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길

 

부부만 달랑 살아 절간 같던 집이 복잡해졌다.  대학을 졸업한 딸이 부친 짐이 도착하여 현관에 쌓여있다.  부모와 떨어져 지낸 아이의 4년이 궁금하여 짐을 풀러 보았다.  독특한 취향의 옷가지와 구두, 가방에 놀랐다. 예술하는 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요즘 젊은 취향에 뒤쳐진 내 탓인지 알 수가 없다. 남과 비슷한 차림새로 눈에 잘 띄지 않기를 바라는 나와는 정 반대이다.  소심한 A형 범생이과에 속하는 우리 부부의 어디를 닮았을까.

 

대공황 이후 가장 길고 심각한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져 감원의 칼바람이 거세지고 부모에 얹혀사는 캥거루족 어른아이가 늘어간다.  하지만 방학이면 뉴욕과 엘에이의 큰 회사에서 인턴을 해왔기에 취직 걱정은 안했다.  그래서 진로를 물으니 의외로 찡그리며 알아보는 중이란 대답만 한다.  딸아이와 동갑인 조카가 인턴을 하던 JP Morgan에 취직 되었단 소식에 초조해진다.  비교와 채근없이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에게 극도의 인내를 요구한다.  

 

딸은 순수미술이 아닌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경제적 자립이 가능할듯하여 안심했다. 평균수명 100세를 바라본다는 요즘, 우리부부도 언제까지나 자식의 뒷바라지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극심한 불황으로 일자리를 아예 구하지 못하거나 학력이하의 일을 하고 있는 젊은이가 늘어간다는 신문기사를 읽을 때마다 아이의 눈치를 보게 된다.  직장 잡으면 당분간 시간 내기 힘들 것 같아 다녀온 크루즈 중에 연락이 온 회사의 인터뷰 기회를 놓쳤다는 원망만 들었다.  

 

희망하는 직장도 서로 다르다.  부모 입장에선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이 큰 회사에 다니게 되기를 바라지만, 아이는 작더라도 일 전체를 책임지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원한다.  인턴으로 큰 회사에서 일 해보니 개미같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데 자기와는 안 맞는다나.  여러 곳의 일을 받아 하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하고 싶단다.  아이의 뜻은 알지만 남 보기에 그럴싸한 직장이 되어 한국의 부모님이나 친척,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 나의 속마음이다.  

 

26년 전 대학 졸업반이던 나를 되돌아본다. 단지 남들이 많이 가는 인기 학과(취직이 용이하고 결혼을 잘한다는)라는 이유로 영문학을 전공했다. 별다른 흥미를 못 느끼고 어영부영 지내다가 졸업을 맞이했다.  충분한 준비 없는 당연한 결과로 몇 군데 공채에 낙방하고 간신히 외국 항공사에 취직되어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다른 곳에 비해 보수가 높고, 넉넉한 휴가에, 공짜 비행기 표를 얻어 그 당시로는 드물게 외국여행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그 일을 내가 진정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일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다시 읽어본다.  어느 인생인들 후회가 없으랴마는 용기가 없어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지 못한 나의 삶을 뉘우치곤 한다.  그저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편하고 유리할 것이라고만 짐작했다.  한 번도 치열한 삶을 산 기억이 없는 부끄러움 때문에 딸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하고 그 기대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게 하니 엄마로서 미안하다.  

 

남들에게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주관을 갖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가려는 딸의 의견을 존중해야겠다.  흔들리지 않고, 비바람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지 않은가.  아직은 작은 꽃봉오리인 나의 딸이 언젠가 자기만의 색깔과 진한 향기로 활짝 피어날 그날을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