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신순희

 

혹시나 매진될지 모른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빠른 걸음으로 걷다보니 뛰는 남자가 보인다. 작년 1월1일엔 저녁먹고 느긋하게 극장에 갔다 낭패를 당했다. 보려던 영화가 매진되어 다른 영화에 눈을 돌렸으나 역시 매진, 결국 맘에도 없는 엉뚱한 영화를 보았다. 오늘은 다행히 원하는 영화의 표를 살 수 있었다. 개봉 첫날 첫회 상영을 보게 되다니. 오래전 한국에서 영화 ‘빠삐용’을 개봉 첫날 첫회를 줄서서 들어가 본 이후 처음이다.

 

레 미제라블, 장발장. 어려서 이 책 읽고 얼마나 불쌍했는지. 빵 한 조각 훔친 댓가 19년은 너무 가혹했다. 출옥수 장발장을 따뜻하게 대접한 성당 주교의 은혜를 저버리고 은그릇을 훔쳐 달아난 장발장. 곧 경찰에 붙잡혀 성당으로 되끌려온 그에게, 이것이 빠졌다며 은촛대 한 쌍을 건네주던 미리엘 주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새사람이 된 장발장을 왜 자베르 경감은 집요하게 쫓아다니는가. 누가 법을 만드는가. 나는 국가가 시키는대로 했을 뿐 죄가 없다던, 누군가 요즘 한 말이 다시 떠오른다.

 

어린 소녀 코제트가 추운 겨울, 물을 길어오다 장발장을 만났을때는 조바심이 났다. 혹시 그 행운의 순간을 놓칠까 봐. 아무것도 모르고 코제트의 엄마 판틴은 갖은 고생을 하며 양육비를 부쳤건만, 탐욕스런 여관집 부부는 그 돈을 다 착복해 버렸다. 비겁하게 가난한 사람을 울리다니. 이야기의 전개가 소녀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 명작을 책 한권으로 읽었지만, 사실 빅토르 위고는 30년간 구상끝에 전 5권의 책으로 발표했다니 내가 그때 읽은 책은 코끼리 다리를 만진 셈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거대한 배가 보인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1815년, 선박을 수리한 뒤 뭍으로 끌어 올리는 죄수들의 행렬이 남루하다못해 비참하다. 그들을 지키는 경감 자베르는 연기파 배우 러셀 크로우가 맡았다. 러셀 크로우는 내가 생각한 자베르와 다르다. 집념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연민을 느끼게 한다. 장발장으로 분한 휴잭맨은 초라해 보이지만 눈빛만은 강렬한 죄수인데 커다란 통나무를 혼자 옮기는 힘이 장사다. 그가 십자가를 끌고가는 죄인처럼 보인 것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왜 성탄절에 개봉했는지 알 것 같다.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갚는다. 그리고 주교가 장발장을 용서한 것처럼 장발장도 자베르 경감을 용서한다.


영화의 전반부에 나왔다 사라지지만 큰 여운을 남기는 가련한 여인, 판틴역을 앤 해서웨이가 혼신의 힘으로 연기한다.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을만하다. 살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른 판틴이 처음 으로 몸을 팔고 울부짖으며 부르는 노래가 나는 꿈을 꾸었네( I dreamed a dream), 영국 아줌마 수잔 보일이 불러 더욱 유명해진 노래다. 영화를 보고 있는데 눈꼬리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러 뺨을 적신다. 나까지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면 너무 영화에 몰두한 걸까.


어쩌면 그 시절 프랑스는 그렇게 지독하게 가난했을까. 거리에는 거지소년들이 몰려다니고 성난 서민들은 마차타고 가는 귀족을 희롱한다. 반란이다. 민중의 봉기, 지식층 청년들이 나섰다. 여인들은 창밖으로 피아노, 의자 등 닥치는대로 가구를 내던져 청년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게 도와준다. 왕정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느낀 청년들의 반란은 대포를 쏘아대는 무력 앞에 피 흘려 죽음으로 맞서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맹랑하게 세상을 일찍 알아버린 거지소년 가브로쉬도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이 장면에서 가슴이 미어진다. 모든 것이 총 앞에서 간단하게 끝난다. 이것이 1832년 6월 항쟁이다. 시대만 다를 뿐, 사람은 같다. 그때 일어난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삼색기를 휘두르는 청년들의 모습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세계 경제가 어려운 지금, 어쩐지 영화 속 서민의 삶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래서인가 보다. 관객들이 공감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영화는 장장 두 시간 반을 지난다. 중간에 잠깐 지루하기도 하지만, 뮤지컬영화가 보여주는 화려함은 없고 어두운 화면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주인공은 장발장 뿐이 아니다. 프랑스 민중 모두가 주인공이다. 절망 가운데 혁명을 꿈꾸는 청년 마리우스와 처녀가 된 코제트의 사랑, 그 사이에서 짝사랑의 아픔을 겪는 에포닌도 애달프다. 마리우스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의 죽은깨 투성이의 선한 얼굴이 참신하니 희망을 예감케 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희망을 말한다. 청년들이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부르며 ‘내일은 오리라’ 하고 외칠때 관객들은 이미 알았다. 내일은 희망이라고. 영화가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실로 오랜만에 극장에서 박수치는 걸 보았다. 보통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나가는데 오늘은 관객들이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도록 앉아있는것을 보았다. 코를 훌쩍이며 영화를 본 백인 관객들은 장발장이 천국에 갔다고, 결국은 정의가 승리한다고 믿는게 틀림없다.


레 미제라블은 그 시대 배경과 사회상을 통해 보여주는 믿음과 정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랑, 이 모든 것의 혼합체이다. 한 권의 책으로 읽고 장발장의 불행과 선행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서 빅토르 위고가 말하고자 한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하다.

 

 

[2013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