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대교

 

신순희

 

모르는 가수다. 처음 보는 그가 텔레비전에서 부르는 노래가 가슴을 파고 든다. 검은 선그라스를 쓰고 있어 눈을 수는 없으나 젊은이임에 틀림없는데 어찌 나같이 나이든 여인의 마음을 울리나. 단순한 멜로디를 중얼대듯 읊조린다.

노랫말이 진솔하다. 늦은 저녁, 어린 아들은 아버지를 기다린다. 어디 계시느냐고 전화하면 아버지는 항상 양화대교라고 말한다. 세월이 흐른 어느 문득 아들은 자신이 가장이 되어 다리에 서있다는걸 깨닫는다. 반복되는 후렴, “엄마,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말고에서 가족의 소중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어린 시절 감수성도 자극한다. 눈물이 고이지만 슬프지는 않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막둥이 귀염둥이 아들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 아버지의 양화대교를 건너간다. 그가 아버지를 기다렸듯이 이제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린다. 어디냐고 전화하는 어머니에게 운전하던 아들은 양화대교라고 말하고는 울컥 목이 멘다. 어린 날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젊은 가수는 마음을 노래로 만들었다.

원래는 2한강교라고 불렸던 양화대교, 50 서울 도심에서 김포공항을 연결한 다리, 다리를 건너 사람들은 공항에서 이별하고 만났다.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오래된 다리다. 낡고 위험해서 헐고 다시 짓고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또다시 헐리고 보수하는 수난을 겪었다.

양화대교의 이름은 한강 나루터 양화진에서 나왔으리라. 천주교인들을 박해하여 목을 절두산이 양화진 근처에 있다. 해외에서 국빈도, 승전가를 부르며 돌아온 스포츠 영웅도 다리를 건너며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1980년이후 양화대교로 이름이 바뀌면서 2한강교는 영영 사라졌다. 영욕과 함께 슬픈 역사가 흐르는 다리다.

다리를 가수의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하면서 오고갔으리라. 어린 아들은 벌고 들어오는 고단한 아버지의 주머니를 기다린다. 누구나 한번쯤 아버지의 주머니를 기다렸으리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돈은 아버지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왔으니까.

어릴 우리 아버지는 퇴근 길에 가끔 센베이 과자를 사들고 집으로 오셨다. 부채꼴의 과자에 반쪽의 땅콩이 박혀있는 아껴서 나중에 먹었다. 겨울날 추운 거리 리어카에서 파는 군고구마를 담은 봉투를 품에 안고 들어오시기도 했다. 따끈한 군고구마 껍질을 벗겨 한웅큼 베어먹는 달콤한 때문에 어쩌면 나는 아버지보다 고구마를 기다렸을지 모른다.

노래를 부른 젊은이는 자이언티(Zion T)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가수다. 자이언(Zion)이라면 시온 아닌가. 알고보니 스물다섯 살의 가수는 힙합과 리듬앤블루스를 노래한다. 언제나 검은 선그라스를 끼고 자유로운 리듬을 노래한다. 어른과 거리감있는 음악을 한다. 그런데 양화대교를 부르다니, 분명 그는 생각이 깊은 아들이다. 그는 양화대교는 아버지를 의미한다고 고백한다. 이름에서 알파벳 T 십자가를 뜻한다고. 그럼 자이언티는 시온의 십자가를 말하는가?

내가 돈을 버네. 엄마 백원만 했었는데, 우리 엄마 아빠 강아지도 이젠 나를 바라보네. 어릴때는 아무것도 몰랐네. 다리위를 건너가는 기분을.”

 

자이언티가 부른 양화대교 노랫말이다. 지극히 소박하고 일상적인 노랫말에 마음이 포근해지고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은근한 행복이 있다. 자꾸만 듣고 싶고 따라 부르게 된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2015 1월]

 

양화대교 노래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uLUvHUzd4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