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isha가 있는 풍경

 

Buzz Pet Store를 운영하며 10년 넘게 이웃해 있던 베티가 떠난 지 벌써 8개월이다. 그녀는 개훈련 학교와 애견미용센터를 같이 운영해서 가게가 꽤 분주했으나 대형 매장의 높은 임대료 감당을 힘들어했다. 이혼한 아들이 사춘기 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기에 돈 들어갈 곳이 많다고 했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은퇴할 엄두를 못내고 임대료가 싼 곳으로 이사를 갔다. 펫스토어의 손님들이 개의 그루밍을 맡기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 가게에 들러 미용재료며, 가발 등을 사며 매상을 올려주곤 했는데,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리스 배너가 크게 붙어있으나 불경기 탓에 별로 눈길을 끌지는 못한다. 갈매기 몇 마리가 바닥에 떨어진 프렌치프라이를 쪼아 먹으며 끼룩대는 텅 빈 주차장을 보면 씁쓸하다. 큰 매장을 두세 개의 가게로 분할해서 리스를 놓지 않는 유태인 건물주가 야속하다. 온라인쇼핑에 밀린 소매업소의 부진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나 바로 옆 매장이 텅 빈 요즘은 불경기가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가발을 직접 써보고 스타일을 확인하는 손님들이 아직은 있어서 가게를 꾸려가지만, 낮은 가격과 쉬운 환불을 앞세우는 온라인업체의 맹공에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빈 매장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가물에 콩 나듯 방문하여 이웃가게 업주인 나에게 묻곤 한다. 같은 쇼핑센터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 덕분에 트래픽이 많고 주차장이 넓은 것을 강조하며 입점을 권하지만 만 달러가 훨씬 넘는 월세는 확실히 걸림돌이다.

 

비어있는 펫스토어 앞에 노숙자 여인 하나가 나타났다. 홈리스 셸터가 답답해 도망쳐 나왔을까,  아니면 개인적 이유로 갑자기 노숙자가 되었을까.  LA다운타운에서 짐이 가득 찬 쇼핑카트 옆의 홈리스를 수차례 본 적은 있으나 LA다운타운 남쪽으로 30분가량 떨어진 이 동네에서 직접, 가까이 보기는 처음이다.

 

깊게 쌍꺼풀진 눈에 도톰한 입술이 육감적이다. 흑인 아프로머리를 하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우리 가게에 매일 쇼핑을 오기에 그녀를 자세히 보았다. 빨래를 하는 대신 새 티셔츠를 사서 계속 갈아입는다. 그녀의 큰 덩치에 어림도 없는 작은 사이즈를 고집하여 젖가슴만 간신히 가리고 배는 고스란히 드러나 출렁거리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몸을 못 씻어서 향수와 바디스프레이를 사서 뿌린다. 귀걸이, 팔찌 등의 액세서리와 립글로스, 아이섀도 등 화장품을 산다. 매상을 올려주니 나로선 반가웠다. 처음엔 동네에 나쁜 인상을 준다고 불평하며 경찰을 부르고 건물 관리회사에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는데 요즘은 햄버거와 소다 등 먹을 것을 사다주는 사람이 많다. 지갑 속에 구걸한 것이 분명한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가 가득하다. 충치와 비만에 치명적일 소다를 마시며 내가 선물로 준 미용잡지를 누워서 본다. 한뎃잠이 석 달이나 지속되니 아무리 기후 좋은 캘리포니아라지만 밤에 콘크리트바닥이 얼마나 차가울까. 담요라도 하나 갖다 줘야겠다.

 

그녀의 이름은 라이샤이다. 그녀는 자기 이름의 뜻이 '물질의 풍요'를 뜻하는 'Prosperous'라고 가르쳐 준다. 아이러니하다. 사정을 물어 의논 상대가 돼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은 이기심이 앞선다. 그녀가 퇴근하는 나를 보곤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든다. 어느새 고양이 밥을 사왔는지 길냥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소외된 자들의 소통인가. 그런데 그 광경이 한없이 평화롭고 여유 있어 보인다. 걱정 없어 보이는 그녀가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한 귀퉁이가 떨어진 리스 배너가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나도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