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바가지 럭키

 

                                                                  신순희

 

 

우리 집 말썽꾸러기 럭키 얘기를 할까 한다. 이 녀석은 정말 주책바가지다. 지난여름 가족과 함께 럭키를 데리고 집 근처 공원에 갔다. 작은 행사가 공원에서 벌어지고 있어 공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푸른 잔디밭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잠깐 럭키를 아들에게 맡기고 자리를 떴다. 한 십 분도 안 돼 되돌아오는데 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럭키를 옆구리에 껴안고 빨리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그새 사건이 있었다.
  

잔디에 한가롭게 앉아있던 아들, 갑자기 럭키가 튀어나가는 바람에 개 줄을 놓쳐 버렸다. 부리나케 럭키를 쫓아 달려가니 이 녀석은 제 몸집의 열 배는 더 됨직한 개를 위협하며 으르렁거리면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나. 얼마나 잽싸게 움직이는지 도무지 럭키를 잡지 못하고 쩔쩔맸는데. 얼떨결에 벌어진 일에 꼬리를 내린 큰 개를 잡고 있던 소녀 역시 겁먹어 개 줄을 놓쳤고, 큰 개는 놀라 공원 밖 길가로 도망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소녀의 부모는 이 광경을 보고 황급히 큰 개를 쫓아 달려가고.
  

그 틈에 겨우 럭키의 줄을 잡은 아들은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어서 집으로 가자고 나머지 식구들을 재촉한 것이다. 다른 개들은 다소곳이 주인 말 잘 듣고 얌전하건만 럭키는 밖에만 나오면 이 지경이니, 함부로 데리고 나올 수가 없다. 아들 말대로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그 사건을 얘기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달아난 큰 개를 쫓던 주인과 얼굴을 맞닥드렸다. 어떻게 얼굴을 기억하느냐고요? 럭키를 기억하는 거지요. 얼굴이 벌게진 주인은  ‘그렇게 컨트럴이 안되는 개를 데리고 나오면 어떡하냐’고 한마디 하는 데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큰 개를 찾았다니 망정이지, 급하게 도망가다 잡힌 꼴이 됐으니.
  

집으로 돌아와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양이만 한 치와와에게 쫓겨 도망간 큰 개가 우스워서. 한편 용맹스런 우리의 럭키의 행동에. 아니 가만있는 개를, 멀리 있는 개를 구태여 달려가서까지 짖어대는 이유가 뭔가 정말 모르겠다. 저는 의기양양하게 승리감을 맛보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개 주인으로서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으니. 버릇없는 개를 둔 주인으로서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꼭 막냇자식을 키우는 심정이다. 아이고, 이 철딱서니 없는 럭키를 어쩌면 좋으냐. 이제 우리 집에 온 지 3년이 되어 가는 데도 아직도 그 성질을 고칠 수가 없으니.
  

그동안 정이 들어서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던 럭키가 슬슬 찬바람이 부는 가을 어느 날 또다시 나를 놀라게 했다. 평소대로 아침에 오줌 누라고 뒷마당에 내보낸 럭키가 제대로 서질 못하고 비틀거리다 담벼락에 부딪히는가 싶더니, 네 발을 가누지 못하고 차가운 땅바닥에 그냥 철퍼덕 엎드려 버리는 게 아닌가. 놀란 나는 럭키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덜컥 토하며 몸을 가누지 못한다. 경기발작을 일으킨 건가. 평소에 귀가 안 좋아 치료받곤 했는데 그래선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겁이 나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이것저것 묻고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기운이 없다가 그래도 밥을 먹겠다고 밥그릇에 주둥이를 대고 조금 먹다 슬그머니 뒷걸음으로 몇 발자국 물러서 그 자리에 푹 주저앉는다. 그런 모양 처음 본다. 주먹만 한 얼굴이 애처롭게 쳐다보는 데 맘이 찡하다. 애완견을 둘씩이나 키우는 이웃에 전화로 도움을 청하니 친절하게도 잘 아는 수의사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해준다. 아마도 장염이 아닐까 하고. 맞다. 이 녀석이 엊그제 뒷마당에 나가서 뭔가 수상한걸 집어 먹었다. 다행히 일주일간 조심하고 지켜보며 돌봐주어 회복됐다. 그동안 맘을 졸인 걸 보니 아무래도 럭키는 우리 집 막내인가 보다.
  

어제 일이다. 어두컴컴한 저녁에 앞마당으로 개 줄을 맨 럭키를 데리고 나갔다. 오줌을 누이고 옆집

크리스마스 라이트가 아름다워 한번 둘러보는 데 목걸이가 헐렁했는지 럭키가 풀렸다. 쏜살같이 럭키가 열린 우리 집 문 쪽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는데 금세 눈 앞에서 사라졌다. 문옆으로 검은 물체가 휙 지나가는 걸 봤는데 어디로 튀었나. ‘럭키이 럭키이’ 그때부터 손전등을 들고 밤하늘에 메아리치도록 이름을 부르며 온 동네를 헤맸다. 우선 옆집 할머니네 문을 두드려 그 집 뒤뜰을 흝어보고  또 그 옆집도 그 옆집도. 다음으로는 가끔 산책한 길을 따라 빠르게 걸으며 럭키 이름을 외쳐댔다.

 

이 녀석이 추운데 어디 가서 얼어 죽을지도 몰라. 천방지축이니 달리는 차에 치일지도 몰라. 짧은 순간에  많은 걱정을 하며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없다. 불쌍한 놈. 3년간 정들었는데. 덕분에 덜 외로웠는 데. 처음 왔을 땐 집을 잘 뛰쳐나갔지만 요즘은 안 그랬는데. 주책바가지, 이 추운데 왜 튀어나가 나가길.  날은 어두워지고 춥고…

 

얼마나 지났을까.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집에 터덜거리며 돌아왔다. 이제는 정말 잃어버렸구나. 초콜릿 색 털에 쫑긋한 귀, 반짝이는 눈동자와 벌름거리는 코를 다시는 못 보겠구나. 뒷문을 열어둬야겠다, 언제든 들어올 수 있게. 이런 생각에 맘 아파하며. 그런데 기막히게도 거실 창문 쪽 히터 구멍에 럭키가 한껏 쭈그리고 그림같이 앉아있지 않은가. 아니 이 녀석이 집 안에 있었어? 그렇게 집 안에 대고 제 이름을 불렀건만 콧방귀도 안 뀌고 있었단 말야? 괘씸한 녀석같으니라고. 막냇자식 다루듯 야단을 치면서도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세 번 째 주인인 우리 집에 정착한 럭키가 예뻐서.

 

 

[2012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