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한국의 위상

 

최숙희

 

 

2021년이 되면서 건물주의 코로나 임대료 할인혜택이 끝났다. 지루한 장마철 반짝하는 한줄기 햇살처럼 아주 잠깐이었다. 임대료만 줄어도 몇 년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즘 같아선 힘들다소리가 절로 나온다. 얼마 전부터 비중을 늘린 한국 화장품이 그나마 숨통을 틔어주며 효자 노릇을 한다. K-뷰티라고 하면 가격이 비싸도 일단 품질을 믿는 분위기다. 나라밖에 나와 사는 이민자의 알량한 애국심이랄까,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

 

언제부터 한류가 주목받기 시작했던가. 한류에 무심하던 나도 미국 라디오 DJ강남스타일노래를 틀어주면 어깨를 들썩이며 신나하던 기억이 있으니 싸이는 공식적인 내 한류의 시작이다. 서구 언론들이 ‘21세기 비틀즈에 비교하는 방탄소년단(BTS)의 세계적 성공은 그들의 팬클럽 아미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 것이다. K-팝은 이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진작 케이블 TV를 끊고 넷플릭스로 갈아탄 나는 비밀의 숲’ ‘사랑의 불시착’ ‘슬기로운 의사생활등을 인생드라마로 여기고 몰아서 보느라 수많은 밤을 새웠다.

 

한국의 드라마 제작 기술은 몰입도와 완성도에 있어 최고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비대면시대가 도래해서 한국 드라마와 예능프로의 수출이 늘었다고 들었다. ‘기생충에 이어 미나리까지 각종 영화상을 휩쓰니 신나는 일이다.

 

미얀마의 군부독재를 규탄하며 투쟁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한국 대사관 앞에 모여 제발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며 절규하는 것을 유튜브로 보았다. 80년도에 대학을 다니며 최루탄에 눈물 꽤나 쏟은 나는 잔인한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미얀마 시민들이 K-팝과 드라마로 배운 정확한 한국어를 쓰는 것이 놀라웠다. 한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한 것은 그만큼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이 커졌다는 뜻 아닐까.

 

딸이 알려준 한국음식 소개 유튜버, 망치(Maangchi)를 구독하고 있다. 외국인 입맛에 맞춘 한국 음식이 아니라 본연의 한국 맛을 전하는 한식 전도사이다. 멀리 사는 딸과 공통 화제를 갖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망치의 유쾌하고 쉬운 설명이 마음에 든다. 500만 이상의 구독자를 거느린 망치는 책도 내고 팬 미팅도 한다.

 

그녀 같은 유튜버가 소개하는 한국음식의 인기 덕분에 코스트코나 미국 슈퍼마켓에서 다양한 한국식품을 발견하게 되나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한국 스낵이나 식품이 웰빙 건강식이라는 이미지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우리가족이 미국에 온 20년 전만 해도 도시락 반찬으로 김을 싸 가면 검은 종이를 먹느냐소리를 듣기도 하고 김치는 냄새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 발효식품 김치가 건강식으로 인기고 김도 저칼로리 고단백의 스낵으로 인정받으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

 

코로나19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정보로 미국 내 아시안을 겨냥한 증오범죄가 늘었다. 인종차별적인 폭언과 폭행, 심지어 사망하는 사례까지 발생하니 겁이 난다. 미국에서 아시안에 대한 이미지는 머리는 좋지만 소극적이라 리더는 못 된다는 편견이 많다.

 

인내가 미덕이라고 교육받은 우리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소심한 아시안이 아니라 당당히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선거에서 주류사회의 견고한 유리천장을 깨고 네 명의 한인 하원의원을 배출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제 소심한 아시안의 이미지를 깰 때가 되었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21/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