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살림을 내보내며

 

 

최숙희

 

 

LA20년 넘게 살았지만 다운타운은 항상 낯설다. 나의 모든 생활이 사는 동네 근처에서 이뤄지는 이유도 있지만 워낙 타고난 길치이고 겁이 많아 낯선 곳으로의 운전은 삼가는 편이다. 몇 년 전 학회 참석차 미국에 온 친구가 LA빌트모어 호텔에 머무른다기에 찾아 가는데, 역시 헤매고 말았다. 목적지를 한번 놓치니 돌아오려 해도 일방통행이 많아 애를 먹었다. 갑자기 서울 나들이하는 시골 쥐가 된 느낌이랄까.

 

 

졸업 후 다운타운의 직장을 다니게 된 아이는 회사 근처로 집을 얻어 나가겠다고 했다. 출퇴근에 드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를 댔지만 운전이 능숙치 않은 탓이다. 면허는 고등학교 때 땄으나 운전을 안 해서 완전 초보다. 10년 된 내 차를 주고 운전연습을 시켰지만 한동안은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불안할 터이다. 회사의 우편번호를 zillow앱에 넣으니 리스팅이 많이 떴다. 컴퓨터로 주소를 찍어 동네 정보를 검색하니 매일 업데이트된 리스트가 인스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뜬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빅브라더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

 

 

규모가 크고 호텔 같은 시설을 자랑하는 아파트는 Airbnb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컨버터블을 타고 시끄러운 음악을 꿍꽝거리니 눈에 거슬렸다. 이틀간 발품을 팔아 회사에서 두 블록, 홀푸드마켓에서 두 블록 거리의 2년 된 아파트를 찾았다. 500스퀘어핏의 스튜디오로 방도 따로 없지만,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사무공간이 별도로 있는 것과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12개월 계약에 한 달 렌트를 빼주는 조건으로도 유틸리티와 주차비를 계산하면 2500달러를 훌쩍 넘는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다운타운의 렌트비는 곧 뉴욕과 맞먹을 것 같다.

 

 

낮은 임금과 실업으로 상승하는 주거비를 감당 못하고 거리로 내몰린 노숙자 문제를 실감 못하다가 가까이 직접 보니 슬픈 마음이 든다.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다운타운에서 기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노숙자들은 천사의 도시 LA의 그늘이다.

 

 

매일같이 운전 연습을 시킬 겸 음식을 갖다 주러 다운타운으로 간다. 그동안 이름만 들어본 유명 레스토랑이며 영화에서 보았던 건물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부모는 일 끝나고 막히는 프리웨이를 한달음에 달려갔건만 아이는 우리가 볼일을 끝냈으니 빨리 돌아갔으면 하는 눈치다. 인턴할 때 만났던 3년차 변호사들이 많이 해고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며 매일을 인터뷰하듯 긴장된 상태로 보내야 한다나. 파트너의 눈 밖에 나면 끝이란다. 형만 한 아우 없다더니 큰 딸아이라면 힘든 일이 있어도 부모 걱정할까봐 속으로 삭혔을 텐데, 마음속에 있는 말을 기어이 하고 마는 아들에게 실망이다. 앞으로 더 서운할 일이 많겠지.

 

 

아들덕분에 다운타운 지리를 마스터한 것으로 감사해야겠다. 집으로 가는 길, 야경이 멋지다. 나도 언젠가 저녁노을 짙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멋진 야경의 루프탑바에서 칵테일 한 잔할 날이 올까.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10/4/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