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면역을 기다리며


 

예약했던 첫 백신 접종일이 캘리포니아에 불어 닥친 강풍 때문에 이틀 뒤로 연기되었다. 어렵게 1월 19일로 예약 날짜를 잡았던 딸아이는 고작 이틀 늦어진 것도 불안해하는 기색이다. 딸을 위로하며 슬며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틀 간격으로 난 전임 대통령이 아닌 조 바이든 대통령 치하에서 백신을 맞는 국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주일, 성당에 다녀오는 길에 백악관 부근 베이글 가게에서 베이글 샌드위치를 직접 사갔다는 훈훈한 뉴스를 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에도 당시의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 인근 지금은 문을 닫은 Ray’s Hell Burger 가게에서 각자 음식 값을 내고 햄버거와 음료수를 사서 점심 식사를 한적도 있다. 미국 국민은 어떻게 현직 대통령과 부통령에게서 당당하게 햄버거 값을 받을 수 있을까. 그들이 부럽다.

 

40여년 전, 중부의 소도시에서 공부할 때다. 어느 주말 아침,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 있는데 안내해 줄 한국인을 찾고 있으니 우리 부부가 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관광 명소인 샌디아 마운틴에서 타오까지의 일정을 허름한 우리 차로 온종일 돌아다녔다. 

 

그런데 의외인 점은 어느 시설, 어느 식당을 가도 그 정치인은 돈을 내지 않았다. 옆의 비서도 지갑을 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하등의 이해관계가 없던 우리는 비용을 나중에 몰아서 주려나 했다. 그들 일행은 식사 값은 물론 여러 곳의 입장료까지 가난한 유학생에게 짐 지우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내밀고 떠났다. 명함에는 누구나 알만한 도지사 직함이 찍혀 있었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일반 서민들처럼 자기 돈을 내고 평범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미국에서는 대단한 뉴스는 아니다. 전의 어느 대통령 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민적인 풍모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런 대통령 치하에서 백신을 맞은 것은 행운임에 틀림없지 싶다.

 

4주 뒤로 예약된 두 번째 백신 접종일이 또 연기되었다. 이번엔 미전역에 불어 닥친 한파로 백신의 국내 배달이 지연된 때문이다. 다시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에게 이젠 접종일에 맞춰 바꿔치기 할 대통령이 없으니 어떡하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접종을 마친 날, 아이들은 작게라도 파티를 하고 싶어 했지만 사양했다. 창창한 아이들 차례는 아직 멀었는데 살날이 짧은 노인이 먼저 귀한 백신을 차지한 것이 미안했다. 고대하던 백신 접종을 마쳤지만 따로 할 일은 없었다. 그동안 교제하며 왕래한 주위의 친지가 대부분이 연하여서 태반이 코로나 안전지대에 여태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오렌지 카운티에서 일어났던 대형 화재 사건이 기억난다. 가옥 수십 채가 전소된 가운데 단 한 채만 화마를 피했다. 주인이 집의 내부와 외부 모두를 특수 단열재로 철통 방비를 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집을 새로 지었는지 그곳에서 눌러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사방이 온통 전쟁터처럼 까맣게 타 버린 잿더미 속에서 그가 행복한 나날만을 보내지는 못했지 싶다. 집단 면역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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