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불어 그리고 한국어


   운전을 못 하시는 노인들을 위해 종종 운전 봉사를 나간다.

그날은 80세가 조금 넘은 여자분인데 한국인 심장 전문의들이 불친절해서 미국인 의사와 예약을 하셨다고 했다. 내가 기사 역할 외에 통역까지 겸하게 되었다.

   의사가 심전도를 해보고 심장 박동도 체크해 보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노인네가 영 미심쩍어하니까 의사는, 원한다면 하스피탈에 가서 심장 체크 다시 하고 세 시간 정도 걸리는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라고 하며 그래도 아무 이상이 없으면 "Leave it alone." 하라고 잘라 말했다.

   그 정도는 알아들으셨을 줄 알고 달리 통역 않고 의사 사무실을 나서는데 노인네가 퍽 섭섭한 표정이다.

   "심장이 그렇게 튼튼하면 재혼을 하라고 해야지 왜 혼자 살라고 하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leave it alone''live alone'으로 알아들으신 거다. 노인의 외로움이 진하게 전해져 왔다.

   손자가 세 살을 조금 넘겼고 손녀가 갓 돌이 지났을 때, 동부에 살던 딸네가 친구 결혼식에 참석차 LA에 왔었다결혼식은 LA에서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작은 도시에서 있었는데 딸 내외는 결혼식장에서 멀지 않은, 놀이터가 붙어있는 맥도날드 식당에 나하고 아이들을 내려놓고 식장으로 향했다. 식당엔 백인 손님들만 드문드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손녀는 앉아 있는 유모차에서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고 나와 눈 맞춤을 하고 있었고 손자는 맥도날드 놀이터를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놀았다.

   30분 쯤 지났을까, 손자가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은 차도였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내가 보이지 않으면 유모차에서 위험하게 몸을 움직일 손녀 때문에 지체하는 사이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손자를 따라 나갔다. 남자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GO GET HIM!“

   싫다고 발버둥 치며 우는 손자를 남자가 땀을 흘리며 안고 들어왔고 손녀도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얼이 반쯤 나간 내가 아이들을 달래며 생각하지도 못했던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감사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대로 '슬픈 외국어'가 나를 슬프게 한다. 전공으로 선택한 불어와 미국의 언어인 영어다. 불어는 끊임없는 연구와 조탁(彫琢)으로 주옥같은 언어를 탄생 시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자라는 영예를 안았지만, 손 본 만큼 그 탁월함과 섬세함에 있어 다른 어떤 문자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불어는 그 주어에 따라 모든 동사는 다른 어미를 가진다. 명사는 하나도 예외 없이 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바다라는 의미의 ‘mer'는 여성명사다. 따라서 큰 대양도 잔잔한 바다도 바다라는 단어 앞엔 반드시 여성 관사인 ’la'가 온다. 이 모든 것은 외울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영어는 25세에 미국에 첫 발을 들여 놓은 때부터 내 일상 언어가 되었다.

니체는 외국어란 20%만 이해하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일상 언어가 되려면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불어가 조금 되니 영어도 덤으로 될 줄 알았는데 두 언어의 차이는 북해와 대서양을 잇는 영불 해협의 깊이만큼 다르다.

   50세가 넘어서 띄어쓰기와 문법을 거의 잊어버린 한국어로 수필을 쓰게 된것도 슬프다. 수시로 바뀌는 우리 국어 맞춤법은 IKEA의 조립설명서처럼 여간해서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늘에 닿으려고 바벨탑을 높이 쌓는 인간을 벌주려고 신이 우주의 언어를 흩어버렸다고 한다. 하나도 아닌 세 개의 언어 가운데서 헤매는 나는 바벨탑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신의 노여움을 샀던 팀의 자손이 아닐까 때때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