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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레몬 디톡스
최숙희
Jan 28, 2017 437
레몬 디톡스    친정엄마가 한국서 나의 결혼사진을 들고 오셨다.  20여 년 전 것인데도 배경을 뿌옇게 처리해서 인지  인물이 뽀샤시 돋보인다.   자기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많이 벗겨진 남편과 중년 이후 몸이 불어  두루뭉술해진 나를 사진 속 인물과 연결...  
85 기러기 가족
최숙희
Feb 08, 2017 395
기러기 가족(D-69일)   뜨거운 샤워를 하다가  물이 미지근해지며 급기야  찬물로 바뀌는 일처럼  화나는 일은 없다.   갑자기 늘어난 식구들이  물탱크의 온수를 다 써버렸나 보다. 여동생이 기러기 가족으로  엘에이에 온 후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때까지 ...  
84 두 갈래 길
최숙희
Feb 06, 2017 373
                                    두 갈래 길   부부만 달랑 살아 절간 같던 집이 복잡해졌다.  대학을 졸업한 딸이 부친 짐이 도착하여 현관에 쌓여있다.  부모와 떨어져 지낸 아이의 4년이 궁금하여 짐을 풀러 보았다.  독특한 취향의 옷가지와 구두, 가...  
83 아버지의 약장
최숙희
Feb 05, 2017 221
  아버지의 약장    내복에 조끼만 입고 계셨다. 은행이나 동사무소 갈 때조차 정장을 챙겨 입고 모자까지 쓰시던 멋쟁이셨는데. 환자 수발에 지친 노인이 오랜만에 보는 며느리에게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침대에 누워계신 시어머니는 차라리 곱다. 큰아들을 ...  
82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최숙희
Jan 28, 2017 198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붉으죽죽한 비로도 커튼이 에어컨 바람에 펄럭인다. 지금은 찾아보기조차 힘든 벽걸이 에어컨, 골드스타 상표이다. 금성, 메이드인 코리아를 다른 곳에서 보았으면 반가웠겠지만 딸이 두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맨해튼 변...  
81 버리고 나니 행복감이 생겼다
최숙희
Oct 02, 2016 193
시작은 식탁이었다. 식탁이 도착할 터이니 자리 마련해놓으라는 갑작스런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팔순이 내일모레인 친정엄마가 이제 살림을 줄여야겠다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끼려고 천으로 덮어만 두었던 것이라 운송료가 들어도 미국의 나에게 ...  
80 남편은 갱년기
최숙희
Feb 05, 2017 187
남편은 갱년기 내가 알기로 가장 고루한 직장인 은행에 수 십 년 다니신 친정아버지는 집에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 안하셨다. 전화벨이 아무리 울려도 절대로 먼저 받는 법이 없어서 김치 버무리던 엄마가 손을 씻고 달려와 받을 정도였다. 물을 마시려면 안방...  
79 춤바람
최숙희
Feb 06, 2017 187
춤바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은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한다. 좁은 운동장 대신 수영장이 있는 국민학교를 다녀서 할 줄 아는 운동은 학교건물 옥상에서 하던 피구와 수영이 유일하다. 중고교 때 체육은 주로 체력장 연습과 자율학습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제...  
78 이제 너무 늦었다(친구 H를 추억하며)
최숙희
Feb 07, 2017 155
이제 너무 늦었다(친구 H를 추억하며) 숙희야, 안 좋은 소식인데, H가 오늘 저세상으로 갔데. 밴드엔 게시 안 했어. 아프다 가는 친구 뒷 담화 하게 만들기 싫어서. 내일 나랑 민, 유, 영 이렇게 네 사람만 조문 가려고, 안 좋은 소식 전해서 미안. 갑자기 받...  
77 뒤늦은 사과
최숙희
Oct 02, 2016 154
뒤늦은 사과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막내삼촌의 외아들이 목사안수를 받고 개척교회를 시작했단다. 오랫동안 내 가슴을 누르던 묵직한 돌덩이가 치워진 느낌이다. 엄마는 신혼 초부터 여중생이던 고모를 떠맡아 약대에 보내고 결혼시킬 때까지 십 여 년 ...  
76 친정엄마와 열흘
최숙희
Feb 06, 2017 143
    친정엄마와 열흘   친정엄마는 성격이 급하다.  어떤 생각이 들면 금세 행동에 옮겨야만 한다.  "내일 가려는데, 뭐 필요한 거 있냐?  아침에 바쁠 테니 나올 거 없고 택시나 셔틀타고 들어가마"  항상 도착 하루 전에 전화하고 자기말만 하고는 끊는다.  ...  
75 비 오는 날 수영장 풍경 1
최숙희
Jan 25, 2019 133
    비 오는 날 수영장 풍경     최 숙희   겨울비로 날씨가 쌀쌀하다. 저녁을 든든히 먹었어도 진한 커피와 달콤한 고구마 케이크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추운 날씨만큼 마음도 춥고 허전해져서 일까. 아이들이 돌아간 후 다시 단순한 일상이다. 설거지는 자기...  
74 아버지의 구두
최숙희
Apr 02, 2017 130
  아버지의 구두 최숙희   신장을 정리하다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는 구두를 보았다. 여름에 한국의 시부모님이 왔다가 두고 가신 것이다. 수선해 두겠다고 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에 샌들을 신으신 어머니 발이 ...  
73 무사하게 보낸 어느 날
최숙희
Oct 02, 2016 126
무사하게 보낸 어느 날 점심을 먹은 후 깜박 졸았나 보다. 언제 가게로 들어왔는지 모르는 건장한 체격의 여자가 마네킹 하나를 들고 계산대 옆에 서있다. 마네킹이 쓰고 있는 가발을 빨간색으로 달라고 한다. 재고가 마침 없어 주문해준다고 했으나 내일 아...  
72 엄마가 미안해
최숙희
Feb 06, 2017 124
엄마가 미안해 잠자는 딸의 방문을 살며시 열어본다. "엄마?" 아이의 목소리에서 불안함과 해방감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얼른 자야 내일 일찍 일어나지."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돌아온 딸과 6개월을 같이 지냈다. 멀리서 학교에 다녀 일 년에 고작 두서...  
71 물난리
최숙희
Feb 07, 2017 113
물난리   차고 문을 열었을 때 바닥이 흥건히 젖은 것을 보았다.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보니 천장에 무수히 맺힌 물방울이 보이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차고 바로 위인 식당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카펫이 다 젖었고 천장이 얼룩져있다.   ...  
70 조금씩 놓아주기
최숙희
Feb 06, 2017 109
                                조금씩 놓아주기    아기 때 말이 좀 느렸던 것을 빼놓곤 한번도 기대를 저버린 적 없던 아들이었다. 말문이 터지고 청산유수로 능청스레 말을 잘 하는 것을 보고, ‘아, 이 아이가 자존심 강한 완벽주의자라서 그동안 말을 아...  
69 울고 싶어라
최숙희
Feb 07, 2017 97
울고 싶어라   수영장 사우나에서 받은 명함을 한참 만지작거리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네 번 울리고도 안 받기에 얼른 끊었다. 연결이 안 되면 그만두자 생각이었으니까. 전화를 끊고 십 분쯤 되었을까, 리턴콜이 왔다.   “소개받고 전화 드리는데요. 피...  
68 서울 다녀온 후 무거운 마음
최숙희
Apr 10, 2019 95
  서울 다녀온 후 무거운 마음       최숙희     혼자 공항버스를 타고 간다는데도 엄마는 이사한 새 집을 내가 못 찾을까 염려하며 부득부득 공항에 나와 계셨다. 월세를 받아 노후대비를 하려고 마련한 아파트가 8개월 이상 세가 안 나가자 부득불 이사를 하...  
67 주인을 잘 만나야
최숙희
Dec 28, 2016 94
주인을 잘 만나야 화창한 토요일 오후 쇼핑을 마치고 나오니 넓은 주차장에는 클래식자동차 전시가 한창이다. 오색 풍선이 바람에 휘날리고 아마추어밴드의 경쾌한 연주에 구경 나온 이들이 몸을 들썩인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주황색 소형차는 동그란 지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