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길, 데드 엔드

 

                                                                                                 신순희

 

    

막다른 길로 들어서면 돌아 나와라. 그 길은 데드 엔드(DEAD END)) 죽음의 끝이다. 더는 갈 곳이 없다.
   

끝을 보지 않으려면 돌아서야 한다. 막다른 길 처럼 절망적인 말이 있을까. 길은 열려 있어야 한다. 길에서 길로 연결되어 흘러가야 한다. 가다 보면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꽃도 소중하고 바람에 버려진 낙엽이 허망하지도 않다. 여러 갈래 길에서 망설이느라 시간이 지체된다 해도 힘겹게 언덕을 넘고 나면 희망이 보이고 운이 좋으면 마음을 나눌 동행도 만난다.
   

마름모꼴 표지는 노란 바탕에 까만 글씨로 ‘DEAD END’라고 쓰여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차를 타고 동네 어귀에 들어서다 그 푯말을 보았을 때라니. 무슨 교통표지판이 이처럼 섬뜩할 수가 있을까. 죽음의 끝이라니 닫혀있는 길과 죽음이 상관관계란 말인가, 막혀있는 길 끝에 죽음이 있다는 것인가. 이국 생활 이십여 년 살다 보니 이 푯말이 그리 절망적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수없이 맞닥뜨렸던 막다른 길은 단지 돌아서 나오면 되는 것을.
   

죽음의 끝보다 더 위태로운 것이 우선멈춤이다. 스톱(STOP) 표지판은 데드 엔드 보다 한 단계 격상된 적색 교통표지판이다. 쉬지 않고 달리다가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이다. 일단 서라, 반드시 멈추고 3초 동안 기다렸다 가라는 명령보다 가보고 나서 아니면 되돌아 나오라는 데드 엔드가 훨씬 설득력 있다.
  

 데드 엔드. 동네 막힌 골목마다 서 있는 표지판이다. 사실 골목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 놀던 골목이 아니다. 시애틀에서 만나는 골목은 자동차가 왕래하는  나들목이어서 아주 넓고 환하다. 드러난 죽음의 끝이 무서운 건 아니다. 죽음처럼 단절된 길, 더는 길이 없다는데 이처럼 명확한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출구를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아니면 처음부터 그 길목에 들어서지 말든지.
   

어머니는 곧잘 말씀하셨다. 집을 구할 때 막다른 집은 좋지 않다고, 골목이라도 뚫려있는 길이어야 한다고, 막힌 집은 복이 들지 않는다고. 열린 골목은 집과 집이 이웃하고 있는 담으로 죽 이어져 있어 숨통이 트인다. 좁지만 피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 그 길에는 사람들의 한숨이 새어나가기 알맞은 바람이 불고 점점 멀어져가는 무거운 발길이 아득한 소음으로 남는다.  일상의 발자국을 찍는 골목길에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유별나다.
   

그 골목 담벼락과 어린 시절 친구들. 그곳에서 아이들은 흙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주워 공기놀이하거나, 깨진 빨간 기왓장을 갈아 고춧가루를 만들어 들풀로 나물을 무치면서 소꿉장난을 했다. 좁은 공간으로 해가 들이치면 담벼락에 기대 나른한 눈빛으로 햇볕을 쬈다. 골목 안에서 우리만의 아늑한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 골목길은 뇌리에 깊은 골을 만들어 어른이 된 뒤에도 기억의 저편에서 길을 잃지 않게 했다.
   

데드 엔드는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푯말을 주시하지 않고 무심코 들어갔다가는 한참을 지나서야 아차, 길이 막혔구나! 낭패감에 빠진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기 전 막다른 길인지 아닌지 알려주는 경고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돌아나가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서 있는 안내 표지판이다. 살면서 경고를 무시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그 신호를 왜 지나쳤을까 가슴을 부여잡고는 했다.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 헤어나지 못한 적이 있다. 그 길에 몰아치는 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길을 따라 통과하지 못한 바람은 비정했다. 서른 세 살 나는 그 길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끝은 절벽보다 깊은 어두움이었다. 의사는 세 살 어린 딸에게 자폐라는 진단을 내렸다.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장애라니,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잘났다는 인간의 한계. 나도 모르게 전능자를 찾았다. 이 길을 되돌아 나오게 해달라고.
   

행여 막다른 길로 도망치면 안 된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든가. 더는 피할 길이 없을 때 약이 오르고 사나워진다.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간교해지거나 비굴해지거나 자신을 속이거나 자신을 버리거나. 뒤돌아보면 의외의 길이 있다. 때론 뒷걸음질 칠 줄 알아야 하는 것. 달려 나올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길은 어디에나 보인다.
  

 지금 나는 막다른 길에서 돌아 나와 한길에 서 있다. 가끔 아직도 그 길목을 서성이지만 데드 엔드가 죽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끝이 없는 길이 아니라 끝이 있는 길이라고, 잘못 들어갔다면 다시 돌아 나오라는 친절한 경고이다. 살면서 막다른 길로 한 번도 들어서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막다른 길을 만났을 때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은 아니다. 어디든 틈이 있기 마련이다. 견고한 벽 사이 금이 간 것을 발견할 수도 있고 발밑에 클로버가 피어 있을지도 모른다. 끝은 다시 시작하기 위한 모순 같은 것이다. 앞만 보지 말고 위를 쳐다보아야 하는 것을. 막혔다 해도 하늘은 늘 열려 있다.
   

혼자 가는 길이다. 누구나 결국은 홀로 서는 것이다. 데드 엔드 푯말이 동네 입구를 지키며 우두커니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염없이 홀로 땅을 밟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면, 그 길 끝에 홀로 서 있다면, 그 길 끝이 절벽처럼 아득하다면, 무조건 돌아 나와야 한다. 막막한 그 길이 꿈처럼 비현실적일지라도 어둠은 한 줄기 빛을 이기지 못한다. 다행이다. 동굴이 아니라 막다른 길에 들어 선 것이. 막다른 길에는 언제나 하늘이 있다.
   

데드 엔드는 정녕 죽음의 끝이 아니다. 단지 경고에 불과할 뿐, 돌아 나오면 된다. 어느 길이든 입구가 있다면 출구가 있고 길은 또 다른 길에 연결되어 있다. 나는 오늘도 길을 걷고 있다.

 

[2017년 1월]


--월간문학 2017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