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토끼와 까마귀

 

                                                                                                        신순희

                                                                                                                           

 

봄이 되면 우리집 뒤뜰에 모습을 드러내는 야생 토끼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뒤뜰에는 나무로 된 창고가 하나 있다. 그 창고 밑으로 토끼가 들락날락한다. 그 속 깊숙이 토끼굴이 있는지 작년에는 어미도 보이고 새끼도 두 마리가 얼쩡됐었다.  올해는 웬일인지 병아리같이 자그마하고 솜털이 보숭보숭한 새끼 한 마리만 드나든다.  이미 텃밭에 심은 콩의 새싹을 뚝 잘라 먹어 버렸다.
  

이 어린 새끼토끼는 행동이 굼뜨다. 가까이 다가가도 사람을 믿어서인지 뭘 몰라서인지 도통 도망갈 생각을 안한다.  느긋하게 엎드려서 토끼풀이나 어린 민들레 잎을 뜯어 먹는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낙엽이 되어 뒹구는 채리나무 잎을 아작아작 갉아 먹는다. 이따금씩 긴 뒷다리로 얼굴을 긁는 모습이 우리집 강아지와 비슷하다. 우리집 강아지는 오줌 누러  뒤뜰에 나가면 우선 창고를 향해 냅다 지른다. 그 주변에 얼쩡대는 새끼토끼를 아는 것이다.  낌새를 알아차린 새끼토끼는 얼른 창고 밑으로 숨는다. 그러면 강아지는 창고 주변을 맴돌며 킁킁 냄새를 맡고 안달이다.  끝내 어린 토끼가 모습을 들어내지 않으면 그제야 제 볼일을 본다. 여기저기 찔끔 오줌을 누며 텃세를 부린다.
  

새끼토끼는 아침 일찍 나와 먹이를 뜯는다. 그리고 저녁 어스름이 내릴때 또 나타나 먹이를 찾는다. 어려서인지 먹는 시간이 참으로 길다. 푸른 잔디밭에 한가로운 풍경을 연출해 준다. 그런데 혼자라 외로워 보인다. 어미 토끼는 어디에 있는걸까. 주변 상황에 익숙해졌는지 요즘엔 더욱 집 가까이 다가와 먹이를 구한다.
  

작년에는 토끼 한 마리가 무성한 라벤다꽃 무더기 속에서 새끼를 낳았는지 터를 잡고 살았다. 토끼들이 기거하자 라벤다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내쫓으려 호스로 물세례를 주어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 토끼 가족이 우리집 앞뜰 라벤다에서 뒤뜰 텃밭 그리고 창고까지 차지하고 다녔다. 결국 올해 그 라벤다는 거의 다 말라죽고 겨우 한쪽 귀퉁이에서만 조금 꽃을 피웠다.
  

토끼가 있으면 꽃밭이고 텃밭이고 남아나지 않으니 내쫓아야 한다고 이웃이 조언해 주었다. 고양이를 키우면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고양이가 토끼사냥을 한다고 한다. 고춧가루같이 매운 맛이 나는 가루를 홈디포에서 사다 뿌리면 된다고도 했다.  작년에 그 가루를 사다 창고 주변에 뿌려 보았지만 효과를 못보았다. 찬바람이 불기시작하자 토끼 가족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리고 올해 또 나타난 것이다.
  

아침에 눈 뜨면 바깥을 보고 새끼토끼가 있나없나 살핀다. 토끼가 텃밭을 망치든 말든 그 모습을 보는게 반갑고 귀엽다. 어미 토끼가 안보이는것을 보면 어쩌면 차에 치였을지도 모른다. 어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위험한 줄도 모르고  행동이 그리 굼뜬가. 어미 없이도 제 앞가림을 할 줄 알아야 할텐데.
  

지난 5월에 눈에 띄기 시작한 어른 주먹만한 새끼토끼는 잠깐잠깐 나타나더니 점점 뒤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덩치도 조금씩 커져 갔다. 우리와 친밀해졌는지 가까이 가도 움직이지 않다가 발을 구르며 소리를 내야 비로소 폴짝 뛰어 창고 밑 제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강아지도 그 모습을 보아선지 밖에서 토끼처럼 껑충껑충 뛴다. 토끼 흉내를 내는 것이 틀림없다. 가만히 관찰해 보니 강아지가 새끼토끼를 잡는게 아니라 함께 놀고 있다. 토끼를 보고도 못본척 딴청을 부리다 토끼가 제집으로 들어가면 그때서야 쫓는다고 법썩을 핀다. 분명 토끼를 보았을텐데도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고 만다. 서로 숨바꼭질한다.
  

어제 아침, 밖을 보았다. 늘 토끼가 풀을 뜯어 먹던 자리에 웬 다람쥐만한 누런 형체가 누워 있다. 설마 토끼는 아니겠지. 뭘까? 까마귀가 날다 뭘 잘 떨어뜨리는데. 이슬비가 보이지 않게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받쳐들고 뒤뜰로 나섰다. 가까이 다가서니 새끼토끼다. 옆으로 누운채 납작하게 죽어있다. 등 가죽이 벌겋게 벗겨진 채 배에 구멍이 뚫려있다. 쫑긋한 두 귀가 나란히 붙어 있다. 차마 더이상 볼 수 없어 돌아서 집안으로 들어왔다.
  

밤새 죽었을까,  밤에 왜 나다녔나, 아닐텐데, 새벽에 그랬을까.  누가 그랬을까?  뒤뜰에 어떤 동물이 다니는지는 알 수 없다. 두더지도 있는 것 같고, 어느 땐 너구리도 두세 마리가 보였다. 옆집 고양이가 울타리를 넘어 들어올때도 있고, 무엇보다 새까맣게 윤기나는 커다란 까마귀는 노상 다닌다.
  

어느새 나타난 한 마리의 까마귀가 죽은 새끼토끼를 파 먹는다. 땅에 묻어 주고 싶은데 아침에 바쁜 탓에 남편이 그냥 비닐봉지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토끼의 굳어진 몸을 치우고 보니 그 주변에 토끼의 내장이 흩어져 있다.  까마귀가 쪼아 먹고 물고 가고 먹지 못하는 부분만 남겨져 있다. 강아지가 나가면 건드릴까봐  내키진 않지만 할 수 없이 나머지 토끼 내장의  잔해를 나무 젓가락으로 집어 비닐봉투에 담는다. 살아있던 몸이 죽으면 이다지도 볼품이 없다니. 앙징스런 토끼가 구역질나는 쓰레기로 변했다. 그 작은 토끼가 남긴 몸 속 일부를 하나하나  집어 올리려니 몸서리가 쳐진다. 뽑힌 토끼의 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잔디에 꽂혀 있다. 
  

푸른 잔디밭에 자유롭고 한가롭게 혼자서 풀을 뜯던 이름없는 새끼토끼 한 마리가 사라졌다. 우리집 강아지 럭키는 이제 바깥에 나가도 심심해져 버렸다.  후각이 예민한 강아지는 이미 토끼가 기거하지 않는 창고 밑에는 관심이 없다.  자꾸 새끼토끼가 있던 그 자리로 눈길이 간다. 그 자리에서 나는 풀을 뜯고 있는 토끼가 보이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허상을 본다. 근 두 달간 그렇게 내 눈앞에 있다 가버린 애틋한 새끼토끼가 생각나 침울하고 허전하다.
  

오늘 아침 남편이 뒤뜰을 둘러 보다 새 한 마리가 까마귀의 공격을 받고 쓰러져 있다고 전한다. 놀라 나가 보니 과연 참새보다 큰 아름다운 주홍색 날개를 가진 새가  보인다. 두 날개를 좌우로 쫙 펼친 채 목을 곧추 세우고, 부리는 하늘로 향한 채 그림같이 정지된 상태다. 죽어 있나? 토끼와 똑같은 모습으로 공격 받았다. 새 등 껍질이 하얗게 벗겨져 있다. 범인은 까마귀였다. 뒤뜰 한가운데 꼼짝도 하지 않는 저 새를 어찌해야 하나. 남편이 집게로 옮기려 건드리자 파드득 움직인다. 살아있다. 어쩌나. 남편은 출근해 버리고 상심한 나는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에 손이 떨린다. 썩은 고기를 좋아하는 까마귀가 왜 살아있는 것에 눈독을 들이나.
  

자연 그대로 두라는 남편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째보려 다시 나왔다. 그사이 또 까마귀가 공격해 이번엔 주홍새의 머리털이 벗겨졌다. 이번엔 정말 죽은 것 같다. 까마귀, 이 괘씸한 놈들 같으니.  창고에서 큰 삽을 꺼내와 새를 떴다. 순간 새가 가냘프게 비명소리를 낸다. 못견디겠다. ‘미안해 미안해’ 나는 진정 미안한 맘으로 삽 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새를 뒤뜰 울타리 쪽 우거진 풀숲 깊숙이 옮겨 주었다. 이제 회복을 하든 또 다른 공격을 받든 그건 네 운명이다.
  

시애틀은 마냥 비가 와서, 까마귀의 먹이가 되는 지렁이가  땅을 헤치기만 해도 많은데,  왜 가만히 있는 평화로운 주홍새와 새끼토끼를 건드리는지, 살찐 까마귀, 그 심보가 정말 밉다. 그런데 저녁에, 뒤뜰에서 일어난 얘기를 들은 아들이 이런다.  요즈음, 까마귀들이 새끼에게 날아다니는 연습을 시키느라 예민해져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방송을 들었다고. 까마귀 새끼 때문이었다. 새끼토끼가 공격당한 것이. 참, 자연의 섭리라니……

 

[2011년 6월]


--뿌리문학 제2집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