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감옥에서 글쓰기 ['이 아침에 10/15/2020]

                                                                                                                        

   코로나19가 좀처럼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인간을 제외하곤 모두가 반겨주니 지구에 아예 눌러앉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그동안 이 질병에 대해 많은 글을 보고 들어 이제 코로나19에 관한 논문 한 편쯤은 우리 모두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서가에 있던 책들도 거의 두세 번씩 읽어 새로운 것이 없고 우울한 나날이 이어진다. 아들이 리비아모등 오페라 아리아와 경쾌한 행진곡들을 모아 씨디를 구워서 갖다 주었다. 또 최대한 외출을 피해야 하는 내게 점심과 저녁 두 번, 며느리가 만든 음식을 날라 왔다.

  팬데믹 초기, 그렇듯 씩씩하던 아들에게도 한계가 왔다. 차츰 발길이 뜸하더니 기온이 곳에 따라 120도가 넘는 곳도 있다고 하는 지난 달 어느 날, 아들은 데스밸리에 간다고 나섰다. 혼자 차를 몰고 가서 며칠 쉬고 온다는 것이다. 극지 체험인가, 하필이면 이 폭염에 데스밸리라니.

  나와 며느리가 기를 쓰고 말렸다. 아들은 막무가내였다. 캠핑 도구와 라면 몇 개를 챙겨 아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이 방법 외에는 그동안 코로나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단다.

  그 며칠간 아들은 스트레스를 풀었는지 모르지만, 아들 걱정에 피가 마르던 내게는 그 스트레스라는 것이 배나 더 쌓였다.

  팬데믹 이후 딸은 매일 한 번 전화한다. 9월이 끝나가는 그 날도 저녁 늦게 전화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통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정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지진이다.” 놀라 소리쳤다.

  “지진?” 딸은 의아해했다.

  수 초 후 이번엔 들고 있던 전화기와 침대가 눈앞에서 발 아래서 팽글팽글 돌았다. 조금 후엔 집채만한 토네이도 같은 것이 왱왱거리며 다가오더니 내 몸을 방바닥에 메다꽂았다. 세사가 난맥처럼 얽히니 나도 돌아버리는가. 딸과 사위가 급히 달려왔다. 사위는 어지럼증 같다고 했다.

  탈수가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해서 하루에 두 컵 정도 마시던 물을 갑자기 네 컵 가까이 마셨더니 코에서 물비린내가 난다. 금요일에 주치의와 만날 약속이 잡혀있어 그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머리를 조금 움직이면 나룻배를 탄 것 같은 멀미가 나고 조금 더 움직이면 통통배 수준의 현기증이 밀려왔다. 두 배 모두 몇 번 타 본 적이 없어 자세한 묘사는 불가능하다.

  매일 혈압을 재고 혈당 체크와 코로나19 테스트까지 받았다. 모두 정상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조금만 흔들려도 어지럼증이 나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꼼짝 않고 앉아서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줄이 그어진 종이는 보기만 해도 울렁증이 올라와서 백지 A4 용지에 머리를 박았다. 흘려 쓴 글씨로 서너 문단이 완성되면 컴퓨터에 넣어 pt14로 글자를 키워서 다시 읽어보았다. 머리는 A4 용지에 고정한 채 눈을 간신히 치떠 화면을 응시했다.

  차츰 머릿속이 고요해져 왔다. 놀랍게도 글 자락이 토리에서 실 풀리듯 풀려 나왔다. 내 천직이 혹시 글쓰기인가?

  그렇게 끊겼던 사유의 광맥을 다시 이어 오래 묵혀 둔 글들을 정리하고 신작 수필을 몇 편 쓸 수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너무 많은 일에 마음을 두었던 듯하다. 동쪽에 분주한 일을 만들어 놓고 불현듯 서쪽으로 달려갔다. 앞뒤와 좌우로 머리를 돌리며 일상에 매달리고 세상 유익을 구하고 즐거움을 찾아 떠다녔다.

  강제로 격리된 팬데믹, 불가항력으로 내몰린 어지럼증, 원고지 위에 머리를 고정하고 긴 영어(囹圄)의 세월을 견뎌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