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다가 떠나간 사랑

                                                          신순희   

 

 

옆집 할머니가 혼자 되었다. 그전까지 함께 살던 보이 프렌드(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하고 헤어졌다. 흐릿한 푸른 눈의 할머니는 동네 아이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셧 업’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 성미 맞추고 살던 보이 프렌드가 떠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근처 살던 할머니의 큰딸이 심장마비로 졸지에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지않아도 그늘진 얼굴의 할머니는 자식을 먼저 보내고 더욱 초췌한 모습을 보였다. 그날 나는 동네 우편함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를 포옹했다. 할머니의 몸은 새털처럼 가볍다. 슬픔에 젖어 목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외롭겠다. 어떻게 위로를 할까.   

 

언젠가부터 할머니 집에 둘째 딸 가족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누런 개와 까만 고양이도 함께 왔다. 어린 손녀 둘에 사위까지 네 식구가 들어온 후로 할머니 집 차고가 이삿짐으로 꽉 차면서 복잡하고 부산해졌다. 깔끔하던 할머니 집이 지저분해졌다. 할머니는 슬금슬금 우리 집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잘 하지 않던 인사를 꼬박꼬박 했다. 때론 그집 쓰레기통이 넘쳐 햄버거 포장지가 우리 집 잔디에 날라와 나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웃끼리 서로 잘 지내야 할텐데.   

 

옆집 할머니 집에 밝은 금발을 찰랑거리는 손녀들이 오며가며 조잘대니 활기차 보인다. 할머니 눈에도 생기가 돈다. 눈에 띄게 할머니와 둘째 딸 그리고 사위까지 세 사람이 연신 담배를 물고 다닌다. 둘째 딸이 아이들 등하교시키고 쇼핑하는 모습이 보인다. 누런 개는 집을 나간 건지 쫓아낸 건지 보이지 않는다. 까만 고양이는 자꾸 우리 집 울타리를 넘어 들어온다. 얌체같은 고양이는 왜 하필 우리 집 뒷뜰에 들어와서 해를 쪼이는 건지, 똥도 누고 간다. 할머니에게 얘기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할머니 집에 갑자기 구급차가 왔다. 둘째 딸이 들것에 실려갔다. 황급히 할머니 차도 뒤따라 갔다. 무슨 일인가.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내다보니 조용한 동네가 웅성거린다. 나는 슬그머니 할머니가 걱정되었다. 우려한대로 슬픈 일이 생겼다. 둘째 딸이 폐암 진단을 받았다.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졸지에 이럴 수가. 사람 일이란 정말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나 보다.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아이들을 위해 케익이라도 하나 사갖고 갈까, 아니면 싱싱한 빨간 꽃을 들고 병문안을 갈까, 망설이다가 이래저래 시간만 흘렀다. 언제 제대로 인사라도 했어야지. 그 여자, 할머니 집으로 들어와서 곧 그렇게 환자가 됐으니.     

 

‘날 참 좋네’ 커튼을 젖히면서 창밖을 보았다.  할머니 집 앞뜰에 모자를 쓴 둘째 딸이 간이 의자에 앉아 해를 쬐고 있다. 챙 넓은 모자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손에 쥐고 있는 저게 뭔가? 설마, 자세히 보려 창가에 바짝 다가가니 그녀의 손가락에 담배가 끼어 있다. 가늘게 올라가는 연회색 연기가 보인다. 폐암에 걸렸다면서 담배를 피우다니. 옆에 남편도 있고 할머니도 왔다갔다 하는데 그냥 놔 두는걸 보면서, 저 여자 가망이 없는건가, 덜컥 맘이 내려 앉는다. 잠시 그렇게 앉아있던 둘째 딸이 일어서는데 휘청한다. 다리가 후들거려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다. 처음 봤을때 통통했던 몸매가 그동안 바짝 말랐구나. 남편이 아내를 번쩍 들어 안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초등생 어린 두 딸을 두고 가면 안되는데, 할머니는 어쩌라고. 커튼 뒤에서 내다보던 내 마음이 언뜻 서늘해진다.    

 

몇 해 전, 나의 친구 부부가 친지 방문차 이곳 시애틀에 왔었다. 친구 남편은 술을 좋아해 한 주일 머무는 동안 친지와 마냥 술을 마셨다. 떠날 날이 다 가도록 친구는 관광도 못하고 있었다. 보다못해 내가 친구만 데리고 시애틀 시내 구경을 시켜 주었다. 친구는 교회밖에 모를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지만 남편이 술 마시는것을 막지는 못했다. 속으로 기도만 한다고 했다. 작년에 친구 남편이 간암 투병 중이라더니 올해 초 세상을 등졌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친구는 건강을 위해 남편에게 술을 끊으라고 진지하게 말했어야 했다. 생각만으로는 안된다.   

 

둘째 딸은 삶을 포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치료하러 병원을 다녀 오고는 했다. 기적은 반드시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마지막까지 건강을 돌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무슨 참견이냐는 표정을 지을지도 몰라. 나 역시 친구처럼 생각만 하고 있었다. 문병을 가야지 가야지, 마음만 먹다 끝내 가지 못했다. 그날 외출하는 나를 세우고 앞집 미세스 마샬이 말했다. 옆집 할머니의 둘째 딸이 어젯밤 하늘나라로 갔다고. 바로 옆에 살면서 까마득히 몰랐다. 너무나 고요한 지난밤이었다. 아무 일도 없던 것 처럼 아이들은 여전히 밖에서 뛰놀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무얼했나. 망설이다가 한마디 사랑도 전하지 못하고 말았다. 

 

 

[2013년 3월]

 

--뿌리문학 창간호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