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잘 만나야

 

 

화창한 토요일 오후 쇼핑을 마치고 나오니 넓은 주차장에는 클래식자동차 전시가 한창이다. 오색 풍선이 바람에 휘날리고 아마추어밴드의 경쾌한 연주에 구경 나온 이들이 몸을 들썩인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주황색 소형차는 동그란 지붕을 머리인양 무지개색모학(MOHAWK)스타일로 꾸미고 헤드라이트에 검정 마스카라를 달았다. 보기만 해도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늘씬한 금발의 아가씨들이 네온 빛 선글라스를 나눠주며 자동차를 배경으로 같이 사진 찍기를 권한다. 얼떨결에 사진을 찍고 보니 쭉쭉 빵빵 모델 옆에 엉거주춤 서있는 펑퍼짐한 아줌마, 누가 볼까 얼른 사진을 지웠다.

 

전시된 자동차들은 세월만 따지면 벌써 고물이 되었겠으나 차주의 각별한 관리 덕에 ‘고전’으로 부활하였다. 파라솔아래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차주들의 얼굴은  자랑스러움으로 빛난다. 차에 대한 어떤 질문이라도 대답할 만반의 준비가 된 자신 있는 모습이다. 펄이 들어간 하늘색, 연두색, 복숭아색 등 유난히 고운 파스텔 색상이 많다. 원래의 고유한 빛깔인지 독특하게 개조한 후 새로운 색을 입혔는지 모르겠다. 애정으로 보살핀 흔적이 역력하다. 옛날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오래된 캐딜락, 재규어, 롤스로이스를 보니 과거로의 여행을 온 듯 행복하다.

 

내차를 세차한 지 얼마나 되었더라.  LA시의 절수정책으로 집 앞에서의 세차도 눈치 보이는 요즘이다. 극심한 가뭄으로 자연의 빗줄기 샤워도 못한 지 오래이다.  처음엔 빛나는 은색이 깔끔하고 까만 가죽시트로 제법 근사했었는데. 더운 바람이 나오는 시트에 뚫린 작은 구멍은 부주의로 흘린 음식 부스러기가 군데군데 허옇게 끼어 보기 싫다. 수영가방을 차에 두어 소독약 냄새가 난다. 세차장가서 들이는 시간과 돈이 아깝다고 변명을 하지만 결론은 게으른 내 탓이다. 홍보용 선글라스를 하나 얻은 후 시동을 거니, 이게 웬일인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계기판에 배터리 이상 표시가 뜬다. 배터리 방전이 처음이라  당황했다. 하필이면 보험회사 직원도 모두 퇴근한 토요일 오후다. 보험카드에서 24시간 비상전화번호를 찾아 연락하니 가까운 정비업소에서 사람을 보내주었다. 본네트를 열어보니 오랫동안  배터리 이상을 모르고 억지 운행한 결과 시퍼런 산(acid) 물질이 넘쳐흐른 것이 보인다. 점프케이블을 연결하여 간신히 시동을 걸고 정비업소에가서 새 배터리로 갈았다. 배터리가 이 지경이 되었으면 여러 번 싸인(sign)이 있었을 터인데 몰랐느냐고 의아해한다.

 

자동차보다 더 귀중한 내 몸을 소홀히 한 결과가 나왔다. 피검사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250이 넘게 나온 것이다. 200아래를 유지해야 된다는데, 최근의 폐경으로 인한 호르몬변화때문인가. 아니면 1-2년 덜 살더라도 맛있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평소의 식습관 탓인가. 먹는걸 좋아하고 의지가 약한 내가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숫자를 낮출 수 있을까. 터진 배터리가 떠오르며 기분이 나빠진다. 여러 번 싸인을 보냈어도 무시당하자 어쩔 수 없이 지친 배터리가 터져버렸듯이 지친 내 몸의 핏줄들이 어느날 갑자기 터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자동차 배터리처럼 새로 갈아 끼울수도 없는데. 주인 잘 못 만난 자동차와 내 몸이 무슨 죄가 있으랴. 우선 세차장부터 가야겠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02/10/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