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속  불가서

 

                                                              

                                             박유니스

 

나는 무슨 일이건 마지막까지 미루는 습관을 갖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마지막 순간이 되어야 일의 능률이 최대치가 되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도무지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반전을 향해 가는 셜록 홈즈처럼, 최후의 스퍼트를 남겨둔 운동선수처럼 매사를 뜸을 들이다가 마지막 순간에 해치운다.

 

그런데 지난 4월 셋째 주간에 세 번이나 마감일에 쫓기다가 피로가 겹쳐 쓰러지고 말았다. 첫 번은 12일의 재산세 납부 마지막 날이었고, 두 번째는 15일의 Income Tax 보고 마감 일, 세 번째로 16일의 2010 센서스 등록까지... 무슨 일간지 데스크를 맡은 것도 아닌데 초조 하게 입안이 타 들어가도록 마감시간을 맞추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뛴 게으름의 후유증은 컸다.

 

인간이 삶의 끝 날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정녕 신의 축복이 아닐까 한다.

나 같이 무슨 일이건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는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얼마나 분주 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면 그 때를 모른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아도 신의 은총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임종하는 순간에 “More light, more light!" 했는데, 마지막을 맞을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나는 틀림없이 ”More time, more time!"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내게 줄 시간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은 신께서는 얼마나 곤란하실 것인가?

 

나는 ‘급한 일' 보다는 중요한 일’이 먼저라고 늘 주장 한다. 그런데 학창시절 시험 하루 전의 ‘전날치기’저녁이 되면 내 신념은 흔들렸다. ‘프리어리떼'와 '엥뽀르땅스'가 내 속에서 충돌한다. 전자는 따뜻한 이불속으로 발을 넣어버리는 것이고, 후자는 시험성적 결과다. 한 번도 명쾌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은 채 그럭저럭 학창시절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믿고 있다.

 

결혼을 하고보니 남편은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종종 아침 출근할 때 손목시계를 전에 없이 오른 팔에 차고 있었는데 이유가, 그 날 처리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표식이라고 했다. 그런 남편이니 매사를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는 내 습관을 당연히 못 견뎌 했다. 회사일이건 집안일이건 마지막까지 뭉그적거리다가 일이 커지고 남편의 기색이 심상치 않게 되면 나는, “조조는 장강을 너무 일찍 건넜기 때문에 원소에게 패한 것” 이라고 눙쳤다. 남편은 “시저가 루비콘 강을 그 때 건너지 않았더라면 폼페이우스에게 당했다”라고 반박한다.

 

6.25동란 때 미처 남으로 피난을 떠나지 못했던 우리가족은 인공치하의 서울에서 석 달을 지냈다. 처음 얼마동안은 집에 있던 식량으로 그럭저럭 버텼는데 점차 서울에서는 양식구하기가 어려워졌다. 9.28 서울 수복이 가까웠던 어느 날, 아버지는 한강 남쪽으로 쌀을 구하려고 물물교환 할 물건들을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이런저런 준비와 어머니의 늑장으로 다른 날보다 반시간 가량 늦어서 광나루에 도착하셨다. 그런데 30분 전에 바로 그 곳에 미군의 폭격이 있었고 광나루 다리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세계적인 리더십의 권위자 스티븐 코비 교수는 성공을 하려면 당장 급한 일보다는 멀리 보아 중요한 일에 몰두하라고 권한다. 여기서 성공이란‘소소하고 일시적인 성공’이 아니라‘원대하고 근본적인 성공’이다. 내‘중요한 일 우선주의’는 물론 이런 차원 높은 성공철학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일찍부터 나는 짧은 성공, 공허한 영광의 덧없음을 맛 봤다.

 

벽촌의 조그만 피난초등학교에서 자치회장에 당선된 후, 나는 들로 산으로, 절집으로 다비터로 함께 쏘다니던 피난지의 유일한 친구를 잃었다.(그 친구는 나보다 한 표가 적었다) 그 일은 지금도 내 몸속 어딘가에 박힌 가시처럼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소인과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으로 지내라고 어느 현자께서 말씀하셨는데, 나는 인생이란 이 불가해한 대인과는 앞으로 불가속불가서(不可速不可徐)로 지낼 생각이다. 예측 불허의 연속이며 노력으로는 키 한 뼘 늘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인 것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재미수필 1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