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바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은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한다.  좁은 운동장 대신 수영장이 있는 국민학교를  다녀서 할 줄 아는 운동은 학교건물 옥상에서 하던 피구와 수영이 유일하다.  중고교 때 체육은 주로 체력장 연습과 자율학습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제대로 아는 운동의 규칙 하나  없고,  체육은 내신 성적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아서 못해도 대충 봐주는 분위기였다. 

 

아이들 어렸을 때 테니스 레슨을 시키며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같이 레슨을 받았는데  테니스 엘보를 다쳐 그만두었다. 아이들 크고 나선 골프를 배웠지만 성질 급한 내겐 잘 안 맞아  지지부진 했다.  이렇듯 운동과 담 쌓고 살다가  중년을 넘기니 군살도 장난이 아니고,  맵고 짠것을 좋아하는  식성 탓에 혈압도 걱정되었다.  운동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권유로 라인댄스를 다니게 되었다. 어느덧  2년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끈기 없고 몸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던 나로서는 기적이다.  매일 재보는 체중계의 눈금은 변함 없으나, 오랜만에 보는 이들은 인사치레로라도  “예뻐졌다,  날씬해 졌다” 말하니 , 아니라고 손사래 치기는 하지만 기분은 좋다.

 

춤이라면 대학 때 체육으로 한 포크댄스와  종로의  ‘코파카바나’라는 이름의 디스코텍에  몇 번 간 것이 전부이다. 삼면에  전신거울이 달린 스튜디오에서 오래 배운 다른 멤버들보다 두세 템포 느리게  ‘엉거주춤’ 을 춘다.  솔직히 처음에는 라인댄스가 주로 시니어들이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큰 착각임을 깨닫는 데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60이 넘었다는  선생님은 숱 많고 긴 생머리를 하나로 묶은 뒷모습이 20대라 하여도 믿을 정도이다.  멤버들은 나이는 시니어지만 몸의 민첩함은 30대 같다.  분명 학창시절 공부 우등생이었을 이들은 노트를 갖고 다니며 스텝설명을 적고 안무 그림도 그린다.  쉬는 시간에도 잘 추는 이들에게 물어가며 복습을 한다.  반면 나는 스텝 따라 하기도 벅차고 갑작스런 운동에 놀란  다리가 후들거려 의자에 앉아 쉬기 바쁘다.  용기를 주는 선생님은 ‘누구나 첫날은 있는 겁니다.' 라며 맨 앞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자꾸 틀리면서 앞에 서있기 민망하여 맨 뒤로 갔더니  춤추다 뒤로 돌 때 보고 따라 할 이가 없어 낭패였다.  잘 추는 분들을 앞뒤좌우로 위치를 잘 잡아야 눈치껏 따라 할 수 있는 요령도 터득했다. 저절로 가자미눈이 되었다.

 

 무용전공자도 아닌 선생님은 20대 중반 이민 온 후  IBM에서 30년 근무하다 은퇴하셨다는데, 아직도 새로운 춤을 배우러 클래스를 다닌단다. 그 열정과 에너지가 놀랍다. 한참을 다닌 후에야  스텝이 외워져 슬슬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같이 가자 했으나 노인들과 있으면 기가 빨린다며 싫단다. 대부분 이민 1세대로  꽃집,  세탁소,  식당,  자바시장 등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림하며,  자식들도 훌륭하게 키워낸  슈퍼우먼들이다. 까마득한  이민후배인 나로서는 기를 뺏기기는  커녕 열정의 기를 팍팍 받는다.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면 스텝을 놓치므로, 춤 추는 동안  일상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잊고 집중할 수 있다.  운동으로 땀나게 두 시간을 보내다니 내게는 꿈같은 일이다. 음악 들으며 춤추는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 줄 모르게 즐겁다.  나는 올빼미과로서 아침엔 항상 비몽사몽이라 입맛도 없어서 아침밥을 거르기 일쑤이나  춤을 시작하고는 아침밥을 꼭꼭 챙겨 먹는다. 빈속으로 갔다간 허기져서  힘들다. 건강도 좋아졌는지 처음에는 숨도 차고 다리도 후들거렸으나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러시아로 선교사 파송받은 목사님이 한동안 같이 배웠다. 청일점이라 쑥스러울텐데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잘 하셨다. USC에서 영화를 공부중인 그분의 아드님께  DVD제작을 의뢰하여 우리 춤이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DVD는 초보자들 연습용 교재로 활용도 되고, 목사님 아드님께  금전적 도움도 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자바에서 의류사업 하는 분이 직접 디자인한 검정과 핑크색 춤복을 두 벌씩이나 선물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천으로 금박의 러플이 달린 상의와 판타롱 바지, 그리고 아랫배 가리는데 안성맞춤인 반짝이 랩스커트이다.  검정은 축소색이라  날씬해 보여 애용하고 있다.  핑크는 아직 때가 아닌 듯 싶어 옷장에 잘 모셔 두었다.   몇 십년 만에 제일 심한 불경기라는 요즘 50벌도 넘게 해주었으니 그 마음이 고맙다.  꽃무늬  레깅스를 가끔 입는 통 큰 사장님 이다. 

 

잠이 덜 깬 아침, 춤 복에  무용신을  신고 스튜디오 마루 바닥에 선다. 음악이 나오면  어릴 적 읽은 동화 ‘빨간신’의 주인공 '카렌'이 된 듯 신난게 춤을 춘다.  허모사비치의 한 극장에서 하는 대규모 댄스 페스티벌에 우정출연으로 초대되어 정식무대 데뷔도 한 셈이다.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있는 클래스에  가급적 빠지지 않았더니  이젠 제법 잘 추는 축에 속한다. 처음 온 이들이 나를 보고 따라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룸바, 차차, 탱고, 맘보, 힙합 등을 말로 설명은 못해도 음악을 들으면 몸이 기억한다.  춤에 소질 있는 이들은 몸동작이 격렬해서 초보자가  따라 하기 힘 들지만  몸치였던 나의 춤은 선생님 설명을 정확히 지키므로 따라 하기 쉬운가 보다.  자기 앞에 서달라고 부탁하는 초보자까지 생겼다. 묘한 성취감이 생긴다. 살다보니 이런날이 왔다.

 

“학예회 가느냐, 입시생 엄마가 아주 춤바람 났구먼” 하는 남편에게  “한번은 춤 선생님 남편이 오셔서, ‘바쁜 선생님이  살림은 언제하시냐’고 물으니 ‘저는 밥 굶기를 밥 먹듯 합니다’ 하시던 걸”하며 대답해 주었다. “얼른 다녀와서 새 밥 지어 점심 도시락 맛있게 싸다 줄께”하고 삐딱선 타려는 남편 살살 달래고 춤 클래스에 늦을까봐 서둘러 차의 시동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