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어라

 

수영장 사우나에서 받은 명함을 한참 만지작거리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네 번 울리고도 안 받기에 얼른 끊었다. 연결이 안 되면 그만두자 생각이었으니까. 전화를 끊고 십 분쯤 되었을까, 리턴콜이 왔다.

 

“소개받고 전화 드리는데요. 피부상담 좀 하려고요.”

“지금 마침 예약 손님이 취소해서 시간 되는데, 얼른 오세요.”

오랜만에 나간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세월이 비껴간 듯 젊고 예뻤다. 오랜 시간 공들여 가꾼 티가 역력한 무결점 도자기 피부에 잘 정돈된 눈썹, 또렷한 아이라인이 눈길을 끈다. 안한 듯이 한 옅은 화장이 세련된 모습들이다.

 

네일숍에서 손톱도 꾸미고 속눈썹 익스텐션한 친구도 있었다. 날아갈 듯 화사한 옷차림에 어울리는 구두며 가방도 모두 명품으로 우아하고 고급스러웠다. 아이들을 유학 보내놓고 넘치는 시간을 외모 가꾸고 자기계발 목적의 취미생활에 쓰는 그녀들이 솔직히 부러웠다. 겨우 2주일의 짧은 한국 방문을 위해서도 가게의 물건들을 미리 주문하고, 혼자 있을 남편을 위해 빨래며 반찬 준비로 허둥대지 않았던가. 나도 이제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 피부 관리도 받으며 살아야지 싶었다.

 

은은한 사과향이 나는 피부관리실은 깔끔한 분위기에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고 있어 마음이 편해졌다.

“피부 톤은 고우신데 관리를 너무 하지 않으셨네요. 선 데미지도 많고요. 관리 받으면 금세 좋아지세요. 눈썹이 많이 짝짝이신데, 문신 하시죠. 티 안 나고 감쪽같아요. 요즘은 반영구라 세월이 지나면 지워지고, 약품도 좋아져서 부작용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얼마나 편한데요. 립스틱만 바르면 화장 끝이라니까요.” 눈에 확 띄는 미모의 피부관리사가 말이 청산유수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뺨 왼편엔 캘리포니아에 사는 훈장처럼 햇볕에 그을린 자국이 여럿 있고 정리 안 한 눈썹이 보기 싫다. 쌍꺼풀진 동그란 눈에 복코라는 말도 듣던 코는 부모님의 유전자를 원망할 수준은 아닌데, 40대 이후의 얼굴은 본인 책임이라니  나의 무지와 게으름 탓이다.

 

“얼굴 경락 마사지도 받으세요. 혈액 순환 좋아지니까 노폐물이 배출되면서 피부 톤이 맑아져요. 탄력 생겨서 젊어 보이고 얼굴도 작아지죠.” 얼굴 작아진다는 말에 경락 마사지 받기를 결심하고 문신을 부탁했다. “최대한 안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주세요.”

어느새 쓱쓱 싹싹 칼과 가위로 눈썹을 정리하더니 연필로 눈썹을 그려 보인다. 밑그림을 그리나 보다. “훨씬 깔끔해 보이죠?” 날렵한 갈매기 두 마리가 낯설다.

 

갑자기, 정말 난데없이, 문신을 하고 말았다. 아이도 낳았는데 바늘로 찔리는 거 참을만하겠지 싶었다. 마취를 했어도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아팠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숯검댕이 순악질 여사의 눈썹에 방금 쌍꺼풀 수술 받은 양 두 눈이 퉁퉁 부은 모습이 가관이다. 남편이 인터넷에서 문신 부작용을 찾아 보여주며 잔소리를 한다. 나도 벌써 후회하는 중인데, 이럴 때는 '남편은 남의 편'이란 말이 어찌나 잘 맞는지, 얼굴 경락 마사지 10회 등록했단  소리는 꺼내지도 못했다. “일주일만 지나면 자연스러워진다니 걱정 마셔요.”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쓰면서 거의 변장 수준으로 다니다 보니 눈썹의 딱지는 떨어졌다. 간신히 순악질 여사는 면했으나 거울 볼 때마다 낯설은 눈썹에 내가 아닌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란다. ‘반영구라니까 언젠가는 지워지겠지.’ 혼자서 중얼거린다. 그런데 문제는 갑자기 한 쪽 눈에 충혈이 생겼는데 안약을 넣어도 낫지를 않는다. 아이라인 할 때 마취약이 눈에 떨어진 듯했는데, 그 때문인가. 순전히 내 탓이니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아 울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