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식탁이었다. 식탁이 도착할 터이니 자리 마련해놓으라는 갑작스런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팔순이 내일모레인 친정엄마가 이제 살림을 줄여야겠다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끼려고 천으로 덮어만 두었던 것이라 운송료가 들어도 미국의 나에게 부치시겠단다. 나도 이민 초기 마련한 작은 식탁에서 주로 밥을 먹기에, 자리 마련을 위해 없애야 할 우리집 손님맞이용 식탁은 햇수만 오래되었지 거의 새 것이다. 구세군에 연락하여 가져가라 할까 하다가 식탁 운송료로 1600불이나 들었다는 말을 듣고 팔아볼 생각을 했다. 미시USA사이트에 사진을 올렸더니 바로 문자가 오고 금세 팔렸다. 인터넷의 힘이 놀랍다.

 

내친 김에 집안 정리좀 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쿠쿠압력밥솥은 사용감이 많아 연락이나 올까 싶었는데 제일 먼저 팔렸다. ‘밥 해보니 잘 되네요. 잘 쓰겠습니다.’ 문자까지 받으니 마음이 따스해진다. 일터에서 갓 지은 밥을 남편에게 해주고 싶다는 사십대 아줌마는 마음씨도 곱더니 인사성도 바르다. 밥솥 값 50달러를 하얀 봉투에 넣어온 것도 좋은 인상을 남겼다. 딸아이가 사놓고 직장 때문에 뉴욕으로 가서 개봉도 안 한 각종 허브가 들은 양념세트는 마침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내 또래의 주부가 가져갔다. 새로 무엇을 시작하기에 오십이라는 나이가 늦었다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예상외로 수입이 쏠쏠해진다. 분명 이유가 있어서 샀던 많은 물품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죽은 듯이 모셔져 있다. 가족의 건강을 챙긴다며 구입했던 제빵기, 쥬서기, 콩사랑두유기도 안 쓴지 오래이다. 교자상, 벽시계, 신고 걷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특수 운동화, 보온병, 사다리의자 등 많은 것들이 새 주인을 만났다. 가격 흥정이 들어오면 흔쾌히 응하니 거래가 쉽게 이루어진다. 사진을 컴퓨터에 올리기 전에 비슷한 품목을 찾아보고 가격을 약간 싸게 올리니 연락이 많이 온다. 가격만 따지면 손해를 보는 것인데 돈을 버는 기분이 드니 우습다. 당장 안 쓰는 물건을 집에서 모두 없애야 하는 강박증이 생겼는지 형사 콜롬보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살핀다. 웹사이트에 어떤 새로운 물건이 올라왔나를 체크하고, 이건 가격책정이 적절치 않아, 저건 사진이 틀렸어, 하며 나름의 비평도 한다. 나무 재질의 서류정리함이 공짜로 따라온 책상을 20불에 구입하여 글쓰는 방을 꾸미기도 하였다.

 

재미를 붙여가던 나의 인터넷비즈니스는 망원경을 사갔던 젊은 아기엄마의 환불요구로 끝났다. 박스 째 새 것이고 그녀의 세 살배기 아들이 생일 선물로 망원경을 원하니 ‘딱’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초점이 맞아야 한다고 한참동안 요리조리 살펴본 후 좋다고 가져가더니, 다음날 연락이 왔다. 남편이 류현진야구 보러갈 때 써야겠는데 성능이 나쁘다며 환불해 달란다. 환불 안 해주면 불만사항을 웹사이트에 올리겠다나. 아이 장난감이라더니, 미안하다 소리 한 번 안하고 어린아이 떼쓰듯 자기말만 하는데 반박도 못했다. 악플 운운하며 위협까지 하는 이기심에 질려서 돈을 돌려주었다. 세상에 가지가지의 사람이 있다지만, 어이가 없었다. 망원경을 포함하여 안 팔린 물건들은 구세군에 갖다 주고 오랜만에 거라지 물청소를 마치니 개운하다. 물자 흔한 미국에 와서 환불이 쉽다는 핑계로 사들이기만 하며 살아왔다. 부엌 펜트리의 문을 열어 보니, 군데군데가 휑하니 비어있다. 물건이 꽉차서 무엇을 찾으려면 시간이 꽤 걸렸는데, 필요한 물품이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상쾌하다.

 

부부 공동 취미로 등산을 시작했다. 행복을 위해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음을 산에 오르며 깨닫는다. 가볍게 배낭을 꾸려야 산행도 편하다. 정상에 오른다는 일념에 몸은 힘드나 머릿속은 텅 빈다. 일상의 근심, 욕심, 시기심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얼굴에 흐른 땀이 소금결정체가 되어 서걱거려도 상관없다. 땀에 젖고 모자에 눌려 착 달라붙어서 볼품없는 머리카락을 누가 본들 대수랴. 몇 백 년은 족히 되었을 나무 등걸에 앉아 차가워진 밥을 더운 물에 말아 두세 가지 반찬에 먹는 밥맛이 꿀맛이다. 건강에 해롭다며 평소 삼가는 인스탄트 봉지커피의 달달한 맛도 호사스럽다. 배낭에 기대어 짧은 오수를 즐기기도 한다. 최소한의 물질을 가지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주는 귀하고 값진 시간이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지. 물질에 끌려 다니지 않는 단순한 삶이 주는 순수한 행복을 오래 느끼며 살고싶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머릿속은 다시 부질없는 걱정과 집착으로 꽉 찬다. 매일 산으로 갈 수도 없고, 나의 한계이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10/26/2016