는,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직원들이었다. 우리가 같은 회원들에게 보다, 상대적으로 그들에게 소홀 했던 것은 아닐까. 지구 남쪽의 작은 나라에서 이민 온 린의 피부색이 내 의식의 한쪽에 작용하고 있었을까? 엄연한 미국시민인 린에게는 거의 노사의 수준인 자신과 우리의 관계가 불공평하게 느껴졌으리라.

 

   인종과 종족의 문제는 역사를 통하여, 계급간의 갈등에 우선하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분쟁보다 치열하다. 종교나 이념적인 투쟁 보다 더욱 잔혹하다. 태어날 때부터 다르므로, 태생적인 것이므로 그 간격은 영원한 평행선이다. 그것은 셈과 함과 야벳에 대한 노아의 편애의 유산이다. 바벨탑을 쌓아 올린 인간을 향한 신의 가시지 않는 서운함이리라.

 

   어제까지만 해도 마가로의 이름이 붙어 있던 그녀의 사물함에 오늘은 낯선 이름이 붙어 있다. 그녀와 함께 건너려고 했던 화합의 다리를 이제 혼자 건너야 하리라. 신께, 인류에게 매겨진 이 영원한 부등식의 기호를 삭제하여 줄 것을 간절히 탄원이라도 해보고 싶다.

 

*브리지 게임: 52장의 카드로 컨트렉트를 비딩하고 약속대로 트릭을 가져오는

테이블 게임의 일종으로 정직하고 신사적인 게임이다.



<재미수피 1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