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풍경화

 

신순희       

 

8월에 들어서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좋은 날이 가버릴까봐 벌써 아쉽다. 시애틀의 여름이라해야 쨍하고 강하게 쪼이는 한낮의 햇살이 전부일 , 서늘하니 물에 들어가기도 으스스하다. 어쩌다 몇일 화씨90도가 넘는 날씨를 보여주지만 이내 서늘해지니 때론 한국의 강렬한 여름이 그리워진다. 후덥지근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참을 없는 더위와 잠못이르는 여름밤. 동네 구멍가게 앞에 밤늦게까지 맥주를 딸아놓고 담소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어릴적엔 일년에 한번 8 15 광복절에 서울 근교, 우이동 계곡에 가서 개울물에 발을 담구는것이 유일한 피서였다. 지루한 여름방학을 들뜨게 하는 그날, 집에는 태극기를 걸어두고 우리 가족은 휴가를 갔다. 하루. 어머니는 점심을 챙겨 도시락을 쌌는데 찬합 하나에 맨밥을 가득 담고  또다른 찬합에는 여러가지 반찬을 가지런히 담었다. 계란말이와 뱅어포구이, 굴비 말린것을 껍질 벗겨 짝짝 찢은것. 오이소박이같은게 생각난다.

아버지는 즐겨 쓰시는 중절모에 남방셔츠를 입으시고 조금 허름한 양복 바지에 운동화를 신으셨다. 어머니는 발목만 나오는 원피스 차림이고. 어쩐일인지 오빠와 언니는 기억에 없다. 어린 동생과 나만 갔을까. 어머니는 여름에 한창 유행하던 오돌도돌한 하늘색 곰보 나일론(그당시 그렇게 불렀다)으로 원피스를 만들어 주셨고 동생들은 분홍 원피스를 입었다. 하늘거리는 새옷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은 지금도 있다. 흑백사진에 우리 자매는 삐쩍 마른 몸매, 앞머리를 내린 단발에 눈만 커다란 것이 지금의 3 어린이들같이 보인다. 밑으로 내려다보며 찍는 커다란 직육면체로 사진기로 찍었다

나들이에 빠질 없는건 수박 . 빨간색 가느다란 비닐끈으로 짜여진 망에 수박을 낑낑대며 들고가서 시원한 계곡물 속에 담구어 두었다. 노란나이롱참외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복숭아도 . 아버지는 바짓단을 접어 올리고 돗자리에 비스듬히 않아 여배우 얼굴이 있는 부채를 흔들며 여름을 식혔다. 낙천적인 아버지는 여기가 천국이다, 느긋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자리를 주고 샀다. 임자없는 계곡에 주인인양 거드름을 피는 사람들이 텃세를 부렸다. 돗자리 깔아두고 자리값을 받았다. 평상이 놓인 자리는 돈을 요구했다. 울창한 나무 사이에 앉아있는 평상에는 대낮부터 거나하게 취한 남자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화투를 쳤다. 계곡에 자리값이 있다는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었다. 행여 피서객이 맘대로 자리를 폈다간 난리가 났다. 하긴 요즘 수돗물을 플라스틱 통에 담아 생수라고 파는게 봉이 김선달과 가까울지 모르지만.

서울에서만 자란 나는 여름방학이면 고향에 간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도 있는 고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군것질로 메뚜기볶음을 먹는다는 애들은 곤충채집을 멋지게 해왔다. 방학숙제가 힘들어 나는 문방구에서 사다 제출했다. 어쩌겠는가. 주변에는 모기나 파리밖에 없는 것을. 그림으로만 보는 원두막이 궁금했고 수박서리한다는게 무언지. 쌀이 되기전 벼를 논에서 처음 것이 중학교 소풍길이었으니까.

시골에서 가마가 왔다는말을 듣는 제일 부러웠다. 시골에 친척이 있는 친구들은 자꾸 서울로 뭐가 올라왔다. 말고도 고추며 마늘이며. 우리와 가까이 지내던 능안이모네도 세검정 자하문 밖에 살고 있는 친척 집에서 능금을 보내왔다. 그러면 우리 집에도 접이 왔는데 예쁘긴해도 시고도 떫어서 먹지못해 실망스러웠다. 이모네는 마루에 뒤주가 있어서 밥할 때마다 거기서 쌀을 퍼냈다. 우리 집에도 뒤주가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쌀가게에서 말씩 배달해 걸로 밥을 해먹었으니. 어머니는 쌀을 사야한다고 하지 않고 쌀을 팔아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비가 오신다고 존댓말을 쓰셨고. 서울 사투리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때 우이동 계곡물 미끌미끌한 바위에서 놀다 넘어져 무릎을 다친 흉터가 지금도 있다. 속에서 상처는 눈물도 나지않고 숨을 없이 아프더니 새파랗게 속멍이 들었는데 세월이 흘러도 색이 지워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여름방학은 그렇게 한번씩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갔지만 이후에는 기억에 없다. 아마도 우리 피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나보다.

맑은 물이 철철 흐르고 시원한 바람이 불던 우이동은 이제 깊은 계곡이 아니다. 행여 도심에 밀려 심하게 개발되지나 않았는지. 신도들이 많이 들락거리던 유명한 도선사는 아직 그자리에 있을까. 해외여행이 흔해지고 동해로 달려 가는 요즘도 우이동으로 피서가는 사람들이 있을는지. 물가에 솥단지 걸어두고 한복 입은 아주머니들이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던 . 서민들의 삶은 변한 없다는데 산천이 설마 변했을리야.

시애틀에서 조금 멀리 차를 타고 나가면  태평양을 눈앞에 오션 쇼어가 보인다. 피서 필요없이 서늘한 시애틀 여름이지만, 그곳에 가면 그래도 여름 기분이 난다. 한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연날리기 있고말타기같은 위락시설이 있는, 누구나 쉽게 있는 서민냄새가 나는 곳이다. 피서객들은 차거운 모래바람을 맞으며 비키니 수영복차림으로 썬텐을 하는가 하면 입술이 파래져도 첨벙대며 속에 들어가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나는 옷을 입는다.

8월이 지나면 해가 짧아지고 어두운 날이 잦을텐데. 선풍기 한번 켜보지도 못하고 가버리는 시애틀의 여름이 안타깝다. 늦기전에 어디론가 떠나자. 외롭지 않게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으로.

 

[2012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