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무 늦었다(친구 H를 추억하며)

 

 

숙희야, 

안 좋은 소식인데, H가 오늘 저세상으로 갔데.

밴드엔 게시 안 했어. 아프다 가는 친구 뒷 담화 하게 만들기 싫어서.

내일 나랑 민, 유, 영 이렇게 네 사람만 조문 가려고, 안 좋은 소식 전해서 미안.

 

갑자기 받은 메시지에 가슴이 먹먹하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H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으나 정신분열증을 오래 앓고 있다는 소식에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미국에 온 후 그녀와 전화통화를 하고 다음번 한국방문 때 꼭 만나자고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내 국민학교 시절을 회상할 때 H를 빼 놓을 수는 없다. 3학년 때 세검정의 상명여대부속 국민학교로 전학을 갔다. 어려선 똘똘하다는 소리도 종종 듣던 터라 학교가 바뀌어도 크게 당황할 일은 없었지만, 체육시간에 하는 수영은 골칫거리였다. 다른 아이들은 자유형으로 20미터는 기본이고 몇몇은 배영, 평영등을 자유자제로 하는데 나는 물에 뜨지도 못하니 자존심이 상했다. 물놀이라고는 여름철 우이동계곡이나 강릉 바닷가에 몇 번 가본 것이 전부인 나는, 물이 가슴팍까지 오는 정식 수영장은 처음이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출렁거리는 물이 코로 입으로 들어갈 것만 같고 소독약 냄새도 어지러웠다. 그때 나를 도와준 친구가 H이다.

 

우선 물에 뜨는 것부터 익혀야 한다며 <새우 등뜨기>를 가르쳐주었다. “두 손을 깍지 끼고, 두 무릎을 점프해서 깍지 낀 손 사이에 넣어. 얼굴은 최대한 무릎에 붙이고 등을 새우처럼 둥글게 만들면 몸이 물에 떠져. 자, 해봐. 그렇게 몸이 떠지면 손의 깍지를 풀고 다리를 쭉 펴. 발장구를 치면 앞으로 갈 수 있어.” 그녀는 노련한 교관처럼 설명하고 자기 몸으로 시범을 보여주며 몇 번이고 될 때까지 연습시켜주었다. 친구가 아니라 언니 같았다. 일요일마다 더 연습하자며 평창동 그녀의 집 근처 북악스카이웨이 수영장으로 오라고 했다. 수영장에서 핫도그랑 가락국수를 사 먹으며, 드디어 당시 내 목표인 ‘숨쉬고 20미터 자유영’을 하게 되었다. H 덕분이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숱 많은 곱슬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내리고 내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두껍게 쌍꺼풀 진 큰 눈은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고일 듯했다. 항상 공이 많이 들어간 호사스러운 도시락반찬을 싸와서 나는 점심시간을 은근히 기다렸다. 어여쁜 디즈니 공주 그림이 있는 교과서만큼 큰 필통 안에는 만화가 그려진 질 좋은 일본연필들이 가득했다. 황홀한 지우개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녀는 글씨도 궁체로 잘 썼다. 나도 그녀의 필체를 따라했지만 역부족이라 질 나쁜 국산  ' 건설 연필' 탓을 한 기억이 난다.

 

하교 후 자기 집에 가자고 하여 따라갔다. 난생 처음 보는 이층침대가 있었는데, 하나는 잠자는데 쓰고 다른 하나엔 온갖 종류의 귀여운 봉제인형들을 모아두었다. 침대 커버와 커튼을 같은 천으로 화사하게 꾸민 것이 공주방 같았다.  숙제를 마친 후 당시 우리 집에 없는 연필깎는 기계로 연필을 모두 깎은 후 가지런히 필통을 정리하는 것은 나의 은밀한 기쁨이었다. 여배우 최은희를 닮아 고운 그녀의 엄마는 비빔국수를 비벼주실 때에도 계란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지단으로 부쳐 곱게 모양을 내고, 작은 식빵 사이에 새우 다진 것을 넣고 튀긴 고소한 맛이 일품인 요리도 해주셨다. 그 요리의 이름이 멘보샤인 것을 결혼 후 중국요리교실에서 알았다. 정성으로 딸을 키우는 것이 느껴져 부럽기도 하고 나중에 내 딸에게 저렇게 해주어야지 생각한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면 반짝이는 트리에 앙증맞은 초콜릿 장식품이 달렸는데, 내 몫 말고도 동생 주라며 두 개를 더 챙겨주는 속 깊은 아이였다. 붓글씨, 그림, 글씨 등 손으로 하는 것에는 남다른 재주가 있었으며, 독서량도 많아 또래친구들에 비해 조숙하여 사춘기를 빨리 겪는 듯했다. 중학교로 진학하며 내가 여의도로 이사를 오며 그녀와의 추억은 끝났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너에게 기대도 많으셨겠지. K대학 의대에 합격해서 다니다 의대가 안 맞아 너의 아버지가 유학한 독일에 갔단 소식을 들었어. 독일에서 혼자 지내며 힘들어서 병을 얻었단 얘기 어머님께 들었어. 무엇이 그렇게 너를 힘들게, 아프게 했을까. 주위의 과도한 기대가 부담이 되었니. 친구로서 아무런 도움이 못되어 미안하고 슬프구나. 조용히 장례를 치루고 싶다고 친구들 조문도 거절하셨다니 너를 먼저 보내는 부모님 가슴 아픈 심정이 오죽하셨을까. 너와의 추억들이 하나하나 생생히 기억나는데,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젠 너무 늦었구나.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어, 아픔 없는 곳에서 이제는 행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