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하늘에는 별이 있다

 

신순희

 

추수감사절이  지나고나니 바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기 시작한다. 성탄절 의미는 뒤로 밀린 거리는 분주하게 흔들린다. 상점마다 파격세일을 한다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주머니 사정이 힘들어도 이때는 작은 소비라도 하는 미덕일지 모른다. 여인들은 파티에 어울리는 반짝이는 드레스를 만지작댄다.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장식이 깜빡이고 집집이 작은 주렁주렁 열린 처마 끝이 찰랑거린다. 저물어가는12월은 반짝인다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보았던 풍경을 시애틀에서 보며 산다. 상록수가  많은 시애틀의 별명은  에버그린 스테이트이다. 동네 공원을 돌다 보면 삼나무가 쭉쭉 뻗어있고  교외로 나가면 가문비나무에 눈이 쌓인 모습이 고즈넉하다. 우리 뒷마당 호랑가시나무의 빨간 열매와 뾰족하게 찌를듯한 이파리도 성탄 카드에서 자주 보던 그림이다. 자연과 친한 도시의 밤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시절. 예수를 믿지도 않으면서 12 25일이 가까워지면 공연히 마음이 들떴다. 제과점에는 데코레이션 케이크가 담겨있는 상자를 높다랗게 쌓아두고 손님을 기다렸다. 그날은 케이크 먹는 날이다. 다니지 않는 교회를 가고 싶은 날이기도 했다. 막연히 교회 다니는 사람을 동경했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어린 동생은 친구 따라 교회에 나갔다. 동네에 새로 생긴 이름도 생소한 교회에 가면 자꾸 가지고 왔다. 예쁘게 포장한 초콜릿이나 학용품 같은 것을 받아왔다. 교회에서 단정한 양복을 입은 파란 눈의 청년 둘이 우리 집에 전도를 왔다. 오빠의 방으로 안내된 그들에게 어머니는 차를 대접했다. 오빠는 방문 꼭대기에 나는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다짐을 영어로 붙였다. 그들은 반색하며 글을 붙인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기다려도 오빠가 오지 않아 아쉬워하며 그들은 떠났지만, 만일 오빠를 만나서 얘기가 잘되었다면 어쩜 오빠는 미국 유학 기회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오빠는 예수쟁이가 되었을까?

스무 즈음. 연말이 되면 젊은이들은 정열을 쏟을 데가 없어 거리를 배회하였다. 돈도 없고, 곳도 없는 청춘들. 지금이야 놀거리가 많고 가진 것도 많지만, 그때는 정말 가난했었다. 집에 가야 식구들이 북적거리고  따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니 밖으로 쏘다녔다. 기껏 가는 곳이 다방에서 죽치고 음악 감상실, 생맥줏집 정도다. 모르겠다. 호텔에서 호화로운 연말을 보낸 이들에 대해선. 그렇다 해도 지금같은 위화감은 없었다. 너나 나나 가난했으니까. 그때 8요일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가난한 연인들이 면의 벽이 아니라도 좋다, 함께 있을 면의 벽이라도 있다면, 하고 탄식하는 절망에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난다. 별은 너무 멀리 있고 가난이 철학이었던 시절이었다.

여고 시절. 친구들이 연말에 시간을 함께 보내자고 제의했다. 저녁을 먹은 친구 K 집에서 모였다. K 몸이 유연하니 소울춤을 추었다. 우리에게 춤도 가르쳤다. 그때 친구가 춤추기 좋다던 노래가 비틀스의 헤이 쥬드였다. 곡이 길어서 끊기지 않고 춤출 있다고. 그것도 잠시, 시들해지면 주저앉아 들고 과자를 부스럭대며 먹었다. 친구들 얘기, 선생님 얘기, 클리프 리차드 얘기…. 얘기의 결국은 진로에 대한 걱정이고 장래에 대한 의문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친구들은 길게 하품을 해대고 말을 시키면 대꾸가 없어졌다. 어느새 하나씩 스르르 잠이 들고. 이것이 우리의 없는 송년 모임이었다. 한해의 마지막을 홀로 보낸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친구이든 가족이든 아니면 별이라도 곁에 있어 줘야 한다.

결혼 . 처음으로 명동성당에 갔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을 때다. 크리스마스를 그냥 보낸다는 왠지 허전했다. 추운 겨울밤 늦게 가족과 함께 명동성당 앞에 꾸며진 아기 예수를 보았다. 별을 따라 찾아온 동방박사 사람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듯 우리도 고개 숙여 기도했다. 한해를 보내면서 무언가 마무리가 되는 마음이 놓였다.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오고 가던 명동의 밤거리 끝에 성당이 있었다.

이제 나는 연말이라고 설레지도 방황하지도 않는다. 시애틀에 일가친척 하나 없다는 허전하긴 하다. 교회마저 다닌다면 견디기 힘든 12월이다. 별을 보고 길을 찾듯이 12월은 성탄절이 있어서 포근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골고루 비취는 별처럼 그해의 마지막은 반짝이는게 좋다.

 

[2012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