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약장

 

 내복에 조끼만 입고 계셨다. 은행이나 동사무소 갈 때조차 정장을 챙겨 입고 모자까지 쓰시던 멋쟁이셨는데. 환자 수발에 지친 노인이 오랜만에 보는 며느리에게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침대에 누워계신 시어머니는 차라리 곱다. 큰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일상의 기억조차 망각의 강에 흘려보냈나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천진한 표정의 어머니는 평화롭게 보인다.

환자용 물품들이 많다. 휠체어, 보행기, 이동식변기, 성인용 기저귀가 보인다. 고관절을 다친 후 자유로운 보행이 힘들어 들여놓은 것이다. 주부가 누워있는 집안은 어수선했다. 고작 2주 동안의 서울방문으로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심란한 마음에 그리 느껴졌나 보다. 부엌창문으로 보이는 분당 중앙공원은 봄을 알리는 개나리와 진달래, 산수유가 한창이건만 집안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도우미 아줌마의 반찬 솜씨는 수준급이다. 내가 장만해간 몇 가지 반찬이 하나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나물들이 맛나요. 미국서 먹던 것과는 확실히 다르네요.”  “성남 모란장에 가서 사온 것들이라 그래. 엄마 빨리 낫게 농약 안 준 걸 사려고.” 수척해진 아버님 모습에 밥이 안 넘어갈 것 같더니 웬걸 꾸역꾸역 평소보다 더 먹었다.

 기다란 식탁 한구석을 약장이 차지하고 있다. 칸칸이 서랍식으로 되어 수납에 편리할 듯싶다. 내용물이 훤히 드려다 보이게 투명한 재질로 되어있는 그것은 먼지 하나 없이 반들반들 윤이 나기까지 한다. 서랍에 약 이름과 먹는 시간이 쓰여 있다. 비뚤비뚤한 글씨가 힘없는 구순 노인의 그것임을 말해 준다. 혈압약, 당뇨약, 간약, 골다공증약, 머리 좋아지는 약. 머리 좋아지는 약이 치매약 이겠지. 완치의 보장도 없는 잔인한 병. 60년 결혼생활의 마무리를 당신 손으로 하겠다는 아버지의 헌신에 가슴이 아리다. 

 혈압으로 쓰러지신 시어머니가 퇴원한 후 어머니를 요양기관에 모시려는 자식들과 당신 손으로 돌보겠다는 아버지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다. 집에서 간병하다 고관절을 다쳐서 자리 보존을 하게 되니, 자식들은 아버지를 원망했다. 게다가 치매까지 오니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지쳐간다.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자식들은 손님처럼 다녀갈 뿐이다. 딸 가진 부모는 외국여행 다니며 호강하지만, 아들만 둔 부모는 서로 모시라고 밀어내는 탓에 객사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내 집안의 이야기가 되었다. 

저마다 사정이 있는 자식들은 늙고 병든 부모를 시설에 맡길 생각만 하지 누구 하나 선뜻 모시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다. 나도 아이들을 대학에 들여보낸 후 마음의 여유를 누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한참 일할 나이고, 아이들도 아직 독립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삶의 뿌리가 미국에 있잖아 하며 내가 시부모를 못 모시는 타당한 그러나 궁색한 핑계를 찾기에 분주하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다.  도배만 하고 들어간 낡은 전세아파트 부엌의 싱크가 찌그러져 있었다. 싱크에 불룩한 배가 닿아 튀기는 물에 옷이 젖는 것을 보셨는지 시아버지께서는 급히 상가로 가서 수도꼭지에 부착하는 분수를 사와서 달아주셨다. 자상함에 많이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신주단지 모시듯 집안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아버지의 약장을 보니 옛일이 생각난다.  그 후에도 삶의 고비마다 오래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는데, 늙고 힘 빠진 모습에 눈물이 난다.   

 “시간이 되면 다시 들를게요.” 하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인사로 한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벚꽃 이파리가 흩날린다.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이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이 덧없다는 생각을 잠시 해볼 뿐, 도착한 버스에 냉큼 올라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