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반지

 

                                                    신순희

 

올여름 뒤뜰에서 잡초를 뽑다가 나는 다이아반지를 뽑아버렸다. 처음으로 시애틀 우리 집을 방문하러 오빠가 한국에서 오기 바로 전날,  정원손질을 한다고  부산을 떨었는데 그때 사건이 발생했다.  실장갑을 낀 채 작은 꽃삽으로  뒤뜰 화단을 휘저으며 손을 놀렸는데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질긴 민들레 말고도 웬 잡초가 그리 많은지 각종 풀을 뽑았다. 그래 맞아. 유난히 말라빠진 물망초꽃 줄기에 가시가 있어 장갑에 엉겨 붙었었지. 그래서 내가 장갑을 벗어 털어내고 장갑의 손가락끝이 왠지 무겁다고 느꼈지만 무심했는 데  반지가 그 장갑 안에 빠졌었나. 아니면 장갑을 털었으니 뽑아버린 잡초더미에 떨어졌나. 아무튼 정원을 손질한 후 남편이 잔디를 깎았다.
 

문제는 그땐 모르고 있다가 다음날 갑자기 손가락이 허전해서 알아차렸다는 거다. 혹시 반지를 다른 데 두고 찾는 거 아니냐. 이러다 다른 데서 반지가 나올 거라고 다른 사람들이 말했지만, 난 틀림없이 그날  다이아반지를 꼈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일하려고 장갑을 끼면서 반지를 빼야 하지 않을까 신경 쓰였으니까. 하지만 내 반지는 가락지에 다이아가 콕 박혀있어  밋밋하니 장갑에 걸리진 않아 귀찮아서 그냥 장갑을 꼈던 것이다.
 

오빠가 우리 집에 이틀 있는 동안 오빠까지 동원해 반지를 찾았다. 아무래도 반지가 뽑아 버린 잡초더미와 함께 초록색 야드통에 들어간 것 같다. 남편과 나까지 셋이서 마당에 커다란 비닐보자기를 펼쳐 놓고 초록색 야드통을 엎었다.  잡초와 깎은 잔디로 범벅이 된 야드쓰레기는 여름이라 그 새 썩어 뭉그러지는 중이었다. 그 냄새 속에서 우리 세 사람은  다이아반지를 찾기 시작했다. 남편과 내가 손바닥으로 일일이 문질러가며 한번 뒤진 쓰레기를 오빠가 또 뒤졌다. 꼭 나올 줄 알았다. 없었다. 아니야 꼭 있을거야. 다시 한번 찾아보자. 세 사람이 허리를 펴고 난 뒤 다시 작업을 시작했지만 다이아반지는 없었다. 어떻게, 허무하다. 오빠 미안해. 모처럼 우리 집을 방문해 주었는데 이런 궂은일을 시켜서. 그래도 친정 식구니까 맘 놓고 시키는 거야. 
  

오빠가 떠난 뒤 며칠 동안 나 혼자서 틈나는 대로 차근차근 반지를 찾았다.여러번 뒤진 야드 쓰레기통을 다시 뒤지고 처음 잡초를 제거했던 자리의 흙을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혹시 잔디밭에 떨어졌나, 뒤뜰 잔디밭에 반짝이는 게 있을까, 눈을 크게 뜨고……못 찾았다  . 
 

내 다이아반지는 결혼 후 다시 세팅했다. 처음 백금에 물려 높이 솟아있던 삼 부 다이아를 그 당시 유행따라 십사금 두 돈에 먼저 반지에서 빼낸 다이아몬드를 콕 박아넣고, 다이아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각각 세 개씩 깨알만 한 서브 다이아를 또 박아 민자 가락지로 바꿨다.  반지가 꽤 굵었는데, 요즘 금값도 비싼데, 깜빡 끼고있는 줄 알고 착각하다 느닷없이 가슴이 서늘해진다. 내 다이아반지. 이다음에 아들 결혼시키면 며느리에게 물려주려 마음 먹었었다. 미국에 와보니 웬만한 여자들은 다이아반지 일 캐럿은 보통 갖고 있어서 ‘삼 부쯤이야 뭘’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일 캐럿짜리 다이아반지를 다시 끼워준다 해도 난 싫다.  내 반지는 30년 역사가 있는 거니까. 처음엔 무척 생각났다. 메이시백화점 카탈로그에 내 반지와 비슷한 반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고 꿈속에서는 반지를 되찾기도 했다.   
 

내가 다이아반지 찾는 일을 포기하자 남편이 금속탐지기를 빌려왔다. 나중에 후회라도 없게 하자고. 그걸 가지고  뒤뜰 화단을  뒤지니 툭하면 삐비빅 소리를 냈다. 소리 나는 곳을 파보았지만, 아무것도 안 나왔다. 여기 가도 삐비빅 저기 가도 삐비빅 어쩌란 말이냐.  화단 전체에 금속이 있을 리 없건만 왜 자꾸 신호를 보내는지. 식구가 번갈아 금속탐지기로 뒤뜰을 헤맸지만, 반지를 찾지 못했다. 어차피 잃어버린 것 잊어버리자. 팔 생각은 없었으니 돈으로 환산할 것도 아니고 그냥 추억하나 사라진 셈 치자. 위로가 될 듯 말 듯 했다.
 

보석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면 될 것을. 물질에 의미를 두지 말고 마음에 의미를 두면 될 것을. 그것이 왜 안 되는지. 모든 것이 사라지는데 보석이라고 안 사라질까. 내 다이아반지는 겨우 삼 부짜리인데, 그 조그맣고 유리 같은 돌조각에 마음을 이다지도 졸이다니. 그거 나와는 인연이 없나 보다. 잃어버린 그 반지가 그냥 쓰레기더미 속에 파묻히지 않고 누군가 발견해서 가졌으면 좋겠다. 이젠 정말 미련을 버리겠다.
 

지금 내게 남은 건 지난 결혼 이십 주년에 남편이 사준 99불짜리 눈꼽만한 다이아가 세 개 박힌 아주 가는 십사금 실반지뿐이다. 이 반지는 결혼기념일을 그냥 지나치는 남편에게 한마디 했더니 그 길로 나가 유명한 보석상 ‘케이’에 가서 비싼 건 못 보고 가장 싼 반지하나 사온 것이다. 거기서 이런 것을 파는지도 몰랐다. 보석상 주인은 결혼 이십 주년이면 이 정도는 되야 한다고 커다란 다이아반지를 내보였지만, 남편은 이 실반지를 사갖고 의기양양해서 돌아왔다. 지금 내 약지에는 그 다이아 실반지와 십사 금 실반지가 한데 끼어있다. 그런데… 그 잃어버린 다이아반지, 초록색 야드통이 아니라 그때 내가 회색 쓰레기통 속에 던져버린 실장갑 속에 있었을까?

 

[2010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