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벌에 쏘이다

 

신순희

 

뒷마당이 너저분하다. 가뭄에 타들어 가는 잔디는 누렇게 탈색되고 채리나무 잎은 말라비틀어져 나뒹군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건조한지 알겠다. 여름 두 달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사막이 될 것만 같다.  삭막한 시애틀의 여름 풍경이다.

뒷마당 식물이 더위에 지쳐있는데 울타리 쪽 눈에 띄게 싱싱한 것은 심지도 않았는데 자생한 플라타너스. 손바닥만 한 잎사귀가 푸르다. 물도 주지 않건만 홀로 날마다 키를 더하고 있다. 그대로 두면 나중에 손 볼 수 없이 자라 가지치기가 어려워지겠다. 발꿈치를 들고 서서 전지가위로 큰 키를 줄이고 있다.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우려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였다. 순간, 오른쪽 귓바퀴에 날카로운 통증이 인다. 무엇인가?

벌이다. 벌이 공격하고 있다. 성급히 자리를 피하며 자세를 낮추지만 ‘윙’ 비행 소리를 내며 따라붙는다. 손에 쥔 전지가위를 내던지고 엉덩이를 낮추고 기다시피 집안을 향해 오리걸음이다. 귀에서 목으로 바짝 따라붙으며 머리 위를 빙빙 배회한다. 여러 마리인가? 어찌할 줄 모르겠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이놈이 따라오면 안 되지. 모자와 웃옷을 벗어버리고 얼른 뒷문을 열고 닫는다. 설마 여기까지 따라 들어오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왜 나를 공격하는 거지?

욕조 샤워 꼭지에 머리를 디밀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쳤다. 묶었던 고무줄을 뽑아내고 머리를 감는다.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고 나니 팔뚝도 따끔거리고 허벅지도 뜨끔거린다. 감촉이 이상해 반바지를 벗어 제치는데 그 속에서 벌 한 마리가 나온다. 너 거기 있었어? 기겁한다.

뒤도 안 돌아보고 화장실 문을 쾅 닫는다. 너 거기 갇혔다. 거울을 보니 귓바퀴가 새빨갛게 부어올랐다. 통증보다 더 겁이 나는 것은 귀가 급소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하필 거길 쏠 게 뭐람. 이제 어쩐다. 곁에 아무도 없으니 더 겁난다. 먼저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내가 너무 긴장했나 보다. 목소리가 떨린다. 나 벌에 쏘였어. 거실 화장실 문짝에는 ‘안에 벌 있음. 문 열지 말 것’이라고 커다란 글씨를 써 붙였다.

동네 ‘어전케어’ 가서 스테로이드 주사 한 대 맞고 먹는 약 바르는 약 처방받았다. 벌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데, 급한 대로 응급처치는 했으니 안심이다. 그나저나 내가 이토록 침착하지 못하다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도망치느라 무릎이 까진 것도 몰랐다. 꽃 사이를 붕붕 날아다니는 꿀벌이 정겹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집에 돌아오니 그새 아들이 와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뒤뜰 현장을 확인하려 나서는데 아들이 말린다. 밖에 옷이랑 가위랑 팽개쳐두었는데…상관 말라고 한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진정하라고. 그럼 화장실에 가둔 벌은 어떡해?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는 대답이다.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화장실 안에 갇혀서 비실거리던 그 벌은 결국 아들이 뿌린 벌 퇴치용 스프레이에 쓰러졌다. 

나를 쏜 것은 땅벌이었다. 내가 가지치기를 한 바로 옆 땅속에 벌집이 있는 걸 몰랐다. ‘옐로우 재킷’이라 불리는 말벌의 일종으로 꿀벌보다 작고 허리가 날씬한 노란 줄무늬가 있는 벌이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이 곤충은 날벌레도 잡아먹고 쓰레기통도 뒤진다. 8월에서 9월이 산란기여서 독성이 더 강하다. 게다가 한 번 쏘면 벌침이 빠지는 다른 벌들과 달리 여러 번 쏘아도 벌침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였다. 병원에서 의사가 열심히 들여다봐도 내 몸에서 벌침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그래도 내 몸 어딘가에 침이 박혀있을 것 같아 개운치 않다.

저녁에 화장실 욕조에 떨어져 있는 고무줄을 발견했다. 아까 묶은 머리를 풀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이다. 집어서 세면대 위에 올려놓았다. 검은 고무줄에 뭔가 붙어있다. 악, 비명이 새어 나왔다. 벌이다. 벌이 고무줄에 엉겨 붙어 죽어있다. 그러니까 나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온 벌만 두 마리였다. 대단한 의기투합이다.

지독한 놈들이다. 내가 어쨌다고 그러는 건지. 가만히 있는 나를 침입자로 알고 온몸을 바쳐 공격하고 장렬하게 전사한 땅벌 두 마리. 내 눈에 뜨인 것이 두 마리이지 밖에서 나를 공격한 벌이 몇 마리인지 모른다. 이 악착같은 근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하찮은 벌레지만 목숨 바쳐 삶의 터를 지키고 종족을 지키겠다는 본능이 놀랍다. 벌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벌에 대한 공포심으로 당분간 뒷마당에 나가기 힘들겠다. 고작 그 작은 벌레 때문에 나라는 인간 참 나약하기 그지없구나, 혼자 기가 죽는다.

만물의 영장이면 뭐하나. 생존은 몸집의 크기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숫자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 더하여 그 숫자가 협동하고 있다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벌이 더 두려워진다.

 

[2017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