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시트 드라이버

 

 

 

                                                                                박유니스

 

아침 일찍 자동차 여행을 준비 하는데 무척 긴장된다.

차 점검도 철저히 했고 그리 먼 거리를 가는 것도 아닌데 동승할 사람 가운데 하나가

지독한 백 시트 드라이버(back seat driver) 이기 때문이다.

 

 

서열상 그 분의 자리는 차의 뒷좌석이 아니고 운전하는 내 옆자리라서 더 신경이 쓰인다.

옆에 앉아서 출발부터 도착 할 때까지, 차에서 주무시는 시간을 제외하곤

일일이 간섭, 명령하신다. 어느 한 움직임도 놓치는 적이 없다.

 

 

우선 출발하여 로칼에서부터 시작한다. 좌우회전은 물론이고 프리웨이를 타기위해 차선 바꾸는

시점까지 지시한다. 내 차는 개스 탱크가 오른 쪽에 있는데, 한 번은 주유소에 들어가며

그 분이 어찌나 확신을 가지고 지시 하는지 그만 차주인 내가 주유소의 왼쪽 개스 펌프에

차를 갖다 대고 말았다. 뒷좌석의 동생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남의 차에 동승할 땐 누구나 약간은 불안하다. 그러나 그렇게 일일이 좌우를 살피며

운행에 끼어들면 운전자를 긴장시켜서 오히려 안전 운행을 방해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깜빡이를 일찍 켜도 늦게 켜도 한 소리 듣는다. 운전은 드라이버에게 맡기고 느긋이 편승을 즐길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인간관계에는 항상 주연과 관객의 역할이 있다. 내 방식이 최선이라고

무대에 올라 있는 주연에게 그것을 강요 할 수는 없다. 자기의 역할은 오래 대본을 익히고

연습을 한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미흡하더라도 타인의 노력과 한계를 이해하고

편안하게 해 줄때,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가 형성 되리라고 믿는다.

 

 

지금은 많이 연로 하신 정명환 교수님이 생각난다. 특별히 예민한 편인 불문과 교수들의 첫 학기 담당 과목을 죽을 쑤는 경우에는, 다음 학기에 웬만큼 시험을 잘 봐도 명예 회복이 어렵다. 그런데 유독 정교수님은 사 년 내내 선입견 없는 채점으로 정확히 노력에 대한 값을 지불해 주셨다. 참으로 존경스럽고 본받을 만한 분이시다.

 

 

젊었을 때, 처음 운전을 가르쳐준 이가 있다. 학자 출신이라 잔소리가 심할거라고 기대(?)했는데, 프리웨이를 탈 정도로 내 운전이 능숙하게 될 때 까지 별로 지적을 당한 적이 없었다. 서툰 솜씨로 후진 할 때도 그는 좌우를 살피는 법 없이 운전자인 내게 모든 걸 일임했다. 자신이 운전 중일 때 옆 차가 끼어들거나 급하게 추월을 해도 화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가 늘 하는 말이었다.

 

 

상대방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이 쉽다면

세상에 전쟁도 정쟁도 없고 , 이웃과의 다툼이나 불화도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의 이해심과 표용력을 점검해 본다. 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자존심을 세워 주었는가?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였는가?

 

 

삶에서 많은 백 시트 드라이버를 만나게 된다.

평생 타인을 먼저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사람.

내 인생의 운전 교사이자 롤 모델이었던 그가 이 가을에 더욱 생각난다.

< 재미수필1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